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주춤했던 아시아 일대의 고급 와인 시장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 고급 와인 시장의 주요 소비국인 중국의 움직임이 이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큰 몫을 담당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지난 2011년까지 연간 70% 이상의 빠른 와인 수입을 기록했던 중국이 이듬해였던 지난 2012년 정체기에 들어섰지만, 최근 들어와 고급 와인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2012년 무렵 시진핑 정부의 반(反)부패 정책이 시작되면서 고가의 와인을 사들였던 중국 부유층이 당시 눈에 띄게 와인 소비를 줄였던 바 있다. 이 시기 선물용으로 선호됐던 고가의 프랑스 보르도 와인을 사들이던 중국의 ‘따거(중국어로 형님)’들이 모습을 감춘 이후 중국의 수입 와인 시장의 규모는 15억 달러 수준에 머무는 데 그쳤다.
하지만 최근 들어와 그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중산층이 늘며 와인 대중화가 빨라져 경제활동에 한창인 ‘바이링허우(1980년대 출생자) 세대’와 ‘주링허우(90년대 출생자) 세대’가 와인 소비층으로 등장하면서 소비력 있는 젊은 세대들이 와인의 주요 소비층으로 자리 잡은 분위기다.
이 같은 분위기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중산층의 소비 규모는 고위 관료나 사업자에 비해 작지만, 중산층의 수 자체가 증가하면서 관련 시장의 매출도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 덕분에 중국 내에서도 자국산 와인 생산량을 크게 늘리려는 움직임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지난해 기준 중국에서 양조를 목적으로 생산되는 포도원의 규모는 약 84만 7천 헥타르에 달한다. 같은 시기 이탈리아, 미국에 이어 전 세계 포도 생산량의 3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또, 와인 생산 규모는 이 시기 6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재배되는 포도원의 규모와 대량의 와인 생산량에 비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끄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수출 역시 미미한 수준이다.
정작 전 세계 와인 생산량의 상당수가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지만,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자국민인 중국 소비자들 역시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다. 때문에 중국산 와인의 상당수가 베트남 등 일부 동남아시아로 팔려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와인의 주요 소비자인 중국 중산층 이상의 소비자들은 자국산 대신 해외 유명 프리미엄급 와인에 큰 호응을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전 세계 고급 와인 시장의 절반 이상이 중국인 소비자들로 구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 고급 와인 시장의 약 60%가 홍콩과 중국, 대만 등 중화권 출신의 바이어들이 구매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1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며, 지난 2015년 52%를 기록하며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냈던 이후 또다시 아시아에서의 고급 와인 소비력을 증명한 사례라고 평가받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같은 기간 미국은 기준연도인 2018년 대비 3% 감소한 23%를 기록했다는 점과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에서 소비된 고급 와인은 전체 소비량의 11%에 그쳤다는 부분을 상기할 때, 아시아 국가의 고급 와인에 대한 소비력은 유독 눈에 띄는 현상인 셈이다. 특히 중국 대륙과 대만, 태국, 싱가포르 등의 지역에서 꾸준한 소비력을 보이는 상황이다. 다만, 같은 기간 전통적으로 고급 와인의 소비 우위 지역으로 불렸던 홍콩 일대에서 소비되는 고급 와인 시장의 규모가 소폭 하락했지만, 중국 대륙에서의 막강한 소비력으로 고급 와인 시장의 큰손으로 아시아 호랑이의 포효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보르도 와인’을 이사인이 점령했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같은 기간 고급 위스키에 대한 아시안의 소비력도 입증됐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이 기간에 전 세계 고급 위스키 소비 규모 1위에 홍콩이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중화권을 포함한 동아시아 컬렉터들이 요구하는 수준에 맞춰 희귀하면서도 높은 품질의 제품에 대한 수요가 다양하게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같은 수입산 고급 와인에 대한 중국인들의 열광은 반대로 자국에서 생산되는 중국산 와인에 대한 외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저가 제품이라는 ‘딱지’를 떼지 못한 채 매년 대량으로 생산되는 중국 국내산 와인에 대해 여전히 비관적인 전망을 가진 소비자들이 다수라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계 와인 및 주류 전문 컨설팅 업체인 IWSR(International Wine and Spirit Record) 관계자는 중국 국내산 와인 시장의 꾸준한 성장세에 대해 “업계의 발전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면서도 “현재 중국의 국내 프리미엄 와인은 수입산 고급 와인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산 와인 생산 및 판매 규모는 향후 20년 동안 수입산 고급 와인에 대한 중국인들의 소비력을 바꿀 만한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비록 중국 국내에서의 자국산 와인에 대해 대규모 자금 투자가 이어지고 있으나 향후 20~30년 동안 프리미엄급의 수입산 와인에 대한 중국인들의 소비력에 영향을 주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중국 국내에는 자국산 와인의 생산 규모를 대폭 늘리는 것에서 나아가, 최근에는 유럽산 프리미엄급 고급 와인을 대체하기 위한 고급 와인 생산을 위해 자체적인 생산 시설을 확충해나가고 있는 분위기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중국 시베이(西北) 닝샤(宁夏)에 설립된 대규모 와인생산 농장이 꼽힌다. 이 지역은 추운 겨울은 최저 -30℃를 기록하는 건조한 대륙성 기후를 가진 곳이다. 거기에 더해 연간 200mm 이상의 강수량은 포도 재배에 최적화된 자연환경을 가졌다는 평가다. 중국 정부는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지난 2017년 무려 200헥타르 규모의 대형 포도 농장을 조성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주 품종은 샤르도네,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저니쉬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 지역 정부는 대규모 자본을 동원, 해외 기술력과 합작해 설립한 대형 포도 농장을 통해 빠르면 오는 2021년까지 중국산 와인 생산량을 전 세계 1위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특히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에 대한 악명높은 저가 제품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내산 고급 와인 생산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해당 생산 시설을 운영해오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정부의 공격적인 와인 공장 설립 및 운영에 대해 현지 중국 유력언론들은 “와인 생산 시설 운영에 대해 유럽의 것들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중국인 모두 머지않은 시일에 우리의 시간이 곧 올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분명 중국은 고급 와인 생산지로 손꼽히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는 긍정적인 전망을 이어가고 있는 분위기다.
더욱이 이미 지난 2015년부터 중국 중앙 정부는 지방 정부에 대규모 자금 지원을 통해 국내 와인 생산 개선을 장려해왔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 같은 중국 대륙의 전망에 대해 홍콩의 유명 레스토랑인 ‘앰버’의 매니저이자 소믈리에인 존 찬 씨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존 찬 소믈리에는 “(내가 운영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중국산 상표가 붙은 와인을 구매해 배치할 계획이 없다”는 표현으로 국내산 와인보다 해외에서 수입된 프리미엄급 와인에 대한 선호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현재까지 중국 국내산 와인에 대한 수요는 없었으며, 앞으로도 어떤 상품도 입고계획이 없다”면서 “오히려 중국 정부는 고급 와인 생산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는 품질 규제 시스템과 체계적인 와인 분류 작업에 대한 정책 등 가시적인 제도를 완료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와인시장분석기관 와인인텔리전스(Wine Intelligence)의 촨저우 이사 역시 이 같은 중국산 와인에 대한 비관적 전망에 힘을 보탰다. 촨저우 이사는 “국내 와인에 대한 품질 인식이 전반적으로 매우 낮다”면서 “중국산 와인의 생산 및 성장 분위기는 수입산 프리미엄급 와인에 대한 중국인들의 사랑을 감소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대규모 와인 농장 설립 붐이 있었던 지난 2015년 이후 오히려 해외 유명 와인 브랜드 제품의 중국인들의 소비력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기준 중국 관세부가 발표한 수치에 따르면 해외 프리미업급 고급 와인에 대한 중국의 수입량은 무려 6억3800만 톤에 달한다. 때문에 중국 정부가 대규모 자금을 동원에 키우려는 국내산 고급 와인브랜드 성장 계획은 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는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중국 국내 고급 와인을 키우겠다는 중국 정부의 야심 찬 계획이 중국 중상류층의 이목을 끄는 데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지갑을 여는 것에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해외에서 와인 문화의 즐거움을 경험하거나 대중매체를 통해 단순히 흡수하는 중국인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와인이 상당히 유행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 같은 분위기는 해외 유명 브랜드와 수입산 와인에 대한 중국인들의 소비력만 키우는데 일조했을 뿐이라는 평가다.
현지 언론들은 “중국 국내산 와인이 해외 유명 브랜드에 대한 자국민의 관심을 빼앗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면서 “국내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성공을 위해서는 음식과 함께 와인을 즐기는 일종의 와인 문화가 현지에서 정착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