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매우 친했던 친구들이 있다. 몰려다니는 걸 극히 꺼리는 내가 늘 네 명이서 함께 몰려다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가 중학교 때였다. 그 당시의 친구들은 친구를 넘어선, 유치하지만 분신과도 같았다. 열댓 살짜리 계집애들의 질투심이 강한 때였으나, 우리는 서로의 재능을 흠모하며 동시에 서로에 대한 응원과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한 명은 유학을 겸한 이민을(혹은 이민을 겸한 유학을), 다른 친구 둘도 각기 다른 학교로 진학해서 연락이 드문드문하다가 결국은 못 만나게 되었는데, 성인이 된 이후 간혹 만나면 영~ 옛날 느낌이 나질 않는다. 불편하거나 싫다기보다 뭔가 공허한 느낌이랄까? 자주 만나서 일상을 공유할 수 없기에 반갑고 즐겁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과거에 있는데 몸뚱이가 현재를 살다 보니 순간순간 불협화음이 생겨난다. 마치 뻥 뚫린 길을 잘 가던 중 높은 방지턱을 만나서 급하게 속도를 줄이고 ‘덜컥’하는 기분이다. 예전에는 그렇게도 쿵짝이 잘 맞았는데 현재는 각자의 개성이 너무 달라 넷의 공통분모를 찾아내기조차 힘들다. 나와 그녀들 모두 서로에게 남아있는 지난날의 모습을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로 만들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지난해, 그리고 며칠 전 또 한번 희한한 와인을 마시게 됐다. 며칠 전 모임에서 이상한 와인을 마셨다며 놀라긴 했으나 이전의 경험을 잠시 잊었을 뿐 그 희한한 와인은 사실 작년 겨울 이맘때에도 마셨던 것이었다. 일 년이 지나 비슷한 경험을 다시 겪으니, 이번에는 내가 미처 경험해보지 못했던 신세계에 발을 들인 충격처럼 강하게 다가왔다.
샤르도네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화이트 와인 품종으로 꼽힌다. 샤르도네 100%로 와인을 만드는 경우도 있고, 다른 품종과 혼합하여 양조하는 경우도 있다. 생산지와 생산자의 특성에 따라 혼합 비율도 다양하다. 샴페인을 만들 때는 적포도 품종과 함께 블렌딩하는 경우도 흔하다. 샤르도네는 오크 친화력이 좋고, 재배되는 환경에도 잘 적응한다. 즉, 재배 지역과 양조 방식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으로 탄생하기에, 매우 변화무쌍한 포도 품종이라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재배 환경과 양조 방식, 그리고 각기 다른 기간 동안 숙성한 샤르도네 와인을 블라인드로 테이스팅하면 모두 같은 품종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스타일이 천차만별임을 느낄 수 있다. 샤르도네가 어떠한 환경적 변화에도 유연한 적응성을 보인다고 한다면, 이의 대척점에 있는 품종을 나는 소비뇽 블랑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국제 품종이지만, 어디에 섞여 들어가도 ‘나 여기 있다!’라며 강한 존재감으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개성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찌릿하고 공격적인 산미(산도가 높은 경우 탄산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혹자들은 채소의 비린내라고도 말하는 식물성 향, 그리고 소비뇽 블랑의 대표적인 향이라고 책에서 배운 ‘고양이 오줌 내’ 등 표현으로 쓰이는 향만 봐도 다른 포도 품종과는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품종이 소비뇽 블랑이다. 차가울수록 소비뇽 블랑의 최고 매력인 산미와 톡 쏘는 향이 살아나기에 결코 입 안에서도 부드럽지 않다. 꼿꼿하고 날카롭고 강직한 개성을 살리기 위해 보통 스테인리스 스틸통에서만 숙성되니, 와인의 첫인상에서부터 불순물 하나 섞이지 않은 깔끔함이 전해진다.
물론 일찍이 로버트 몬다비가 퓌메 블랑(Fume Blanc)을 만들어 오크 터치된 부드러운 소비뇽 블랑을 시장에서 성공시켰다지만, 그래도 소비뇽 블랑을 향한 나의 기대는 공격적인 산도와 특유의 강한 향.이.었.다(이 지점에서는 과거형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소비뇽 블랑이 내게 준 인상은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고유의 DNA를 드러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강직함이었다. 그리고 내게 소비뇽 블랑은 첫인상에서 보여준 모습이 곧 최상의 모습이었다. 고유의 성질을 좀 더 과장되게 혹은 조금 유순하게 바꿀 수는 있어도 보통 우리가 이야기하는 소비뇽 블랑 특유의 개성이 숨겨져 ‘이게 뭐지? 좀 특이한데?’ 하는 새로운 변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진부하게도.
희한한 소비뇽 블랑을 처음으로 만난 작년 겨울의 기억이 1년 사이에 잊혀졌다는 건, 그저 그때의 경험을 예외적인 경우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오랫동안 쌓아온 기억과 그로 인해 새겨진 인상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지 않으려는 일종의 자기방어랄까?
Alexandre Bain L. d’Ange(소비뇽 블랑으로 만든 루아르의 내추럴 와인- 편집자). 이 와인을 마시고 나서 검색을 통해 알아보고도 일반적으로 마셔왔던 소비뇽 블랑과 다르다고만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소비뇽 블랑의 다른 스타일이라기보다, 그냥 이상하고 특이한 와인이라고 치부해버렸을 것이다. 소비뇽 블랑을 선택할 때는 청량감을 느끼고 싶을 때다. 새콤하고 알싸한, 마치 겨울 아침 창문을 열면 들어오는 차갑고 맑은 바람을 만났을 때의 기분 같은 청량함. 느끼한 음식을 먹은 후에 떠먹는 동치미 국물 한 숟갈 같은 청량함. 소비뇽 블랑에게 기대하는 가장 큰 매력이다. 음식과 함께 와인을 마실 때 와인이 하는 역할을 ‘음식의 여운을 음미하는 것’과 ‘음식이 입안에 남긴 잔 맛을 씻어내는 것’ 중에 고르라면, 내가 소비뇽 블랑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전자보다 후자인 경우가 훨씬 많았다. 따라서 나는 Alexandre Bain L.d’Ange와 같이 풍미가 다양하고 바디감이 무거운 글래머러스한 와인을 소비뇽 블랑이라고 인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음을 고백한다.
나의 십 대를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해준 친구들이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길 바란 것처럼, 내가 소비뇽 블랑에게 기대한 인상 역시 화석과도 같았다. 내가 변한 것처럼 친구들도 변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때 그 모습’만을 기대한 채 만난 친구들에게 느낀 당황스러움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려나?
때로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데 벽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둔 채 유연한 경험을 쌓지 않고 ‘나의 경험이 곧 진실’이라는 오만의 늪에 빠지게 되는 순간에는 말이다. 이제는 인정할 때가 온 것 같다. 차갑고, 꼿꼿하고 강직한 그도 유순하고 따뜻하게 변할 수 있으며, 과거부터 정착되어 있던 인상은 시간의 흐름과 경험의 축적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음을 말이다. 그리고 와인이던 사람이던 일부 모습에만 취해 있었던 나의 태도도 달라져야 할 때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