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무학시장에는 순대와 김치만두로 유명한 골목이 있다. 점심으로 순대국밥과 김치만두를 주문한 후, 반주(식중주)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이왕이면 충주 지역 막걸리를 선택하는 게 좋겠다 싶어 소주보단 막걸리 쪽으로 기우는데, 아주머니께서 내오신 막걸리는 단양 대강양조장의 <소백산막걸리>였다. 드라이한 술을 좋아하는 필자 입맛에는 단맛이 강했지만, 시장표 순대국밥에 곁들이기엔 나쁘지 않았다. 훗날 알았다. 이날 마신 <소백산막걸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랑했던 막걸리였다는 사실을.
한 세기의 역사가 담긴 술, 대강양조장
단양의 대표적인 술도가 <대강양조장>의 역사는 1918년부터 시작되었다. 외증조부께서 충주에 <수안보양조장>을 창업한 이래, 4대 조재구 대표까지 100년간 가업이 이어졌다. <수안보양조장>이었던 상호는 3대 조국환 씨가 단양군 대강면으로 장소를 이전하며 <대강양조장>으로 바꿨다.
<대강양조장>은 소백산 지하 400미터에서 나오는 천연암반수를 사용하며, 80~90년 된 옹기 항아리에서 발효시키는 옛 방식을 고수한다. 스테인리스 스틸에서는 대강 막걸리의 맛을 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지역민들의 친구이자 동반자였던 대강 막걸리가 전 국민에게 알려진 계기가 있었다. 2005년 5월 충북 단양군을 찾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강 막걸리 맛에 반해 2008년까지 청와대 만찬주로 지정하면서였다. 이후 대강양조장의 막걸리는 <노무현 막걸리>라는 애칭으로 전국에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단양에 간다면 대강 양조장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대강양조장은 막걸리 전시관, 역사관, 제품관으로 <갤러리>를 꾸며놓았다. 한 세기 동안 막걸리를 빚었던 업장이니 볼거리가 풍성하다. 막걸리 효모균을 키우는 데 사용했던 밑술담금용 입국 상자, 1960년대 말~1971년 단양, 제천 관내 양조장 등에서 펼쳐졌던 밀주 방지 캠페인 전경 사진. 일제시대 사용하던 양조장 술병, 1980년 초반에 사용하던 1,000㎖ 용량의 유리 막걸릿병 등 시중에서 볼 수 없는 도구와 자료 등. 우리술 박물관을 구경한 기분이다.
유쾌 발랄한 도깨비술, 도깨비양조장
대강양조장의 막걸리를 충주에서 처음 만났다면, 도깨비술의 첫 만남은 서울 바틀샵에서였다. 전통주로 가득 채워져 있던 바틀샵 냉장고에서 하늘색(7도), 분홍색(9도), 보라색(11도) 옷을 입고 있는 귀엽고 땅땅한 포장 용기는 단연 눈에 띄었다. 처음엔 이 술이 진짜 막걸리인가 싶어 의심이 들기도.
기존 막걸리가 가진 고정관념을 깨며 차별적인 맛과 향, 디자인을 선보이는, 소규모 양조장에서 빚은 막걸리를 <크래프트 막걸리>라고 한다. 몇 년 전 붐을 일으켰던 <크래프트 비어>에서 차용한 신조어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빚는 도전정신 강한 막걸리인 크래프트 막걸리를 소개할 때면,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양조장과 술이 있다. 단양 도깨비양조장의 <도깨비술>도 그중 하나다.
2019년 8월에 오픈한 <도깨비양조장>은 단양군 가곡면에 있는 작은 양조장이다. 판매 업장이 아니라 내부는 양조 장비와 동 증류기로 꽉 채워졌지만, 막걸리 마니아 사이에선 단양 여행 중 꼭 들려야 할 성지로 소문나 있다.
도깨비양조장을 운영하는 김정대 대표 부부는 처음부터 단양에 살았던 건 아니다. 자녀교육을 위해 서울에서 단양으로 귀농하였고, 생업으로 술 빚는 일을 선택하였다. 김 대표는 오래전부터 취미로 술을 빚어왔지만, 가양주연구소에서 전문가 과정을 밟으며 양조장 창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였다. 도깨비 양조장의 대표브랜드는 <도깨비술>이다. 부모님께 단양으로 내려가 술 빚는 일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이 도깨비 같은 X”라고 하셨던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도깨비는 밤이 되면 자신들의 술 파티를 열고, 날이 새면 소리 없이 사라지는 유쾌, 발랄, 익살스러움을 지녔고, 숙성되는 생막걸리의 변화무쌍한 맛은 도깨비와 닮았다. 부부는 서울에서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했던 터라 라벨이나 디자인, 도깨비 캐릭터까지 손수 만들었다. 술 좋아하고 장난기 넘치는 도깨비 캐릭터는 남녀노소가 좋아하도록 친근하고 귀엽게 표현했다.
<도깨비술>은 충북 단양의 물과 제천 의림지 쌀, 우리밀 누룩을 사용하여 빚는 프리미엄 수제 막걸리다. 100% 멥쌀로 빚어 끝 맛이 깔끔한 데다가 감미료나 첨가물을 넣지 않아 머리가 아프거나 숙취가 없다. 현재 7도, 9도, 11도 세 종류의 막걸리(탁주)로 출시한다. 7도는 라이트 바디로 목 넘김이 가볍고, 9도는 단맛과 도수의 향이 좀 더 강하다. 11도는 술을 좀 마신다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묵직한 바디감이 느껴진다. 라벨 색으로 등급을 나누는 위스키처럼 도수에 따라 패키지 색을 다르게 입혔다. 도깨비술 외에 쌀을 증류한 담금주를 판매하며, 조만간 단양의 특산물을 이용해 증류주 출시를 앞두고 있다.
지난주 필자는 단양 구인사로 취재를 다녀왔다. 소백산은 노랗고 붉은 옷으로 예쁘게 갈아입었다. 소백산이 감싸고 남한강이 흐르는 단양은 사시사철 볼거리가 많은 데다가, 물과 산세가 좋은 지형이라 맛있는 술을 빚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단양>이라는 지명은 ‘신선이 다스리는 살기 좋은 고장’, 연단조양(鍊丹調陽)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술맛이 좋으니 사람이 살기에도 좋고, 신선이 살기에도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