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는 겨울, 11월이 되면 유럽 여러 도시에서 특별한 트리 장식이 보이고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열기 시작합니다. 프랑스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면 발걸음을 이끄는 시나몬과 새콤달콤한 향이 가득한 냄새가 마켓에 가득하고 그 냄새의 주인공인 따뜻하게 마시는 와인, 뱅쇼(Vin Chaud)는 이 추운 계절의 대표적인 음료이지요. 사람들은 다양한 향신료와 설탕을 넣어 만드는 뱅쇼를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했을까요? 그리고 따뜻하게 마셔 겨울에 잘 어울리는 세계의 술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겨울이면 유럽 곳곳을 덥히는 Mulled Wine
로마제국 시대부터 마셔왔다고 전해지는 멀드 와인은 프랑스 버전인 뱅쇼(Vin chaud)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라틴어로 Conditium Paradoxum이라 불렸고 와인에 다양한 향신료를 넣어 따뜻하게 마시기 시작한 이 음료는 소화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지요. 고대 로마 제국의 문헌에 따르면 와인에 벌꿀, 후추, 월계수 잎, 사프란, 그리고 호두와 대추야자를 넣어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중 향신료와 당분은 멀드 와인이 산화되지 않고 만든 후에도 오래 보관할 수 있었던 보존제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중세시대에 이르러 멀드 와인은 현재 유럽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형태로 변화했습니다. 멀드 와인에 정향과 시나몬과 같은 향신료가 추가되어 Hypocras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그 후 카다멈,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 등이 추가된 버전이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멀드 와인은 이제 북유럽에서 동유럽까지, 유럽의 곳곳에서 마시는 음료인데 그중 여러 식문화와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겨울 음료로 알려지게 되었지요. 가장 인기 있고 잘 알려진 뱅쇼, 주재료는 레드와인,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 그리고 시나몬이며 다양한 재료를 잘 섞고 살짝 끓이고 데워 따뜻하게 마십니다.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레드와인을 베이스로 한 멀드 와인을 마시지만, 스웨덴과 프랑스의 알자스처럼 화이트 와인을 사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폴란드에서는 로마 시대에서 만들었던 방식처럼 꿀을 꼭 넣어 멀드 와인을 만든다고 합니다.
국가와 지역별로 다양한 스타일의 멀드 와인을 만드는 주재료는 아래와 같습니다.
– 헝가리의 Egri Bikaver : 지역 와인, 시나몬과 정향
– 몰도바의 Izvar : 레드 와인, 후추와 꿀
– 프랑스 알자스 Vin Chaud Alsacien : 리슬링이나 피노 블랑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과 시나몬
– 스칸디나비아의 Glögg 혹은 Gløgg : 와인, 설탕, 시나몬, 카다멈, 생강, 정향. 보드카나 브랜디를 섞는 경우도 있음
– 라트비아 : 와인, 체리 리큐르 Black Balsam
– 불가리아 : 레드와인, 꿀, 사과, 레몬
프랑스 가정에서 자주 만드는 전통적인 방식의 뱅쇼 레시피를 공개합니다.
* 재료 – 레드와인 1리터, 오렌지 1개, 레몬 1개, 백설탕 100g, 시나몬 스틱 1개, 팔각 1개, 정향 2개, 넛맥(육두구) 한 꼬집
* 조리법 – 레드와인에 과일을 얇게 혹은 웨지 모양으로 썰어 넣고 향신료, 설탕, 와인을 냄비에 넣습니다. 모든 재료가 한 번 끓어오르면 약한 불로 줄여 약 5분간 데웁니다. 식힌 후 냉장고에서 하루 이상 보관하면 재료의 맛이 고루 섞여 더 맛있는 뱅쇼를 마실 수 있으며, 서비스하기 바로 전 끓어오르지 않을 온도로 데워 제공합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위한 축배를 들며 마시는 Feurzangenbowle
독일의 뮌헨에서 11월 말 연휴의 시작을 기점으로 마시기 시작하는 이 음료는 재료의 가짓수가 많고 보기에도 화려해 멀드 와인보다 좀 더 특별한 음료로 여겨집니다. Feurzangenbowle은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에 함께하는데 카다멈, 팔각, 바닐라, 오렌지, 아몬드 등 다양한 재료를 와인과 함께 끓여 베이스를 만들고 럼과 달콤한 토핑을 뿌린 설탕 고깔을 곁들여 먹고 마십니다.
러시아 출신, ‘섞다’는 뜻을 가진 Sbiten
12세기부터 러시아에서 큰 인기를 얻어온 음료 Sbiten은 꿀과 향신료를 섞어 발효시킨 벌꿀주와 같은 형태에서 출발했습니다. 오늘날 바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레시피가 존재하지만 레드와인, 보드카 등 원하는 어떤 종류의 술을 이용할 수 있으며, 기본적으로 향신료 향이 가득한 달콤한 칵테일입니다. 꿀과 생강, 시나몬, 카다멈, 팔각 등의 향신료를 잘 섞어 따뜻하게 마실 수 있어 러시아의 추운 겨울을 이기는 데 안성맞춤입니다.
Wassail, 뜨겁게 마시는 사이다
와인의 주 소비국이지만 아직까지는 와인보다 사이다를 많이 만드는 영국에서 멀드 와인 대신 Mulled Cider를 마시는 일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입니다. ‘강건하라’는 고대 영어 단어에서 온 Wassail은 중세시대 다가올 해의 사과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 마시는 음료였습니다. 멀드 와인의 부재료인 설탕, 시나몬, 생강과 육두구를 그대로 사이다에 넣어 끓이고 데우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며, 지역과 사람에 따라 다른 술이나 거품 낸 계란을 얹어 먹는 등의 다양한 레시피를 이용합니다.
버터와 럼의 만남, Hot Buttered Rum
따뜻한 칵테일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연말의 기분을 띄워주는 특별한 음료로 다가옵니다. 럼, 버터, 따뜻한 물과 사이다에 다양한 향신료를 넣어 만드는 Hot buttered rum은 식민지 시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따뜻하게 마시는 럼과 버터의 만남은 상상하기 쉽지 않은 조합이지만, 한 모금 마시면 온몸을 빠르고 따뜻하게 데워주는 멋진 칵테일 음료입니다.
따뜻한 칵테일의 클래식, Hot Toddy
유명한 칵테일 바와 바텐더가 겨울이 되면 추천하는 따뜻한 칵테일의 대표주자 Hot Toddy는 오늘날 멋진 바에서 주문할 수 있는 메뉴가 되었지만 끓는 물, 설탕, 레몬과 위스키를 섞어서 간단하고 쉽게 만들었던 음료입니다. 스카치 위스키, 아이리쉬, 버번, 라이 위스키 등 다양한 위스키를 넣어 색다른 모습을 즐길 수 있습니다.
사케 Sake
양조 방식이 발전해 오늘날과 같이 정제된 맛의 사케가 만들어지기 전 사케의 거칠고 나무 향이 가득한 맛을 좀 더 순하게 하고자 발견된 음용 방식은 사케를 신체 온도보다 약간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은 차거나 따뜻하게 마셔도 각기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사케이지만 특히 준마이, 혼조조, 긴조 등의 사케는 따뜻하게 마시면 숨겨졌던 매력을 발견하기 좋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