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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시장과 두부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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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시장과 두부 김치

송나현 2016년 6월 21일

집 근처에 작은 시장이 있다. 한 번씩 반찬가게에 들려 반찬을 사기도 하고, 과일 가게에서 과일을 사와 냉장고를 채우기도 하고, 카페에서 원두를 사와 모닝커피를 내려 먹기도 한다. 맨 처음 이사 올 당시에는 꾀죄죄한 시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작위로 펼쳐져 있는 상점들과 좁은 골목 사이로 다니는 오토바이와 자전거. 시끄러운 아주머니와 술 먹은 채 목소리를 높이는 아저씨들. 본가 근처에 있는 여러 개의 대형마트가 그리웠고 향수병까지 불러일으켰다. 쾌적한 에어컨 밑에서 카트를 미는 게 얼마나 쾌감을 느끼는 일이었는지 새삼 깨닫곤 했다.  

<사진 : 오마이뉴스>

1년쯤 지나니 시장이 익숙해졌다. 순댓국집에 들어가 혼자 소주에 순댓국을 먹으면 주인아주머니가 서비스라며 내장을 듬뿍 담은 접시를 내온다. 4평짜리 빵집에서 파는 단팥빵은 냉장고에 넣어놓고 다음 날 아침에 먹어야 가장 맛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그 조그만 시장에 변혁이 일어났다. 떡집이 있던 자리에 두부 가게가 생겼다. 이사 가는 떡집 아저씨는 근처 고깃집 사장님과 밤새 술을 마셨다. 골목을 지나가며 그 모습을 본 나는 임대차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임대인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고 임대차 계약을 막아둔 건물주를 욕했지만, 속사정을 누가 알랴. 사실 그 집 떡이 맛없긴 했었다.

두부 가게가 오픈한 날, 두부 가게에 여러 개의 화환이 놓였고, 의뭉스러운 시선을 보내던 주부들은 갓 나오는 두부의 고소한 냄새에 끌려 두부 가게를 분주하게 만들었다. 저녁을 먹긴 해야 하는데 딱히 당기는 음식도 없고, 해먹고 싶은 요리도 없었던 나에게 두부는 유혹의 시선을 보냈다. 갓 나온 두부는 탱글탱글한 몸을 살살 흔들며 내 시선을 끌었다.

<사진 : 허핑턴포스트>

냄새는 어찌나 고소한지. 콩 냄새의 고소함을 새삼 깨달았다. 가게 앞을 지나치지 못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 두부 한 모를 샀다. 개장 기념이라며 주인아저씨는 비지도 듬뿍 담아주셨다.

따끈따끈한 두부 새는 내 코를 자극했고 봉지를 손에 든 순간부터 먹고 싶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장악했다. 결국, 요리는 포기한 채 슈퍼에서 막걸리 한 병을 사고 반찬 가게에서 볶음 김치를 사와 집 앞 테라스에 앉았다. 사실 우리 건물 앞 테라스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골목길에 있는지라 한 번도 앉은 적이 없지만, 집에 들어가 상을 피고 준비를 할 생각을 하니 칼로리가 절로 소모돼 집까지 갈 힘이 없었다.

테라스에 신문지 한 장을 깔고 그 위에 아직 식지 않은 두부와 막걸리, 볶음 김치, 반찬 가게에서 얻어온 나무젓가락과 종이컵을 펼쳤다. 여름이 다가오는지 햇살은 7시임에도 반짝였고 나무 테이블에 꽂힌 파라솔은 그 햇빛을 반사했다.

<사진 : 조선일보>

좀 더운 감이 있긴 했지만 난 의자에 앉아 뜨거운 두부를 한 젓가락 떼어내 입안에 집어넣었다. 김치도 한 젓가락, 차가운 막걸리 한 잔. 아, 여름을 맞이하는 날의 고소한 저녁.

마트에 가서 싱싱한 해산물과 파릇파릇한 채소, 새로 보는 파스타 면을 사와 파스타를 해먹어도 맛있겠지만 성급하게, 배고픈 배를 부여잡으며 먹는 두부 김치도 그에 못지않았다.

난 시장을 사랑하게 됐다. 사실 동네시장이라고 덤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며, 값이 특별하게 싼 것도 아니다. 여름에는 비지땀을 흘리며 장을 봐야 하고, 겨울에는 차디찬 바람에 손을 비벼가며 지갑을 꺼내야 한다.

하지만 단골손님이 되면 서비스로 사이즈 업을 해주는 카페 사장님도 만나고, 자식 자랑을 늘어놓는 사이 토마토를 더 담아주는지도 모르는 헐렁한 과일 가게 할머니도 만나며, 자신의 두부에 자부심을 품는 아저씨도 만난다.

아직 그 두부 가게는 성행 중이고 최근에는 비지찌개도 포장해서 판다. 그 비지찌개도 맛이 기가 막히다. 아저씨는 내가 순두부를 좋아하는 걸 알아 수요일 저녁이면 내가 주문하기도 전에 순두부를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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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에 시장이 있다면 한 번 방문해보라. 그 안에는 동네의 변천사를 꿰뚫고 있는 할아버지가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쫓겨나는 처지를 슬퍼하며 고깃집 문을 여는 영세 상인도 볼 수 있고, 새로 오픈한 가게에 대한 벅찬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새 사장님도 있다. 세상의 삼라만상이 들어간 시장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마트와 또 다른 매력을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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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현

마시고 먹는 것에 인생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대학생. 이 세상에 많은 술을 한번씩 다 먹어보기 전까지는 인생을 마감할 수 없다는 취지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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