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번째 와인바 Talk, 로제 와인에 대하여
로제 와인(Rosé Wine)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중간 상태인 분홍 장밋빛의 와인으로,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이나 영롱하고 고운 색을 보고 있자면 아주 달콤하고 로맨틱한 와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특별한 날에 와인바를 찾는 손님 중 유독 로제 와인을 찾는 이들이 많다. 사실 로제 와인은 생각과는 달리 달콤하지 않은 것이 정석이다.
로제 와인은 달지 않은 맛이 기본이며 와인 생산자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지만,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특징을 각각 갖추고 있다. 많은 사람의 로제 와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와인바의 손님이 로제 와인을 주문할 땐 항상 와인의 맛에 대해 정확히 설명해 와인 선택의 실수를 줄인다. 달지는 않지만 신선하고 향기로우며 가벼우면서도 묵직하고 우아한 로제 와인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다. 와인바에서도 과한 레드 와인이나 너무 가벼운 화이트 와인을 선호하지 않는 손님에게 추천하는 편이다.
로제 와인은 프랑스에서는 호제(Rosé), 이탈리아에서는 로사토(Rosato), 스페인에서는 로사도(Rosado) 등으로 불린다. 로제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남부 론(Rhône) 지방이나 프로방스(Provence) 지방의 경우, 로제 와인을 만들 때 레드 와인 품종을 주로 사용한다. 그르나슈(Grenache), 시라(Syrah), 쌩쏘(Cinsault), 무르베드르(Mourvedre)와 같은 레드 포도 품종으로 달지 않고 우아하며 높은 수준의 로제 와인을 만든다.
반면에 로제 와인이 많이 생산되는 미국의 경우에는 프랑스보다는 달콤한 로제 와인을 생산한다. 미국 로제 와인 중 가장 많은 종류는 진판델(Zinfandel)이라는 레드 포도 품종으로 만든 로제 와인인데, 이 로제 와인은 화이트 진판델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영롱하고 고운 장밋빛에 달콤한 향과 맛을 가진 이 와인은 와인을 평소에 즐기지 않던 사람이라도 쉽게 접하고 마실 수 있어 파티 문화가 잘 발달하여 있는 미국에서 인기가 매우 높다. 화이트 진판델은 국내의 마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국내 소비자에게도 로제 와인이 부담 없는 가격대에 편하고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라는 인식이 생기는 기회가 됐다.
로제 와인에 대해 궁금해하는 손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로제 와인의 양조 과정이다. 로제 와인은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을 섞어서 만드는 것이냐는 질문이 제일 많은데, 이것은 실제로 로제 와인을 만드는 방법 중 한 가지이다.
로제 와인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침용(Maceration) 과정을 짧게 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로제 와인을 만들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식인데, 침용이란 와인의 색을 뽑아내는 과정으로 발효하는 동안이나 발효 후 포도 껍질과 포도즙이 접촉하는 것을 말한다. 레드 와인은 포도송이를 모두 파쇄한 후 포도 주스와 껍질, 씨나 가지 등이 침용 과정 동안 포도 주스와 잘 섞이도록 하여 껍질에 있는 색소를 뽑아낸다. 로제 와인은 이 과정을 보통 짧게는 7시간에서 24시간 이내로 하는데, 일반적인 레드 와인이 몇 주에 걸쳐서 하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짧은 시간이다. 로제 와인은 타이밍(Timing)이 중요하다.
와인 생산자가 원하는 정도의 로제 와인색과 맛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색을 확인한 후 원하는 색이 나오면 침용을 멈추고 포도 주스만을 분리한 후 숙성과정을 거친다. 색의 농도와 와인의 맛을 컨트롤하기가 가장 수월하기 때문에 로제 와인을 만들 때 이 방법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만드는 방식이 일반 레드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만큼 공이 들어가기 때문에 고급스러운 로제 와인에 많이 사용한다.
두 번째 방법은 일반적으로 레드 와인을 만드는 방식을 그대로 따르면서 포도 주스 일부를 추출해 로제 와인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와인의 성분 중 하나인 폴리페놀(Polyphenol)의 함량이 높은 진한 레드 와인을 만들기 위해 일부 와인 생산자가 쓰는 방식인데, 침용 과정 중인 레드 와인에서 포도 주스 일부를 제거하게 되면 껍질 대비 포도 주스의 양이 적어져 남아있는 포도 주스에 함유될 수 있는 폴리페놀의 양이 늘어나게 된다. 이때 제거된 포도 주스로 로제 와인을 만든다. 이 방식은 단순히 로제 와인을 만드는 방식에서 나아가 좋은 집중도를 보여주는 레드 와인을 만들고자 하는 와인 생산자들이 쓰는 방식이다. 좋은 레드 와인의 부산물로서 로제 와인이 생산되는 셈이다.
세 번째 방법으로 화이트 와인에 약간의 레드 와인을 섞어 로제 와인을 만드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스틸 와인에서 많이 쓰이지는 않지만, 샹파뉴(Champagne) 지역 같은 스파클링(Sparkling) 와인을 만드는 곳에서 로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방식으로 쓰인다. 프랑스에서는 샹파뉴 지방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이 방식으로 로제 와인을 양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 방식은 양조 시에 색과 와인의 맛을 컨트롤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미 양조 된 와인을 섞는 것이기 때문에 원하는 색을 내기 위해 블랜딩하다 보면 맛을 놓칠 수 있고, 맛을 내기 위해 블랜딩을 하다 보면 원하는 색을 맞출 수 없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색과 맛의 조율이 매우 힘들어 이러한 이유로 샴페인의 경우 로제 샴페인이 일반 샴페인보다 가격대가 더 높은 편이다. 보통 샴페인의 경우 샤르도네(Chardonnay) 와인에 아주 약간의 피노 누아(Pinot Noir) 와인을 섞는다.
로제 와인은 시원하게 해서 음식과 곁들이기 아주 좋은 와인이다. 와인을 먹기 부담스러운 점심 식사에도 잘 어울리고 날씨 좋은 날 피크닉을 가서도 즐기기 좋은 술이다. 묵직한 레드 와인이 부담스럽다거나 산도 높은 화이트 와인을 선호하지 않는다면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장점을 고루 살린 로제 와인을 선택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