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술이라면 예전엔 소금과 라임을 곁들여 한 번에 마시는 데킬라(Tequila)를 먼저 상상했지만, 요즘 전 세계 유명한 바에서 눈에 잘 보이는 선반에는 메스칼(Mezcal)이 놓여있고 좀 더 낯선 풀케(Pulque)라는 술도 이국적인 술과 칵테일을 찾는 힙스터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멕시코시티는 물론, 뉴욕과 메트로폴리탄 도시들을 중심으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멕시코 출신의 술들. 오늘은 외국으로 떠나지 못하는 여름이라 더 가보고 싶은 멕시코, 그곳에 가면 꼭 맛봐야 할 술을 소개합니다.
데킬라와 메스칼은 다른 술인가요?
메스칼과 데킬라은 여러 면에서 비슷한 증류주이지만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먼저 두 술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사용되는 원료입니다. 메스칼은 50여 개가 넘는 아가베를 섞거나 따로 증류해 만들지만 데킬라는 용설란과 아가베 속의 블루 웨버(Blue Weber)라는 한 식물만을 원료로 쓸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데킬라는 메스칼의 한 종류라 부를 수 있지요. 또 한 가지 차이점은 만드는 방식입니다. 데킬라를 만드는 블루 웨버는 보통 쪄서 가공하지만, 메스칼의 아가베는 굽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훈연한 듯한 스모키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가베는 뜨겁고 건조한 기후를 좋아하는 식물입니다. 아가베를 이용해 만드는 모든 술은 비노스 데 메스칼레스(Vinos de mezcales)라는 이름 하나로 불렸는데, 할리스코 주의 데킬라라는 도시에서 블루 웨버로 만든 술이 명성을 얻으며 메스칼과 데킬라가 서로 다른 술처럼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데킬라는 대형 주류제조사의 마케팅과 미국에서의 인기를 업고 어느 나라에서건 유명한 술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반면 메스칼은 그 이름이 알려진 지 오래되지 않았으나, 최근 들어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소규모 생산자의 제품만 구할 수 있었던 메스칼은 힙스터들과 소규모 생산자를 장려하는 바와 레스토랑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최근 들어 데킬라와 비슷한 방향으로 성장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데킬라보다는 메스칼의 병 레이블에서 생산자와 발효 등의 술 관련 더 많은 정보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영어로 검색되는 웹사이트이지만 tequilamatchmaker.com와 mezacalistas.com에서 검색하면 데킬라와 메스칼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데킬라 : 시간과 숙성에 따라 변화하는 술
많은 사람들이 데킬라는 파티에서 한잔을 한 번에 마셔야 하지만 특유의 거친 맛과 향 때문에 마시기 어려운 독주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엄선된 생산/증류 과정을 거치고 잘 숙성된 고급 데킬라는 좋은 위스키처럼 풍부한 맛과 향 그리고 목 넘김을 자랑합니다.
데킬라를 구입할 때 첫 번째로 확인해야 하는 것은 100퍼센트 아가베로 만들어졌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간혹 병의 밑쪽에 mixtos라고 쓰인 제품이 있는데, 이는 오직 51퍼센트의 아가베 함유량에 설탕이나 다른 재료가 쓰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데킬라가 생산될 수 있는 지역은 할리스코(Jalisco), Nayarit(나야리트), Guanajuato(과나후아토), Tamaulipas(타마울리파스), 그리고 Michoacán(미초아칸)인데, 한 곳에서 생산된 싱글 오리진 데킬라가 비교적 일정한 맛과 향 그 특성을 간직해 맛보는 재미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마트의 선반에서 확인할 수 있는 데킬라의 종류입니다.
1. 블랑코(Blanco 혹은 joven)
2. 레포사도(Reposado)
3. 아네호(Anejo)
블랑코는 배럴 숙성을 거치지 않아 투명한 색의 데킬라이며, 아네호로 갈수록 색과 풍미가 더 짙어집니다. 블랑코는 아가베의 맛을 더 깨끗하게 보여주는 술, 레포사도는 아네호를 최소한 두 달 이상, 그리고 아네호는 12개월 이상 배럴에서 숙성해 블랑코에 비해 상대적으로 짙고 복합적인 향을 느낄 수 있는 술입니다.
*좋은 품질의 소규모 생산자가 만든 데킬라를 프랑스에서 수입하는 Bleu Agave의 대표, Martha Murgia의 말에 따르면, 데킬라가 큰 브랜드로 여러 나라에 알려졌지만 그 풍미나 개성을 느끼고자 한다면 소규모 Artisanal 생산자의 데킬라를 좀 더 노력해 마셔보길 권한다고 합니다. 이제까지 상상하거나 경험했던 데킬라와 전혀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메스칼 : 다양한 포도품종의 와인과 같은 매력
메스칼 술병 바닥에 애벌레가 담긴 광경을 보신 적도 있겠지만, 오늘날 잘 만들어 술이 담겨있는 용기에서 벌레를 보는 건 쉽지 않습니다. 멕시코에선 집안에 아이들이 태어날 때, 결혼식 그리고 장례식까지 멕시코인들의 희로애락에 함께하는 술인 메스칼은 숯을 이용해 아가베를 굽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특유의 향과 맛으로 다른 증류주와 차별화합니다. 메스칼을 대량생산하는 업체는 인공적으로 이 향을 집어넣기도 하지만, 이 스모키함만을 술에서 느낀다면 당신이 마시는 메스칼을 좋은 메스칼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구운 치즈에서 정향, 아스파라거스나 바닐라와 같은 향까지 다양하고 흥미로운 향을 느낄 수 있는 술이며, 다양한 아가베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포도 품종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는 와인처럼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술로 탄생할 수 있습니다. 메스칼은 Oaxaca(오아하까), Durango(두랑고), Zacatecas(싸까테까스), San Luis Potosí(산 루이스 포토시), Guerrero(게레로) 등 다양한 멕시코의 지역에서 만들어집니다.
메스칼 인증을 받은 술은 아래 세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1. Ancestral
2. Artisanal
3. Industrial
첫 번째 Ancestral 제품은 증류 전 공정을 손으로 다루고, 스테인리스 스틸이 아닌 토기 용기에서 증류를 거치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한 것입니다. 두 번째 Artisanal 방식은 약간의 기계 공정을 도입할 수 있으나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의 일부를 고수하며, 생산 규모에서 대규모 Industrial 제품과 비교할 수 없는 적은 양을 생산합니다.
풀케(Pulque) : 신의 음료라 여겨졌던 전통 음료에서 힙스터의 술로
외관상으론 막걸리와 비슷해 보이는 순백색의 술인 풀케는 아가베를 주원료로 만듭니다. 데킬라와 메스칼이 Piña(피냐)라 불리는 아가베의 중심 부분을 이용한다면, 풀케는 아가베의 달콤한 수액으로 만들어지며 풀케를 만들기 위해 아가베를 파고 크게 훼손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먼저 수액을 거두어 플라스틱 탱크에 넣고 자연 효모와 공기로 발효 시켜 만드는데, 이는 스페인의 식민지 시대 전 신의 음료로 불렸던 술이며 사제와 높은 지위에 있던 이들만 마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이 멕시코를 점령하고 현대사회에 맥주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로비 등의 이유로 풀케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요.
다행히 오늘날 멕시코 시티의 유명하고 인기 있는 바에선 풀케에 과일주스를 섞은 칵테일 혹은 여러 맛으로 다양화한 풀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약 5-7도 정도의 알코올 함량에 약발포성으로 여름날에 잘 어울리는 음료이지만, 막걸리처럼 외국에선 멸균된 제품만을 마셔볼 수 있어 진정한 풀케의 맛을 느끼기 어려운 것이 단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