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생각하는 최상의 마리아주는 무엇입니까?”
-Food Week Korea의 발자취를 따라 본 마실 것과 음식의 마리아주-
지난 11월 2일부터 5일까지 진행되었던 제11회 서울 국제식품산업전은 외식업계 종사자들은 물론, 식음료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환영받는 연중행사 중 하나이다. 서울 코엑스 전시관에서 이루어진 이번 행사는 베이커리페어&디저트쇼와 더불어 한국 와인페스티벌, 키친페어, 아세안페어 등 볼거리가 매우 풍성했다. 그중에서도 국내 와인과 디저트의 마리아주 코너는 많은 소비자로 인해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약 40개의 업체가 참가하여 국내산 와인을 홍보하였는데 , 진지하게 시음하는 소비자들을 통해 세대를 아우르는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행사가 진행되었던 3일 동안 와인 토크쇼, 한국 와인 베스트 셀렉션 시상식, 소믈리에 경기 대회, 한국 와인 퀴즈 경품 이벤트까지 세계를 홀린 한국 와인을 널리 알리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에 필자가 참여하게 된 계기는 바로 궁합을 보기 위해서 였다. 점 집으로 향한 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궁합이 웬 말이랴 할 수도 있다. 필자가 찾던 궁합은 바로 마리아주. 마실 것과 음식의 조화나 궁합을 뜻하는 ‘마리아주’ (불어:mariage) 를 컨셉으로한 전시와 시식공간이 이곳에 특별히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3층 베이커리페어&카페쇼 전시장에서는 와인부스와 디저트부스가 서로 마주 보는 특별한 공간이 있었는데 와인은 물론, 그와 잘 어울릴만한 크래커, 치즈, 타르트 등의 디저트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와인의 다양한 종류에 비해 함께 마리아주 할만한 디저트 군의 종류나 개수가 다소 제한적이었다. 단품으로 상품이 진열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소비자가 찾아내야 할 몫이었다.
일단 와인을 시음하고 건너편 부스로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다양한 종류의 크래커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우리 밀을 주된 원료로 하여 화학첨가제를 넣지 않고 만든 자연주의 크래커 부스가 있었다.
종류는 유자, 대추, 오미자, 고추, 계피로 나뉘어 있는데 유난히 바삭한 식감, 그리고 각각의 재료들의 맛과 향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크래커였다. 필자의 경우 카나페를 만들 때 다양한 식재료들을 잘 받쳐주는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무난한 크래커를 쓰기 때문에 굳이 까다롭게 고르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맛과 식감의 특징이 분명한 크래커를 쓴다면 더욱 다양하게 음식을 만들어 좋은 마리아주를 완성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이곳의 유자 크래커는 플레인 요거트나 과일 청, 대추와 오미자는 차와 커피, 고추는 맥주 안주로써 혹은 마요네즈와 참치, 양파를 곁들어 만든 카나페로도 쓴다면 제격일 것 같았다. 부스에서는 주전부리 타입으로만 제시되어있었지만 이를 활용해 색다른 요리로 만들어 와인과 함께 먹어볼 수 있었더라면 조금 더 깊이 와인과 디저트의 마리아주에 빠졌을 것만 같다. 치즈나 살라미 등을 취급하는 부스도 마찬가지로 컨테이너에 우두커니 담겨있는 크림 치즈를 수저로 떠서 먹어보는 것이 유일한 시식임이 너무나 아쉬웠다.
만약 와인과 잘 어울리는 디저트가 상호 작용을 할 수 있게끔 어떤 와인에는 어떤 종류의 디저트가 어울릴지 추천을 받거나 디저트로 사용될 만한 제품들이 좀 더 조화롭고 다채롭게 구성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무래도 와인과 디저트의 최상의 마리아주를 위해서는 디저트가 직접 만들어 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견과류, 치즈 한 토막, 크래커 한 조각이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음식 말이다. 예를 들면 견과류를 이용해 만든 토피넛(Toffee Nut)이나 견과류 파운드 케이크, 혹은 초콜릿을 이용해 만든 초콜릿 드라제(Dragée)나 수풀레(Soufflé), 치즈를 이용한다면 치즈 타르트나 치즈 케이크, 치즈 디핑소스(Dipping sauce), 과일을 사용할 경우 파르페, 혹은 과일 퓌레(puree)나 소스를 이용하여 플레이티드 디저트(Plated dessert)를 전시했다면 소비자들은 그 맛을 궁금해 하며 직접 시식 후 그와 어울리는 와인을 능동적으로 찾아 다녔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상상 속의 마리아주를 찾아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보니 어느덧 막걸리 부스에 다다랐다. 와인처럼 막걸리 역시 다양한 제품군을 가지고 있는데 걸쭉한 동동주부터 고소한 쌀 막걸리, 음료수처럼 가볍게 마실 수 있게 여러 과일과 약재들이 첨가된 막걸리들을 볼 수 있었다. 고소한 막걸리를 시음하고 나니 부스 근처에 모인 여러 젓갈, 김치, 소금 부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짭짤한 안주를 향해 본능적으로 발걸음도 옮겨졌다. 물론 막걸리의 경우 마리아주 라운지에 속해있지는 않았지만 여러 김치나 젓갈, 전통 음식, 한과를 소개하는 부스들을 들려 맛을 보며 좋은 마리아주를 경험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마리아주는 우리의 식습관과 문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술을 마시고 나면 본능적으로 생각나고 원하게 되는 음식. 평소에 잘 먹던 것. 이것이 바로 최상의 마리아주가 아닐까. 비교적 접근이 쉬웠던 맥주의 경우, 일 끝나고 마시는 시원한 한 잔의 맥주, 그리고 무료함을 달래주듯 자꾸만 손이 가게 되는 짭짤한 주전부리들, 그 여유와 시간마저도 기억으로 자리 잡아 그런 해방감을 얻고 싶을 때마다 같은 술과 같은 안주를 찾게 된다. 막걸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걸쭉하면서도 톡 쏘는 막걸리 한 잔에 노릇노릇 구워진 전과 칼칼한 김치. 오랜 시간 보고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이 뇌리에 남아 그때의 분위기, 음식, 기분 등이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는 마리아주를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이 글을 읽고 나면 유독 와인과 디저트 마리아주에만 아쉬움을 두는 게 아닌가 할 수도 있다. 우리의 문화적 배경으로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와인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다른 주류에 비해 낮을 수 있어 경험이 먼저 본능적으로 말해줄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와인과 디저트 마리아주 라운지에서는 좀 더 과감하게 디저트 분야를 어필할 필요가 있었다 생각한다.
우리의 경험보다도 더 나은, 더 새로운 조합을 찾기 위해 요리사들은 끊임없이 음식과 마실 것의 페어링을 연구하고 선보인다. 요즘과 같이 식재료와 식문화가 다양해진 시대에서는 충분히 더 나은 마리아주를 찾기 위해 자신을 새로운 것에 노출하고 경험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준비되어있다. 이번 행사 역시 참여 후에 더 많은 정보와 경험을 얻고 묵직한 발걸음으로 걸어 나올 수 있어 뿌듯했다.
새로운 맛을 보고 경험을 하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 설사 잘 알고 있던 것이라도 지식과 정보는 언제나 내가 아는 것 이상으로 방대하기 때문에 다시 보고, 먹어본다면 새로운 것이 되어 다가올 것이다. 자주 접했던 맥주나 막걸리조차도 어느 지역에서 무엇을 사용해 누가 만들었는지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고 그와 어울리는 음식은 내가 생활했던 환경 반경에서 더 많이 나아가 다양한 맛과 모양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마리아주도 있지만 내가 몰랐던 그런 마리아주를 찾을 때 느끼는 희열. 더 많은 사람들이 음식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을 찾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