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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식품과 와인의 상관관계

불량식품과 와인의 상관관계

양정아 2019년 8월 1일

초등학교 1학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떡볶이고 먹는 과자라곤 치토스와 멘토스밖에 없었던 그때. 전학을 간 학교에서 옆 짝꿍이 내민 불량식품 하나로 어린 나는 신세계를 맛보았다. 딸기 맛 풍선껌의 캐러멜 버전 같은 그 물체의 정체를 물었을 때 짝꿍은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을 법한 조그마한 소리로 “피자”라고 말했다. “피자?” 피자가 이 맛이라고? 의문을 품는 나에게 껍질을 건네었고 강렬한 핑크색 포장지 위에는 노란색으로 ‘fizzer’라고 적혀 있었다. 그 후, 등하굣길 문구점에서 매일같이 사 먹다시피 한 풍선껌 맛 캐러멜은 그 맛을 잊어갈 때쯤 와인에서, 특히 뉴질랜드 피노 누아(Pinot noir)에서 ‘fizzer’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와인에서 종종 느껴지는 꼬마곰 젤리향 / 사진 제공: 양정아

군것질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끼니 외에 과일이나 과자 따위의 군음식을 먹는 일’ 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군음식이란 제주 방언으로 간식을 뜻하는 굴룬음식에서 유래했고 식사 사이에 먹는 과자 따위의 음식을 뜻한다. 와인에 빠져있는 것만큼 군것질에 빠져있던 어릴 때 기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과자 따위의 군음식’의 맛은 와인을 마실 때 예상치 못하게 튀어 올라 종종 내 후각을 자극한다.

내 기호와 경험에 따르면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지역의 네비올로(Nebiolo) 100% 만들어지는 바르바레스코(Barbaresco)에서는 생크림 케이크 위에 얹힌 가짜 체리 향이 난다. 어릴 때 빵집에서 사던 케이크를 떠올려보면 케이크의 맛보다 생크림으로 범벅된 케이크 위에 축하하는 상징적 의미가 큰 설탕으로 만든 요상한 캐릭터와 체리보다 밝고 투명한 자태를 뽐내는 가짜 체리가 하나 얹혀 있었다. 생크림에 파묻혀 있던 가짜 체리를 꺼내 한입 베어 먹는 순간 입안에 퍼지는 인위적인 체리향과 인위적임을 조금이라도 무마하기 위해 붙어있는 생크림이 닿으면 바르바레스코에서 나는 네비올로의 향이 느껴진다. 네비올로 품종에 통상적으로 알려진 캐릭터는 보통 타닌과 산도가 강한, 체리향, 가죽향, 장미향이다. 가짜 체리를 진짜 체리보다 더 많이 먹어보았던 그때에는 생크림 케이크 위에 얹혀진 가짜 체리향 만큼 강렬한 ‘체리향’은 없었다.

어릴 때 슈퍼에 가면 항상 10원짜리 풍선껌보다 크기는 약 1.5배 두께는 약 0.5mm로 두껍던 덴버껌이 계산대 앞에 놓여 있었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메롱 하며 웃고 있는 덴버는 필통에 판박이로 긁어 놓고 간직할 수 있어서 다른 10원짜리 풍선껌들과 차별화된 50원짜리의 가치를 톡톡히 했다. 더군다나 ‘풍선껌 크게 불기’ 등의 내기 욕구를 자극하며 어렸던 우리들의 가벼운 주머니를 털었다.

풍선껌 향. 보졸레 와인을 마시면서 종종 느끼는 이 향은 특히 보졸레(Beaujolais) 10개의 크뤼(Cru)마을 중의 하나인 물랭 아 방(Moulin A Vent)을 마실 때 종종 경험하게 되는 캐릭터이다. 보졸레 레드 와인을 만드는 품종은 가메. 가메는 보통 타닌은 적고, 신선한 산도의 블루베리 향(나의 시음 노트에 의하면 유럽 시장에서 사는 블루베리 향이다), 라즈베리 향, 딸기 향과 같은 캐릭터로 이야기된다. 나에겐 라즈베리보다 익숙한 딸기와 딸기보다 조금 더 산도가 있는 덴버껌 향, 이에 더해 풍선껌을 씹을 때 느껴지는 쫀득한 캐릭터가 만나 ‘물랭 아 방=뎀버 껌’의 공식이 생겼다.

오래된 불량식품과의 대화 같은 생각이 들지만. 위에 언급한 군것질들은 10년 동안 와인을 마시며 가장 많이, 또 가장 정확하게 느꼈던 캐릭터이다. 그렇다면 와인의 끝 맛. 여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요즘 우리나라에도 조금씩 바람이 불고 있는 내추럴 와인을 마시면 자주 느껴지는 마지막 느낌. 바로 “사랑해요 밀키스!” 밀키스다. 지금은 국민 프로듀스 워너원의 깜찍한 멤버들이 ‘밀키스 요하이’ 광고를 하고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밀키스의 맛은 수많은 패러디를 만들었던 ‘사랑해요, 밀키스’ 안에 있다. 우유 같은 첫 모금을 선사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고 탄산이 톡 쏘는 듯하다가 잔잔하게 마무리되는 끝 맛. 바로 이 탄산 느낌은 내추럴 와인에서 느껴지는 끝 맛과 닮았다.

동전만 한 크기가 2만 원을 넘나드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약으로 먹었다는 프랑스 초콜릿부터, 2만 원이면 한 상자를 살 수 있는 편의점 초콜릿들까지. 군것질 계의 빈부격차를 만들어내고 군것질 계의 끝판왕이라 볼 수 있는 초콜릿은 군것질거리 중에서는 공식적(?)으로 와인의 향을 표현하는데 언급되곤 한다. 이러한 초콜릿의 단맛이 드라이한 와인과 만나면, 와인의 섬세하고 다채로운 향과 맛에 방해가 될 수 도 있다는 견해들도 있지만 나는 쌉쌀한 다크 초콜릿과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가 주로 블렌딩 된 와인들을 즐겨 마신다.

주로 오크 숙성을 해서 만들어진 와인에서 바닐라 향이 난다 / 사진 제공: 양정아

맛의 기억이 너무나 황홀해 병째 들고 와 보관하고 있는 와인들을 나중에 다시 그때의 느낌을 찾아 같은 와인을 사서 마시면, ‘내가 도대체 왜 힘들게 이 와인병을 싸 들고 와서 엄마의 구박을 받으며 책장에 책 대신 고이 모셔 놓았나?’ 싶을 정도로 당시의 기억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와인이 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스페인 여행 중에 마셨던 템프라니요(Tempranillo)를 블렌딩 해 만든 화이트 와인은 눈을 감고 향을 맡으면 템프라니요 100% 레드 와인이라고 할 만큼 화이트와인의 캐릭터보단 레드 와인의 캐릭터가 강했다. 사람은 무언가를 기억하는 데 있어서 시각, 미각, 그리고 촉각 등 강렬했던 특정한 감각에 의존하게 된다. 레드와 화이트를 구분 짓는 확실한 감각이 시각이었다면 시각이 사라진 후에는 포도 자체의 특징에 집중할 수 있다.

책상에 손을 넣어 친구와 함께 선생님 몰래 먹던 불량식품들. 공부하다 답답하면 매점에 가서 마시던 밀키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촛불 후 불며 늘 함께했던 생크림 케이크. 와인을 마시는 순간마다 행복한 기억을 담고 있는 군것질거리들이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와인을 마실 때마다 익숙한 기억을 끌고 와서 내 후각을 자극하는 걸지도 모른다. 기억하고 싶은 와인의 향이 있다면, 하루가 멀다 하고 찾게 되는 ‘맛’ 중 비슷한 무언가를 떠올려 보자. 어릴 때 잊지 못할 추억처럼 그 와인을 더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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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아

빠리의 로맨스를 꿈꾸고 뉴욕의 화려함을 동경하는 현실적 낭만주의자 #퐁당클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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