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와인바 Talk, 디캔팅 이야기 1
최근 드라마와 영화에서 와인이 등장하는 장면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와인이 등장하는 장면에 드물지 않게 보이는 호리병같이 생긴 디캔터(Decanter)가 있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생소했던 디캔터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이 예전보다 현저히 많아졌다. 일부 와인바 손님은 와인을 오픈해서 따라주려고 하면, 왜 디캔터에 해주지 않냐고 항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와인에 따라 디캔팅이 필요한 경우 손님이 요청하지 않아도 먼저 제안을 하지만, 모든 와인을 디캔터에 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점에 관해 손님과 이야기하다 보면 와인을 디캔터에 옮겨 담았을 때 와인의 상태가 정말 달라지는지, 왜 와인을 디캔터에 옮겨 담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Decant는 ‘가만히 따르다’, ‘붓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이고 Decanter는 와인을 담는 유리병과 같은 용기를 뜻하며, Decanting은 와인을 Decanter에 옮겨 담는 행위를 말한다. 디캔팅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와인병에 남아있는 침전물을 디캔터에 옮겨 담음으로써 침전물을 거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와인의 안 좋은 냄새를 없애고 와인과 공기의 접촉을 극대화해 와인의 산화를 도와 와인이 가지고 있는 맛과 향을 끌어내는 효과를 주는 것이다.
와인의 양조 기술은 세기를 거쳐 점점 더 발전해 왔다. 와인을 병에 담기 전 와인 안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필터링(filtering) 기술도 그중 한 가지다. 지금보다 기술이 발전하기 전의 와인은 많은 침전물을 포함하고 있었다. 지금과 같이 규격화된 와인병에 담아 와인이 유통되기 전, 오크통 등에 담겨 대량으로 유통되었을 때가 대부분 그랬다. 침전물은 입안에서 안 좋은 느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에 와인을 마시기 전에 침전물을 걸러내는 작업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필터링 기술이 좋아진 지금은 왜 디캔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와인에 침전물이 생기는 이유는 크게 와인의 숙성 과정에서 생기는 화학 반응으로 인한 침전물인 새디먼트(Sediment)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로 와인의 숙성 과정에 더 복잡하고 깊은 맛을 주기 위해 포도의 줄기, 씨, 껍질 등 와인의 발효 과정에서 생긴 찌꺼기를 걸러내지 않고 와인과 같이 병에 담아 생기는 침전물인 쉬르리(Surlie) 때문이다.
새디먼트는 우리가 한 번쯤 마셔본 포도즙에서도 볼 수 있다. 포도즙을 다 마시면 맨 마지막에 남는 반짝거리는 소금 결정 같은 것을 볼 수 있듯이, 와인에서도 마지막 잔을 따를 때쯤에 씹히는 결정체가 있다. 이를 ‘주석산염’이라고 부르는데, 와인이 가지고 있는 주석산(타르타르산이라고도 함)과 칼륨이 화학적으로 합성되어 생기는 결정체이다. 투명한 결정체로 작은 크리스털처럼 보이며 와인을 오픈했을 때 코르크에 붙어있는 때도 있고 와인병 아래 가라앉아 있는 때도 있다. 일반적으로 주석산의 비율이 높은 화이트 와인에서 많이 생기지만 투명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반면에 레드 와인에서는 레드 와인의 색을 내는 안토시아닌 색소와 합성되어 검붉은 빛을 띠는 결정체로 보이기 때문에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석산염은 4℃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더 잘 생성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와인의 숙성, 보관, 운송 과정에서 낮은 온도에 노출된 와인의 경우에는 생산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와인에서도 주석산염이 많이 생성될 수 있다. 또한 와인 숙성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점점 더 많은 주석산염이 생성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와인보다는 만들어진 지 오래된 와인에서 침전물을 더 많이 확인 할 수 있다. 주석산염은 와인이 양조 되는 시기부터 소비자에게 도착하는 모든 순간에 생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새디먼트나 쉬르리 모두 인체에는 해가 없다. 두 가지 모두 와인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해로운 성분은 아니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와인을 마실 때 입안에 남는 까끌까끌한 느낌과 텁텁한 맛이 와인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될 수 있기에 디캔팅을 통하여 침전물을 걸러내는 것이다. 침전물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와인들이 대부분 레드 와인이다 보니 레드 와인의 디캔팅이 상대적으로 많아 디캔팅을 레드 와인에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화이트 와인뿐만 아니라 샴페인과 같이 2차 발효를 하여 효모 찌꺼기가 남아있는 스파클링 와인의 경우에도 디캔팅을 하기도 한다.
이 침전물들은 최근 와인 업계의 가장 큰 화두인 내추럴 와인(natural wine)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내추럴 와인의 경우 와인에 인위적인 영향을 최소화하여 와인을 만들고 있는데, 필터링 또한 최대한 지양하여 와인의 자연스러운 숙성과 맛을 의도해 와인을 생산한다. 일부 내추럴 와인의 경우 그냥 와인병을 보기만 해도 와인이 뿌옇다.
와인의 침전물 자체를 즐기며 와인을 마시는 것이 트렌드가 되었지만, 어떤 침전물이냐에 따라 그 와인을 좋게 만들 수도 나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실제로 새디먼트 같은 경우 와인 생산자나 유통 업자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물이라면, 와인의 맛과 밸런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결과로 작용할 수 있다. 소비자 역시 구매한 와인에 대해 적절한 와인 보관 환경을 제공하여 와인 본연의 맛을 해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와인을 더 잘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