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코케 허니 Ethiopia Koke Honey. 커피 공화국인 한국에서도 이 커피 원두를 취급하는 카페는 많지 않다. 커피의 신맛을 추구하는 당신이라면, 이 원두는 대표 4번 타자다. 커피의 시큼함은 약 배전 로스팅으로 완성되고, 향만 맡아도 내 ‘것’임을 직감한다. 개성이 강해 마니아형 커피로 분류된다. 그래서 함부로 추천하지 않는다. 커피 초보자에게는 자극적인 맛이 최소화된 부드러운 커피를 권한다. 맛에 있어서 대중적 기호를 따르려면, 최대한 정제된 그 ‘중간’의 맛을 탐구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위스키. 특히, 북미 대륙의 일인자. 1년 동안 약 7억 잔이 소비되는 술. 바로 아이리시 위스키 제임슨 Jameson이다. 거짓말인 줄 알았다. 제임슨, 아니 아이리시는 제임슨이 아니라 ‘제머슨 혹은 제미슨(이하 제임슨으로 통일)’으로 부른다. 암튼 제임슨이든 제머슨이든 그 소비량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그 분위기를 알 수 없기에… 아일랜드의 위스키 역사를 보면 롤러코스터 그 자체다. 위스키를 처음 생산한 국가가 바로 아일랜드이다. 19세기만 해도 아일랜드 내에서 80개 이상의 공장이 있을 정도로 위스키 시장을 이끌었으나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영연방국가 시장의 상실과 제조기술의 진화, 미국의 금주(禁酒)법으로 급속히 쇠락하면서 결국에는 스카치위스키에 주도권을 내줬다. 천신만고 끝에 현재 아이리시 위스키 시장은 성장곡선을 타고 있으며, 3번 증류한 부드러운 위스키란 장점을 살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필자는 커피만큼이나 위스키의 취향도 고약하다. 피트향이 강한 스코틀랜드 아일레이 위스키만을 내 양자로 삼는다. 나도 처음에는 남들처럼 훈연된 향과 소독약 같은 맛에 손사래를 쳤다. 요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이상하게 계속 생각나서 머릿속을 점령해버린 적이. 마치 평양냉면을 찾는 소구점과 같다. 그런 나에게 제임슨 위스키는 ‘모범생’과의 만남이랄까. 부드럽다는 장점은 내 취향의 대척점을 찔렀다. 이런 자세로 제임슨 증류소를 돌아보다가는 만족하긴 글렀기에, 제로점을 유지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스미스필드 Smithfield는 더블린 7구역에 있는 지역 지명이다. 처음 더블린에 도착한 밤으로 돌아가 볼까. 더블린 공항에 입국하여 더블린에 거주하는 분의 도움을 받아 더블린 시내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더블린에서 한인슈퍼를 운영하시는 그분은 대표적인 더블린 우범지역 3곳을 언급하셨다. 서머힐 Summerhill, 탈봇 거리 Talbot St., 스미스필드 Smithfield. 긴장 속에 들었던 ‘스미스필드’. 그 때 굳어진 이미지는 벗겨낼 수 없었다. 하지만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제임슨을 향한 내 호기심을 꺾을 순 없었다. 루하스 Luas를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용감하게 진격했다. 오코넬 스트리트 O’Connell St.에서 국립우체국 옆에 나 있는 메리 스트리트 Mary St.를 통해 약 20분 정도 쭉 걸어가면 증류소가 보인다. 생각보다 음산하지 않았다. 이 증류소 건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랜차이즈 호스텔인 제너레이션 호스텔 Generation Hostel이 공생하고 있어서 더 맘이 놓인다. 사실 우범지역은 따로 있었으니 안심하고 관광하러 오길 바란다.
서론이 길었다. 제임슨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우범지역이라고 투덜대기까지 한 이 곳을 왜 갔을까? 아일랜드 사람들이 스코틀랜드에 갈 땐 아이리시 위스키를 가지고 간다는 말이 있다. 위스키를 처음 만든 나라인 아일랜드 사람들의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투어하는 동안 그 자존감이 한 동양인의 감성에 전이될 수 있을까. 증류소 이정표가 시작되는 곳부터 장엄한 건물이 시작된다. 서로 다른 정방형 혹은 장방형 돌들로 쌓아 올린 자태는 몬드리안의 추상 세계가 연상된다. 이 건물은 1780년대에 지어졌으며, 그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양조장이었으나 지금은 박물관 및 관광 코스로만 운영되고 있다. 실제 양조는 남부지방에 있는 미들턴 Midleton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여기서도 투어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다.
올빼미의 눈이 오버랩됐다. 우리 그룹을 이끌 가이드의 눈빛이 말이다. 상당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좌중을 압도했다. 시작부터 그는 관람객들에게 최면을 걸었다. 이 투어가 끝나면 당신네는, 제임슨 위스키가 최고라며 엄지척(?)할 것이라고. 입장권에 배정된 그룹 알파벳이 화면에 뜨면, 그 그룹별로 무리 지어 움직인다. 개별 관람을 하는 기네스 맥주 투어와는 달랐다. 강당에 삼삼오오 자리에 앉으면, 사회자는 관람객에게 엉뚱한 제안을 한다. 그는 제임슨 로고가 있는 막대를 자발적으로 지원한 8명에게 나눠준다. 그 막대의 쓰임은 투어의 마지막에 공개될 거란 설명과 함께 정색하며 준비된 영상을 플레이한다. 영상 속에는 제임슨의 전반적인 역사가 딱딱한 전개로 보여준다. 막대기의 비밀. 주저하지 말고 그 막대기를 쟁취하자. 부끄러워하지 말고…
영상 상영을 마치면,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된다. 아이리시 위스키는 아일랜드 고유의 언어인 켈트 어로 ‘위스케 바하 Uisce Beatha‘로 부르는데, ‘생명의 물’ 이란 뜻이다. 그만큼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위스키는 생명과도 같은 존재다. 전체적으로 가이드 아저씨의 목소리는 강성체였다. 투박한 아이리시 억양이지만, 아이리시 위스키의 우월함을 전달하는 속도는 빠른 직구였다. 나 자신도 모르게 세뇌되어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훈련된 언변에 진정성이 혼연일체 되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투어는 위스키의 성장 과정을 순연 적으로 보여준다. 곡물을 저장하는 것부터 발효, 증류 그리고 한 통의 위스키가 완성되기까지 8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실제 인물과 꼭 같이 제작된 밀랍인형의 모습 속에서 힘겨운 기운이 전달됐다. 술을 빚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그 노고가 공감되는 현장이었다. 시설이 열악했던 과거에는 그 노동의 무게는 더 묵직했을 터.
자격지심일지도 몰라. 초반에는 뇌를 조이며 번역하기 바빳다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가이드, 더 넓게 보면 아이리시)의 심리를 풀고 싶었다. 과정을 설명하면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스카치위스키’였다. 아이리시 위스키의 우월함은 사실에 근거한 주장과, 스카치위스키와의 차이점으로 정리한다. 증류 횟수 뿐만 아니라 증류방법의 차이, 그리고 피트 사용의 여부, 첨가하는 곡물 재료의 차이 등이 비교 대상이었다. 결론은 아이리시 위스키가 목 넘김이 부드럽고 신선한 셰리 향이 나서 여성들도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스코틀랜드 관람객이 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반론을 던졌을까. 자꾸 본질보다는 번외에 관심이 갔다.
투어의 마무리는 시음의 장. 가이드는 투어 시작 때 나눠준 막대기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8명은 앞쪽에 따로 마련된 자리에 앉아, 새로운 혜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반 투어 참가자들은 제임슨 위스키 한잔 혹은 제임슨 진저&라임을 선택해서 마실 수 있는 데 반해, 막대 소유자들은 3종의 위스키(스카치위스키(조니워커), 아메리칸 위스키(잭 다니엘), 아이리시 위스키(제임슨))를 시음 할 기회가 주어진다. 이 테이스팅을 통한 기대효과는 이러하다. 아이리시 위스키는 3번 증류(보통 아메리칸 위스키는 1회, 스카치위스키는 2회)하여 여느 위스키보다 부드럽다는 것을 강조함이다. 테이스팅을 제대로(?) 마치면 본인의 이름이 새겨진 인증서 taster certificate를 받는다. 받는 즉시 사진으로 인증하여 기쁨을 2배 이상으로 불린다. 투어는 보통 20~30분 정도 소요되며, 월~토요일은 09:00~18:00, 일요일은 10:00~18:00에 운영한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으로 16유로(온라인 사전 예약하면 14.5유로)이며, 학생 카드를 제시하면 13유로에 이용할 수 있다.
매년 3월 17일은 아이리시뿐만 아니라 영미 국가에서 1년 중 가장 큰 행사가 열린다.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 St.Patrick’s Day는 아일랜드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한 성 패트릭을 기념하는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기념일이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제임슨 위스키도 힘을 보탰다.
제임슨은 2011년부터 매년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에 유명 아티스트과 디자인 협업을 해서 한정판 위스키를 출시한다. 올해는 아일랜드의 스트리트 아티스트인 제임스 얼리 James Earley가 함께 했다. 현재 국내 이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 출시한 다음 날, 진열된 제임슨 2016 에디션을 보며 흐뭇해 한 건 나뿐이 아니였다. 주류 담당 매니저인 분, 참 철없게 나에게 이 디자인 예쁘지 않냐며 동의를 구했다. 2016년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 한정판 위스키는 더블린 리피강을 이어주는 다리를 형상화하며 ‘연결(Connectivity)’이라는 컨셉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