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 수확을 일컫는 프랑스 단어인 Vendange(방당쥬)가 따로 존재할 정도로, 포도 수확은 한 해 열심히 길러낸 포도를 와인으로 만들어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와인 생산 과정입니다. 와인 생산자는 수확 전 포도밭에서 여러 번 포도를 맛보고 실험실에서 분석 수치를 참고하기도 하며 포도의 당도, 산도, 타닌, 강우량, 그해 기온의 패턴, 그리고 만들고자 하는 와인의 스타일을 감안하여 수확에 가장 적합한 시기를 결정합니다.
프랑스에선 지난 8월 19일, 보르도의 여러 샤토들이 화이트 포도 품종의 수확을 시작했으며, 이는 프랑스에서 최대 폭염을 기록했던 지난 2003년만큼이나 이전에 비해 매우 앞당겨진 수확 일정입니다. 많은 와인 생산자들이 모두 적당한 수확 시기를 결정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 여러 와인 산지에서 매년 기후 변화로 인해 수확 시기를 예측하기 어려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산 지역의 위치와 와인의 스타일에 따라 결정되는 수확 시기
생산 지역의 위치에 따라 계절의 시기가 다르듯, 남반구와 북반구의 수확 시기는 대개 아래의 시기를 따릅니다. 참고로 적도에 가까운 지역일수록 상대적으로 빨리 수확합니다.
– 북반구(주요 지역: 미국과 유럽) : 7월에서 11월, 주요 시기는 8월 말에서 10월 초
– 남반구(주요 지역: 라틴 아메리카, 호주와 뉴질랜드) : 1월에서 6월, 주요 시기는 2월에서 4월
와인의 스타일 또한 수확의 시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많은 지역에서 화이트 포도품종을 먼저 수확하고 레드 포도 품종을 뒤늦게,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는 좀 더 일찍 수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도 높은 디저트와인이나 아이스 와인을 만들기 위해선 늦게 수확합니다.
프랑스 지역별 수확의 시기
최종 수확의 시기를 결정하는 것을 무엇보다 포도가 수확에 적합한 상태에 이르렀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매년 기온의 격차가 큰 요즘은 지역별 수확의 시기가 그해의 날씨와 기온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있지만, 보통 8월 말에서 10월 말까지 선택적으로 수확이 진행됩니다.
프랑스에서 수확이 먼저 이루어지는 곳은 프랑스 남단에 위치한 코르시카 섬과 프로방스, 랑그독 루시용입니다. 북쪽으로 갈수록 대개 시기는 늦어지며, 와이너리는 일기예보를 살펴 서리와 폭염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확 일정을 더 빨리 혹은 늦게 조정하기도 합니다. 포도나무에 열려있는 포도가 시들지 않으면서 과즙과 과육이 풍부한 상태가 그 해 기상 이변이 없다면 일반적인 수확의 시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 프로방스, 코르시카 섬과 랑그독 루시용 : 8월 말
– 보졸레와 론 남부 : 9월 초
– 론 북부, 보르도, 부르고뉴, 사부아, 쥐라, 프랑스 중부와 남서쪽, 루아르 : 9월 중순
– 알자스와 샴페인 : 9월 말
– 꼬냑과 로렌 : 10월 초
프랑스에선 생산 지역의 구청이 수확의 시기를 결정
프랑스엔 포도나무에 꽃이 핀 후 100일이 지난 후부터 수확을 할 수 있는 법이 있습니다. Lever le ban des vendanges라 불리는 이 법은 각 지역에서 너무 빨리 수확을 해 와인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로 현재도 포도를 생산하고 와인을 만들어 판매하고자 하는 와이너리는 이 법을 준수하여야 합니다.
손 수확과 기계 수확
프랑스는 약 750,000헥타르 이상의 면적에서 3,000여 가지의 각기 다른 포도 품종을 재배합니다. 로마인들이 6세기부터 와인을 만들었지만, 유럽의 주요산지처럼 프랑스에선 여러 규제와 시행착오를 거쳐 좋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기에 적합한 노하우를 쌓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형과 포도나무의 특성상 신세계의 와이너리에 비해 여전히 손으로 포도를 수확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곳이 많은데, 수확의 시기에 한시적으로 고용하는 인력에 최저 임금으로 제공하는 (최저시급) 급료에 비해 노동의 강도가 매우 높은 편입니다.
작은 와이너리는 가족과 친구가 이 시기에 수확을 돕고, 포도를 수확하는 시기 동안 와이너리에서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 많습니다. 아침 일찍 시작해 오후 다섯 시쯤 수확을 마치는 일정을 따르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와이너리는 햇볕이 나지 않는 밤과 매우 이른 새벽을 수확 시간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기계 수확은 손 수확에 비해 매우 빠르고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포도를 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루에 사람이 포도를 1 톤가량 딸 수 있다면 기계는 200톤을 딸 수 있기에 그 신속함은 큰 장점이지만, 기계로 수확하는 도중 포도나 포도나무에 상처가 나기도 합니다. 결국 양조에 이용되기도 하는 포도의 줄기를 세심하게 정리할 수 있는 손 수확의 퀄리티를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발효에 들어가기 전 훼손된 포도의 빠른 산화도 우려되기에 기계 수확을 이용하는 곳이라도 그 와이너리의 대표 와인은 손으로 수확한 포도를 이용해 만들고, 보다 쉽고 저렴한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를 수확하기 위해 기계 수확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와인을 만드는 가장 힘든 과정이지만 축제이기도
와인 산업은 프랑스의 주요 산업 중 하나이자 라이프 스타일의 필수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대부분의 지역에서 포도나무와 와이너리를 쉽게 볼 수 있어 수확이 다가오는 시기에 여러 마을에서 수확과 연관 있는 축제와 행사가 열립니다. 그 예로 루아르 지역에서는 Festivini라는 행사로 10일간 그 지역의 레스토랑에서 와인 페어링 메뉴를 제공하며, 부르고뉴에서는 매년 9월 셋째 주에 일반인들도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를 압착하는 Fête de la Pressé 행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주요 와인 산지는 아니지만 와인의 주요 생산국의 수도답게 파리의 몽마르트에서도 한 해 포도의 수확을 기념하는 Fête des Vendanges de Montmartre가 열립니다. 이후 처음으로 만들어진 한 해의 와인을 같이 나누는 보졸레 누보까지, 힘든 과정이지만 이렇게 무사히 한 해를 마무리하는 포도와 와인의 기쁨을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