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출국 일정이 잡힐 때마다 현지 와이너리와 브루어리를 검색해서 방문해왔다. 와인 종주국인 유럽에 역사가 오래된 와이너리가 있는 건 당연했지만, 일본이나 중국, 베트남 달랏, 미얀마 냥쉐 등에 멋진 포도밭을 보며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와이너리가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특히 인레호수와 인접해 있는 냥쉐의 와이너리는 평화로운 마을 분위기와 여행자만의 말랑말랑한 감성과 맞물려 다시 미얀마를 찾게 된다면 다시 한번 방문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정도.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 냥쉐 와이너리는 오픈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십 년 후에는 분명 성숙한 와인을 마시게 될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동남아의 작은 시골 마을에 유럽 못지않은 와이너리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나라도 이런 와이너리가 있다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는 하나의 매개체가 되지 않을까.
경기 안산 대부도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좋은 드라이브 명소로 알려져 있다. 시화방조제 도로가 연결되어 있어 교통이 편하고, 어디를 가나 아름다운 바다가 보이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다. 싱싱한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이며 조개구이, 바지락 등 맛있는 먹거리들이 즐비해 있으니 이보다 최적의 나들이 장소가 어디 있으랴. 게다가 대부도엔 국내 와인을 대표하는 <그랑꼬또 와이너리>가 있다.
우리나라 포도 품종 <청수>
몇 년 전, 주류박람회에서 국내산 포도로 만들었다는 <청수> 와인을 만난 적이 있다. 캠벨 포도나 머루, 복분자, 사과 등의 와인 사이에 있던 <청수>는 다소 낯설었지만 고급스러우면서도 깔끔한 맛을 가지고 있었다. 마시고 나서, 한국 와인이 맞나 라벨을 다시 확인했을 정도.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청수> 품종은 1993년 식용으로 육성되었다. 추위와 병에 강해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재배할 수 있었지만, 익을수록 포도알이 알알이 떨어져 상품화시키기가 어려웠다. 2008년, 와인 전문가로부터 <청수> 품종으로 화이트 와인을 양조했을 때 품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후 양조용 포도품종으로 재배하게 되었다. 와인을 재배하기 적합한 양조용 포도 품종은 국내 기후에서 자라지 않아 와인 생산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청수>가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현재 영동 도란원, 시나브로 와이너리, 영천 고도리 와이너리, 안산 그랑꼬또 와이너리 등에서 <청수> 품종으로 와인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해풍을 맞은 포도로 빚는 그랑꼬또 와인
대부도 그랑꼬또 와이너리는 2001년 <그린영농조합>으로 32개의 포도 농가가 조합원이 되어 처음으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조합원이 경작하는 포도밭은 600ha로 대부도 전체면적의 30%에 해당하며, 그랑꼬또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모두 대부도에서 재배하고 수확한 포도로 만든다.
대부도는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적당한 습도, 일교차가 큰 기후, 미네랄이 풍부한 토양 덕분에 와인 양조용 포도를 재배하기 좋은 최적지로 꼽힌다. 해풍을 맞아 포도 껍질이 단단해져 병충해가 없고, 당도와 산미의 밸런스로 와인을 빚기 좋다. 그랑꼬또 와이너리는 로제, 레드, M5610(로제), 캠벨 화이트, 청수 화이트 등 다양한 품종의 와인을 빚으며, 와인 시장의 저변을 넓혀왔다. 그랑꼬또는 프랑스어로 ‘큰 언덕’이란 뜻으로 와이너리가 위치한 대부도를 가리킨다.
그랑꼬또의 대표 와인인 <청수>는 껍질과 씨를 제거한 포도로 즙을 만들고 두 달 정도 발효 시켜 스테인리스 통에서 1년 정도 숙성시킨다. 상큼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산미로 웬만한 음식과 다 잘 어울리지만, 대부도 지역의 조개구이나 새우, 바지락, 해산물 요리에 곁들이면 더 좋다. 은은한 당도에 타닌감으로 느끼하거나 비릿한 해산물의 끝 맛을 잡아주어 입안이 개운하기 때문이다.
좋은 기술력과 품질 좋은 포도가 만났으니 와인 애호가들이 알아주는 건 당연한 결과. 2015년 그랑꼬또에서 청수를 첫선을 보이자마자 국내외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2016년 우리술 품평회 과실주 부문 최우수상, 2019년 우리술 품평회 과실주 부문 대상, 2020년 우리술 품평회 과실주 부문 우수상을 수상, 국제포도와인기구(OIV) 인증 <아시아 와인 트로피>에서도 매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며 국내 와인의 위상을 높였다
서울에서 가까이 갈 수 있는 대부도에 <그랑꼬또 와이너리>가 있다는 건 축복이다. 신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섬에서 신의 물방울이라 일컫는 와인까지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와인 종주국도 아니고, 와인 양조용 포도가 재배되지 않는 나라에서 만드는 와인이 뻔하다고 생각하는 분, 외국인에게 한국 와인을 선물하고 싶은 분께 우리나라 토착 품종인 <청수>로 만든 와인을 권하고 싶다. 필자가 <그랑꼬또 청수>로 한국 와인의 편견이 허물어진 것처럼, 당신도 <청수>를 마심으로써 한국 와인이 끊임없이 궁금해지고 애정이 생기는 계기가 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