서른한 번째 와인바 Talk, 리코르킹(re-corking)
아주 흔하지는 않지만 와인을 오픈하다가 코르크가 파사삭 부서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코르크가 ‘부러지는’ 경우는 오픈 시 힘을 너무 세게 주었거나 와인 스크류를 충분히 돌려 넣지 않았을 때, 혹은 너무 말라버려 빡빡해진 코르크를 힘줘 오픈하려고 할 때 생기는데, 부서져 버리는 코르크의 경우는 부러지는 코르크와는 경우가 다르다.
부서지는 코르크의 경우는 대부분 오래 숙성이 된 올드 빈티지에서 많이 생긴다. 시간이 지나 와인이 숙성되어감에 따라 코르크 또한 점점 나이를 먹는다. 와인을 지속해서 머금고 나이가 든 코르크는 사람이 늙어가듯 노쇠해지고 약해져 점점 코르크 본연의 기능을 잃어간다. 코르크는 수축과 팽창이 자유로운 나무로써, 와인을 봉할 때는 코르크 본래 부피의 1/2 정도의 크기로 와인병에 박혀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코르크에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외부의 공기가 병 안으로 유입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와인병 입구를 꽉 막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코르크의 구조가 무너져 쉽게 부스러지거나 너무 수축하여 공기와의 접촉을 막는 본래의 목적을 잃는다. 이런 경우 와인이 병과 코르크 사이로 스며들어 코르크가 축축해진 나머지 약한 힘에도 코르크가 병 안으로 밀려들어 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와인의 숙성과 보관에 최적화되어있어 아직도 뚜렷한 대체 물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코르크이지만, 역설적으로 와인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는 것 또한 코르크이다. 오랜 기간 숙성을 시킬 만큼 좋은 와인이 코르크로 인해 변질하거나 아예 상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몇몇 와이너리에서는 리코르킹(re-corking)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리코르킹은 와인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서비스라고도 알려져 어떤 이는 와인의 건강검진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리코르킹 서비스는 기존의 코르크를 제거하고 숙성 과정에서 소실된 와인을 다시 채워 넣고 새로운 코르크로 막는 과정을 말한다.
이 리코르킹 서비스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꼽는 와이너리가 호주의 와이너리인 펜폴즈(Penforlds)이다. 펜폴즈는 자신의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와인인 ‘그랑쥐(Grange)’의 리코르킹 서비스를 위해 세계를 순회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순회한다고 해서 와인이 있는 모든 곳으로 찾아가지는 않는다. 펜폴즈가 지정해 놓은 리코르킹 장소로 와인을 들고 가면 그곳에서 직원들이 와인을 맞아준다. 그 과정은 이렇다. 와인을 받은 직원은 빈티지를 확인하고 레이블이나 와인병의 외관, 그리고 와인이 소실된 양 등 와인의 전체적인 보관 상태를 확인한다. 그 후 이미 삭아버렸거나 손상된 코르크를 조심스럽게 제거한다. 오픈 직후 공기와의 접촉을 최대한 막기 위해 질소가스를 사용하기도 한다.
리코르킹을 위해 오픈된 와인을 잔에 조금 따른 뒤 집중하여 테이스팅을 한다. 와인의 향과 맛으로 상태를 확인한 뒤 와인의 상태가 좋은 경우 최근 빈티지의 와인으로 소실된 양을 채우고 새로운 코르크로 입구를 봉한 뒤 와인의 백 레이블(back label)에 서명이 들어간 리코르킹 확인증을 붙여준다. 이때, 새로운 코르크는 펜폴즈의 이름이 각인된 코르크를 사용한다. 반대로 와인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에는 새 와인을 채우지 않고 아무것도 각인되어 있지 않은 무지(無地) 코르크로 봉해주고 확인증을 붙이지 않고 주인에게 되돌려 준다.
확인증을 받은 와인의 경우 리코르킹 이후 10년에서 20년 동안은 더 숙성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펜폴즈 그랑지 와인의 경우에는 고액의 명성 있는 와인이어서 그런지 전 세계적으로 가짜에 대한 이슈가 많았었다. 그래서 리코르킹 확인증을 받지 못했더라도 리코르킹 시에 와인에 대한 정품 확인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서비스가 된다.
그렇다면 리코르킹의 본고장 프랑스의 경우는 어떨까? 프랑스 대부분의 와이너리들은 와인을 들고 와이너리를 방문하여 리코르킹을 받는다. 과정은 펜폴즈와 비슷하지만 소실된 와인을 채울 때는 같은 빈티지의 와인을 사용하여 채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미 판매된 와인이 아닌 처음부터 리코르킹하여 판매되는 경우도 있다. 흔하지는 않지만 와이너리에서 오랜 기간 숙성된 와인을 판매할 때 꺄브(Cave)에서 숙성된 와인을 리코르킹하고 깨끗한 레이블을 붙여 출고시킨다.
리코르킹의 이런 과정으로 와인이 새 생명을 얻어 더 오랜 기간 숙성을 거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지만, 반대로 리코르킹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다. 아직은 리코르킹 시 와인이 오픈될 때 생기는 충격이나 공기와의 접촉을 완벽하게 막고 있지는 못하다. 특히나 리코르킹을 해야 할 만큼 오랜 기간 숙성을 한 와인에 있어서 저런 충격은 와인에 치명적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오픈을 함으로써 생기는 와인의 변질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적은 양이라고는 하나 충분히 기존의 와인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큼의 양이 들어가기 때문에 같은 빈티지의 와인이 아닌 다른 빈티지의 와인을 섞는 것은 가짜 와인을 만드는 일이라고 하며 꺼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리코르킹은 장점이 분명히 있는 작업이다. 와인 컬렉터나 애호가를 위한 프리미엄 서비스로 아직도 상당히 이슈가 되고 있고 매해 상당히 많은 양의 와인이 리코르킹을 받고 있다. 이렇게 리코르킹 된 와인은 시중에 판매되기도 하니 언젠가 기회가 되어 리코르킹 표시가 있는 와인을 발견한다면 이러한 과정을 거친 와인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재미를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