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심사 – 와인에게 점수를 준다는 것. 사실 마음이 참 불편한 일이다. 이 와인이 어떻고, 어떤 음식과 모임에 어울릴 거라고 조언해 주는 일을 즐기는 필자이지만, 콕 찍어 점수를 매긴다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올봄 진행된 Korea Sommelier Wine Awards People’s Choice (코리아 소믈리에 와인 어워즈 피플스 초이스)의 100명 와인 애호가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와인을 심사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세상에 “나쁜 와인은 없다.”라고 생각하는 필자는 와인에 매겨진 점수도 그다지 신뢰하는 편은 아니다. 특히나 한병의 와인이 담고 있는 천.지.인. 그 복합적이고도 다양한 요소 때문에 블라인드로 몇 모금 입에 머금은 와인에 몇 초 만에 점수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와인’님’께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까지 생각하는 사람이다.

‘코리아 소믈리에 피플스 초이스 와인 어워즈’ 행사장 / 사진 제공: Rachael Lee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와인평가기관으로는 Wine Spectator (미국), Decanter Wine Awards (영국), International Wine Challenge (영국)가 있으며, 다수의 와인 전문인들이 패널로 참가하여 와인을 평가한 결과를 발표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시대에 100점 만점 와인평가 점수체계를 도입하여 유명해진 Robert Parker를 빼놓을 수 없겠다. 물론 와인 구매 시 RP (Robert Parker), WS (Wine Spectator) 점수, Decanter 메달 마크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사실이지만, 와인평가 이면의 의미는 한 번쯤 짚어볼 필요를 느낀다.

Decanter 매거진에서 다루고 있는 Panel Tasting, 프랑스 남부 론 화이트 와인 추천 / 사진 제공: Rachael Lee

대부분 공식적인 와인심사의 기준은 품질평가 요소인 균형 (당도, 타닌, 산도, 알코올의 Balance), 여운의 길이 (Length), 집중도 (Intensity), 복합미 (Complexity) 이렇게 4가지 기준을 기본으로 삼는다. 상한 와인이 아니라면 Balance 측면에서는 크게 낮은 점수를 받을 이유가 없으며, Length와 Complexity가 와인 품질 평가 시 큰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특히 Complexity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2차, 3차 풍미 발현이 필수적이며, 그런 이유로 오크 사용, 품종특성으로 인한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오크 친화력을 가진 샤도네이 와인이나 장기 숙성력을 가진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이 대회 수상을 많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개인적 ‘취향’을 와인을 평가할 때 얼마나 배제할 수 있을 것이냐이다.

“Parkerization” – 와인 전문가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로버트 파커가 풀바디, 오크 풍미가 강하고, 숙성미 풍부한 와인에 평가점수를 잘 준다는 건, 와인 업계 종사자, 또는 와인을 어느 정도 마셔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와인메이커들이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그 취향에 맞춰진 와인을 생산하는 데 공을 들이는 것, 이러한 현상을 “Parkerization” 이라는 용어로 지칭하기도 한다. 필자의 개인적 와인 취향은 Robert Parker의 취향과는 정반대이므로 RP 점수를 전격 신뢰하지는 않지만, 한 개인의 평가가 그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와인 대중화에 기여해 왔다는 건 정말 대단한 업적이기는 하다.

“Many wineries knew that the influential American critic Robert Parker preferred highly extracted red wines that saw lengthy maturation periods in oak barrels. Because of this, many producers started making thick, jammy, high-alcohol reds and spared no expense on new French and American oak barrels, driving the price of the wines up considerably. This method of changing a wine style to meet the preferences of critics—with the hope of getting a higher score—is now cynically called Parkerization. It began in the mid-1990s but continues today.”   – Andrawes, Alex, “The Parkerization of wine in the 1990s and beyond.” (September 21, 2017)

에디터는 호주, 남아공, 오스트리아, 한국와인 55종을 심사했는데 개인적 취향을 최대한 배제한 심사에 집중하였다. 구세계 소비뇽 블랑 (Crispy & Herbaceous)을 좋아하는 나는 그 반대 성향의 오크 풍미와 과실 풍미, 미네랄리티가 조화로운 화이트 와인에 보다 높은 평가를 하였고, 피노누아를 사랑하는 나는 보다 Full body하고, 타닌의 존재, 과실 향에 오크, 병 숙성을 포함한 2, 3차 풍미가 풍부한 와인에 보다 높은 점수를 주고자 하였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 빈티지의 앞으로도 한참 더 숙성이 필요한 와인들은 딜레마였다. 차마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었다. 아마도 몇 년 뒤 같은 와인을 평가한다면 다른 점수를 줄 수도 있었을텐데라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 만약 장기숙성 발전 가능성이라는 평가항목이 있었다면 보다 좋은 점수를 줄 수도 있었겠지만, 그 점에서는 나 스스로도 냉정하게 평가를 했다.   

‘코리아 소믈리에 피플스 초이스 와인 어워즈’ 심사 모습 / 사진 제공: Rachael Lee

55개 와인을 2시간에 걸쳐 블라인드로 시음한 후 그 변별력이 얼마나 있을까, 내 판단은 맞는 판단이었을까,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한 달 후 심사 결과지를 받아보았다. 내가 가장 높은 점수를 준 화이트 와인 두 개 중 하나는 파이니스트 와인을 수상한 남아공의 Meerlust Estate, Stellenbosch Chardonnay 2017, 레드 와인은 호주의 Paxton Wines, Thomas Block Grenache 2017로 은상을 수상했다. 내가 좋게 평가한 와인이 Master (Master of Sommelier, Master of Wine, 국내 어드밴스드 소믈리에 포함 총 11인이 평가)들도 높게 평가하고 수상까지 했다는 건 스스로도 흐뭇한 일이다. 그간 숱하게 마신 와인들, 허투루 마시진 않았나보다.

결론은 Know your palate! 와인에 대한 개인적 취향을 파악하고 정의하는 건 필요하고, 그래야 현명하게 만족스러운 와인 소비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
더욱 중요한 건 Read the context! 와인을 어떠한 자리에서 누구와 마시는지, 그 맥락 (Context)에 따라 와인에 대한 느낌은 아주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와인선택 시 고려사항은 두 자릿수 와인 점수나 수상 이력이 아니기에, 스스로의 기준을 정해 본다. Rachael’s wine selection guide – 40%는 일반적 품질, 그리고 나머지 60%는? 20% 개인적 취향, 15% Food Pairing, 25%는 함께하는 사람과 분위기라고 감히 정의해 본다. 이 역시 개인마다 가중치는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참고문서]

• Santiago, Erin, Secrets to Understanding Wine Rating System, (https://wine.lovetoknow.com/wiki/Red_Wine_Benefits)
• Perroti-Brown, Lisa, “The Big Parkerization Lie”, 12 Jun 2018 (https://winejournal.robertparker.com/the-truth-about-parkerization)
• Andrawes, Alex & Scott, Darren, “The Parkerization of wine in the 1990s and beyond”, 21 September 2017 (https://www.estatewinebrokers.com/blog/the-parkerization-of-wine-in-the-1990s-and-beyond/)
• 마시자 매거진 기사, “RP 90점과 WS 94점의 와인, 무엇이 다를까?” (https://mashija.com/rp-ws-2017/)
• 마시자 매거진 기사, “제1회 코리아 소믈리에 피플스 초이스 와인 어워즈 성료” (https://mashija.com/제1회–코리아–소믈리에–피플스–초이스–와인–어워즈–성/)
• 마시자 매거진 기사, “세계 최고의 와인 전문가가 선택한 와인은? 제3회 코리아 소믈리에 와인 어워즈 앤 페어 성료” (https://mashija.com/제3회–코리아–소믈리에–와인–어워즈–성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