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레드 가이드 서울판 발간(11월 7일)이 일주일 정도 남았다. 별보다는 국화빵을 더 닮은 미슐랭 스타를 어떤 식당이 몇 개를 차지할지 모두들 관심을 집중한다. 대상이 되는 식당의 종사자들도 별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하지만, 미슐랭 포도송이 또한 중요하다.
별이 종합적인 평가를 반영해 셰프에게 영예를 선사하는 것이라면, 포도송이는 미슐랭 평가 기준 중 일부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해 프랑스에서 한국인 셰프로서 최초로 미슐랭 스타를 획득한 리옹의 르 빠스 떵의 경우 이영훈 셰프뿐만 아니라 하석환 소믈리에 또한 파리에서의 시상식에 같이 정식 초대받았다. 이처럼 미슐랭은 와인 리스트, 소믈리에 서비스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함께 소믈리에 직업에 대한 예의를 차려준다.
미슐랭 포도송이를 갖춘 식당은 대부분 수준급 소믈리에를 보유하고 있다. 거꾸로, 수준급 소믈리에가 당연히 있을 법한 미슐랭 2스타 이상은 대부분 포도송이를 획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평가 기준이 유럽과는 다르겠지만-일본의 경우 사케 리스트를 평가해 사케 병 표시를 하기도 한다-상대적으로 와인 리스트와 소믈리에 서비스가 더 좋은 식당에 포도송이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에서 이뤄진 식당 평가 중 미슐랭이 부분적이나마 식당에서의 와인에 대한 평가를 최초로 다루게 된다. 어찌 보면 지엽적인 부분이지만, 제대로 된 와인 리스트, 만족감을 주는 소믈리에 서비스를 미슐랭이라는 화제성 높은 매체를 통해 조금이나마 더 인정받고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많은 한국의 소믈리에들이 매니지먼트 일을 겸하며 코키지에 맞서 싸우며 박봉에 어렵게 일하고 있다. 그래도 남는 시간을 쪼개 열심히 공부하며 나름의 주관을 갖고 고심해 업장 성격과 음식에 맞는 와인 리스트를 짜고 그에 맞는 서비스와 기물을 준비한다. 이들의 희생 아닌 희생 덕분에 단언컨대 가장 와인을 즐기기 좋은 경우가 만들어진다.
밥만 먹는 미식이 아닌 ‘와인을 포함한’ 행복한 미식에 빠져들 수 있는 유일한 경우이기도 하다. 와인을 몰라도 된다. 그래서 소믈리에가 존재한다. 남이 알아서 나의 취향을 맞춰 서비스를 해줄 때 얻는 만족감이란 때로 예쁘게 플레이팅된 스타 셰프 요리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이 작은 포도송이가 와인 온 트레이드 마켓뿐만 아닌 한국의 와인시장 전반의 질적 양적 향상에 나비효과를 일으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