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맥주에 입문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시도하고, 한번 시도하면 한동안 빠져있게 만드는 맥주, IPA에 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IPA는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 지배하던 시절에 만들어졌는데, 이때 인도에 머무르던 영국군에게 옷과 식량, 그리고 맥주를 공급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비행기로 수송할 수도 없었고, ‘수에즈운하’도 없는 시절이라 배를 타고 아프리카를 돌아 적도를 두 번이나 거쳐, 무려 3개월이 걸려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맥주는 쉽게 상해버렸고, 영국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고민하던 중 방부제 효과를 가지고 있는 홉을 당시에 유행하던 ‘페일 에일(Pale Ale)’이라는 맥주에 넣어 인도로 보냈습니다. 그 결과 맥주는 상하지 않고 잘 도착했고, 이때부터 ‘인도로 가는 페일 에일’이라 하여 IPA(India Pale Ale)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식민지 마케팅의 일종으로 인디아를 붙여 판매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위의 가설이 현재는 가장 공신력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맥주의 주재료 중 홉이 주가 되는 맥주 IPA는 호피(Hoppy)한 맥주라고도 합니다. 홉은 맥주의 방부제와 같은 역할도 하지만, 쓴맛을 주기도 하고 특유의 맛과 향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홉은 원산지마다 가지고 있는 특유의 맛이 있는데, 어느 나라의 홉을 사용했는지에 따라 맥주의 맛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맥주의 원산지나 생산된 IPA의 스타일에 따라 달라지는, 홉이 주는 다양한 매력을 느껴보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영국식 IPA를 재해석하여 출시한 미국식 IPA는 영국산 홉이 아닌 미국산 홉을 사용하다 보니 오렌지, 자몽과 같은 Citrus한 캐릭터가 주로 나타나고, 페일 에일보다 도수를 높이기 위해 맥아를 더 사용하여 짙은 외관과 묵직함이 밸런스 있게 나타납니다. 위 스타일은 미국에서 최초로 유행하기 시작했던 IPA의 모습이며, ‘East Coast IPA’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홉의 맛에 더 집중하기 위해 맥아의 캐릭터가 비교적 적은 맥아를 사용하여 밝은색의 외관을 가진 IPA를 만들기 시작했고, 특히 이 맥주는 서부에서 주로 많이 만들게 되면서 ‘West Coast IPA’ 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서부식 IPA의 강조된 강한 쓴맛보다 홉의 풍미를 더 살리고자, 동부에서는 홉의 풍부한 맛을 그대로 맥주에 녹이고 보다 부드럽고 쓴맛을 줄여 홉 주스(Hop Juice)처럼 마실 수 있게 만든 뉴잉글랜드 IPA(New England IPA 줄여서 NEIPA)가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위의 맥주가 미국에서 유행하고 나서 국내의 발 빠른 브루어리들은 위 스타일의 제품을 선보여 대중에게 소개했습니다.
이 NEIPA 스타일에 대응하기 위해서 서부에서는 새로운 Brut IPA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NEIPA의 적당한 단맛과 높은 바디감, 무엇보다 탁한 외관과는 반대로, 아주 극소량의 당(물과 비슷할 정도)만을 남겨두고 전부 발효에 사용되게 하여, 아주 가벼운 목넘김과 적당한 홉의 캐릭터와 비교적 투명한 외관을 가지고 있어 마치 ‘샴페인’스럽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것도 국내에서 몇몇 브루어리들이 양조하여 선보이고 있으며, 일부 브루어리에서는 수준급의 맥주를 생산하기도 합니다.
이제 국내에서 구할 수 있거나 국내에 수입되었던 맥주 위주로, 스타일별로 추천하는 맥주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Dogfish 60 Minute IPA(American IPA / 6.0% ABV)
아래에 소개되는 다른 맥주들에 비해, 진한 맥아의 풍미인 약간의 토스티함과 은은한 아몬드와 같은 고소한 캐릭터에 미국의 시트러스하고 화사한 홉의 풍미가 밸런스 있게 잘 어우러집니다. 국내에서는 다소 비싼 가격에 판매되었지만,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맥주입니다.
2. Sculpin IPA(West Coast IPA / 7% ABV)
국내 업계에서는 유통 관련하여 이슈가 있지만, 맥주 자체는 상당히 훌륭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형적인 서부식 IPA가 가지고 있어야 할 모든 캐릭터를 가지고 있어, 비교적 깔끔한 맥아 풍미 덕분에 홉의 시트러스하고 파이니한 홉의 풍미가 잘 나타납니다. 대형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맥주로, 한번 드셔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3. LIC Humming Dragon(New England IPA / 7% ABV)
파인애플, 자몽과 같은 홉의 풍미가 아주 강하게 나타나며, 절제된 쓴맛과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가장 중요한 주시(Juicy)함이 잘 나타나는 맥주입니다. 이 맥주는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홉의 풍미가 중요하여 생산일로부터 최대한 빨리 마시는 좋습니다. 국내 양조장에서 이 스타일의 맥주를 많이 생산하고 있으니, 국내 양조장의 신선한 맥주를 드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4. Brutiful Day(Brut IPA / 7.2% ABV)
국내에 들어온 Brut IPA 중 하나로, 맥아의 단맛을 느낄 수 없어 아주 깔끔하고 드라이한 마우스필(Mouthfeel)과 넬슨소빈 홉을 사용하여 더욱 ‘샴페인’ 같은 느낌을 줍니다. 특히 위의 ‘New England IPA’와 비교하여 마시는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