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 작은 시장이 있다. 한 번씩 반찬가게에 들려 반찬을 사기도 하고, 과일 가게에서 과일을 사와 냉장고를 채우기도 하고, 카페에서 원두를 사와 모닝커피를 내려 먹기도 한다. 맨 처음 이사 올 당시에는 꾀죄죄한 시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작위로 펼쳐져 있는 상점들과 좁은 골목 사이로 다니는 오토바이와 자전거. 시끄러운 아주머니와 술 먹은 채 목소리를 높이는 아저씨들. 본가 근처에 있는 여러 개의 대형마트가 그리웠고 향수병까지 불러일으켰다. 쾌적한 에어컨 밑에서 카트를 미는 게 얼마나 쾌감을 느끼는 일이었는지 새삼 깨닫곤 했다.
1년쯤 지나니 시장이 익숙해졌다. 순댓국집에 들어가 혼자 소주에 순댓국을 먹으면 주인아주머니가 서비스라며 내장을 듬뿍 담은 접시를 내온다. 4평짜리 빵집에서 파는 단팥빵은 냉장고에 넣어놓고 다음 날 아침에 먹어야 가장 맛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그 조그만 시장에 변혁이 일어났다. 떡집이 있던 자리에 두부 가게가 생겼다. 이사 가는 떡집 아저씨는 근처 고깃집 사장님과 밤새 술을 마셨다. 골목을 지나가며 그 모습을 본 나는 임대차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임대인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고 임대차 계약을 막아둔 건물주를 욕했지만, 속사정을 누가 알랴. 사실 그 집 떡이 맛없긴 했었다.
두부 가게가 오픈한 날, 두부 가게에 여러 개의 화환이 놓였고, 의뭉스러운 시선을 보내던 주부들은 갓 나오는 두부의 고소한 냄새에 끌려 두부 가게를 분주하게 만들었다. 저녁을 먹긴 해야 하는데 딱히 당기는 음식도 없고, 해먹고 싶은 요리도 없었던 나에게 두부는 유혹의 시선을 보냈다. 갓 나온 두부는 탱글탱글한 몸을 살살 흔들며 내 시선을 끌었다.
냄새는 어찌나 고소한지. 콩 냄새의 고소함을 새삼 깨달았다. 가게 앞을 지나치지 못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 두부 한 모를 샀다. 개장 기념이라며 주인아저씨는 비지도 듬뿍 담아주셨다.
따끈따끈한 두부 새는 내 코를 자극했고 봉지를 손에 든 순간부터 먹고 싶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장악했다. 결국, 요리는 포기한 채 슈퍼에서 막걸리 한 병을 사고 반찬 가게에서 볶음 김치를 사와 집 앞 테라스에 앉았다. 사실 우리 건물 앞 테라스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골목길에 있는지라 한 번도 앉은 적이 없지만, 집에 들어가 상을 피고 준비를 할 생각을 하니 칼로리가 절로 소모돼 집까지 갈 힘이 없었다.
테라스에 신문지 한 장을 깔고 그 위에 아직 식지 않은 두부와 막걸리, 볶음 김치, 반찬 가게에서 얻어온 나무젓가락과 종이컵을 펼쳤다. 여름이 다가오는지 햇살은 7시임에도 반짝였고 나무 테이블에 꽂힌 파라솔은 그 햇빛을 반사했다.
좀 더운 감이 있긴 했지만 난 의자에 앉아 뜨거운 두부를 한 젓가락 떼어내 입안에 집어넣었다. 김치도 한 젓가락, 차가운 막걸리 한 잔. 아, 여름을 맞이하는 날의 고소한 저녁.
마트에 가서 싱싱한 해산물과 파릇파릇한 채소, 새로 보는 파스타 면을 사와 파스타를 해먹어도 맛있겠지만 성급하게, 배고픈 배를 부여잡으며 먹는 두부 김치도 그에 못지않았다.
난 시장을 사랑하게 됐다. 사실 동네시장이라고 덤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며, 값이 특별하게 싼 것도 아니다. 여름에는 비지땀을 흘리며 장을 봐야 하고, 겨울에는 차디찬 바람에 손을 비벼가며 지갑을 꺼내야 한다.
하지만 단골손님이 되면 서비스로 사이즈 업을 해주는 카페 사장님도 만나고, 자식 자랑을 늘어놓는 사이 토마토를 더 담아주는지도 모르는 헐렁한 과일 가게 할머니도 만나며, 자신의 두부에 자부심을 품는 아저씨도 만난다.
아직 그 두부 가게는 성행 중이고 최근에는 비지찌개도 포장해서 판다. 그 비지찌개도 맛이 기가 막히다. 아저씨는 내가 순두부를 좋아하는 걸 알아 수요일 저녁이면 내가 주문하기도 전에 순두부를 내놓는다.
집 근처에 시장이 있다면 한 번 방문해보라. 그 안에는 동네의 변천사를 꿰뚫고 있는 할아버지가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쫓겨나는 처지를 슬퍼하며 고깃집 문을 여는 영세 상인도 볼 수 있고, 새로 오픈한 가게에 대한 벅찬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새 사장님도 있다. 세상의 삼라만상이 들어간 시장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마트와 또 다른 매력을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