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와인1 열 병 중 한 병은 이곳을 통해 나간다. 오프라인 샵중에서는 최대수량이다.2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양조하는 국내의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협약을 체결하고 와인을 입점시키고 있다.3 그러나 이곳은 본격적인 와인샵도, 협동조합이 설립한 농수산품 판매장도 아닌 광명시에 위치한 광명동굴이다. 광명동굴은 서울시 근교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관광지 중의 하나로 지난해에는 4월 유료 재개장한 이후로 연말까지 1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은 곳이다. 그리고 그 동굴에서 가장 많이 판매하는 것은 다른 기념품이 아닌 한국와인이다. 처음 기획한 것보다 판매량이 너무 많아 설계 당시의 생각처럼 셀러에 와인을 숙성시키는 것은 생각도 못 할 정도로 팔린다고 한다.
광명시는 10월의 첫 주말에 야외 행사장에서 ‘2016 광명동굴 대한민국 와인 페스티벌’을 주최하기도 했다. 올해로 2회를 맞는 이 행사는 한국와인을 한 자리에서 시음할 수 있는 자리로 19개 지역을 대표하는 28곳의 와이너리에서 150종의 한국와인을 출품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여러 전문 소믈리에들의 참여를 이끌어냈고, 단순한 와인 시음뿐만 아니라 한국 음식과의 마리아주, 그리고 라벨 디자인에 대한 평가까지 한 자리에서 이루어져 기존의 단순한 시음행사를 뛰어넘는 복합적인 행사가 되었다. 필자도 돌아보는데에만 반나절이 넘게 걸렸다.
광명동굴은 한국와인 판매에 대한 데이터가 처음으로 쌓이는 판매장으로써 의미가 크다. 한국와인은 주세법상 와인으로 따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시장규모를 누구도 파악하고 있지 못하며, 시장의 반응을 알아볼 수 있는 기초적인 데이터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광명동굴의 데이터는 한국와인의 현재를 읽어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파고들어 갈수록 맞닥뜨리는건 큰 어려움이었다”
그리고 이 데이터는 희망과 동시에 현재 한국와인이 겪고 있는 어려움도 그대로 보여준다. 광명동굴의 판매량을 기반으로 역추산한 한국와인 판매량은 원래도 적은 국내 와인 시장의 1%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광명동굴 한국와인 병 당 평균 판매가격 18,000원은 농가가 와인을 팔아 순익을 남기기에 너무 빠듯한 금액이다. 가격저항선이 낮은 스위트와인의 선호가 너무 강해 가격을 올리기도 어렵고, 다양성도 확보되지 않는다. 페스티벌에 참가한 대부분의 와이너리는 스위트한 와인만 들고 참가한 곳이 많았다. 드라이한 와인은 일반 대중에게 팔리지 못한다는 것을 와이너리도 학습한 것이다.
희망 가득한 칼럼을 쓰기 위해서 파고들어 갈수록 맞닥뜨리는 건 큰 어려움이었다. 이런 한국에서 와인을 계속해서 양조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렇게 어려운 걸 그럼 이웃 국가들은 어찌 헤쳐나가고 있나. 취재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근래의 연구자료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한국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수확해 와인을 양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와이너리를 설립하는 일이 기본적으로 자본 집약적이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한국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어려움이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있기 때문이다. 여름은 고온다습하고 겨울은 저온건조하다는 이야기는 지겹게 들었다. 덕분에 가당 없이 양조에 필요한 당도를 맞춰 재배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당도를 맞춰낸다 하더라도 식용포도 특유의 향이 애호가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 양조용 포도품종은 열과4현상이 나거나 뿌리가 썩어버리기 일쑤다. 생산만 해도 이렇게 어려운데, 여기에 아직은 작은 시장 사이즈와 와인양조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의 부족은 그 어려움을 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인 양조에 매달리는 이유는 첫 번째, 생존이다. 한국의 포도 과수원들은 정부가 여러 국가와 FTA를 체결한 이후로 위기에 처했다. 마트 매대에는 다양한 국가에서 들어온 포도들이 가득하다. 포도 재배면적은 2000년 2만9000ha에서 2015년 절반인 1만5400ha로 떨어졌다. 올해도 2015년 재배면적의 11%에 해당하는 농가가 FTA 폐업지원을 신청했다.5 생과를 판매하는 것 만으로는 생존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와인을 양조하는 것은 국산 포도의 부가가치를 올려 생존하려는 시도다.
한국 와인은 또한 꿈의 산물이다. 양조인들에게서 어려움을 감내하고 해외의 와이너리와 경쟁해도 손색없는 와인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를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양조용 품종의 배수를 더 도와주기 위해 밭을 들어내고 자갈로 기초를 깔았다는 이야기나, 더욱 나은 특성을 드러내주는 효모를 찾기 위한 수십만 번의 실험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들의 양조를 말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과잉공급된 생식용 포도로 와인을 양조한다고 해서 생존이 쉽게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생존이라는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전략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어떤 전략이 더 필요할까. 우리와 이웃한 동아시아의 두 국가가 와인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잠시 눈을 돌려보면 중국과 일본 또한 조금씩 다른 방향이지만 와인 산업의 육성을 위해 기를 쓰고 있으며, 그들의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중국은 아예 유럽이나 신대륙의 와인과 수평선에서 경쟁하려고 한다. 프랑스 방식으로 공장을 세우고, 프랑스 방법으로 양조한다. 광활하고 포도재배에 좋은, 약간은 척박한 토양과 풍부한 노동력 위에 정부 주도로 대형 자본을 유치했다. 급격한 경제성장과 중산층을 등에 업고 중국은 이미 2015년 기준 와인 생산에서 8위, 소비는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중국의 포도밭은 세계 2위의 면적을 자랑한다.
서북쪽의 사막지대를 중심으로 생산되는 중국와인은 그 품질에서 다른 국가의 와인들과 경쟁 가능한 수준으로 들어서고 있으며, 주변국으로의 수출도 상승세다. 만리장성이 그려져 있는 장성와인을 비롯한 몇몇 와이너리는 그 브랜드 가치가 이미 웬만한 유럽의 와이너리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은 조금 다르다. 물론 이 나라가 온대에서 열대에 걸친 광활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강수량이 너무 많아 양조용 포도를 상품성 있게 재배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다. 일부 와인들은 국제적인 무대에서도 호평을 받았지만, 양산에 성공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일본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부분 유럽이나 남미에서 수입한 포도즙으로 국내에서 양조하는 저가 와인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관광과 연계하고 고유의 식용품종이나 양조용 품종을 양조하는 고가 와인의 두 가지 방법으로 산업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에서 저가 와인은 꽤 성공을 거두고 있는데, 한국에서 마주앙이 예전의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데6 반해서 일본 사람들은 편의점과 슈퍼에서 저가 와인을 쉽게 구입해 즐긴다. 메를로를 위주로 여러 가지 포도를 블랜딩하는 이 와인의 맛은 달콤하기도 하고 밍밍하기도 하다. ‘훌륭한 수준은 아니지만’ 가격이 착하다. 3/4은 해외에서 수입된 머스트를 활용하고 맥주를 제조하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량 생산시설에서 양조해 가격을 낮췄다. 500엔부터 시작하는 저렴한 가격으로 일본 내 와인 소비의 1/3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에 중소 와이너리들은 고유의 품종인 코슈를 비롯한 식용포도나, 양조용 품종을 바탕으로 조금 더 고가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주로 관광과 연계하여 방문객들에 대한 교육과 안내, 체험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고유의 포도품종은 일본 음식에 맞춰 맛을 다듬고 양조해 차별화된 일본와인으로 가격의 빈틈을 채웠다. 여기에 차별적인 브랜딩을 통해 일본와인을 고가로 이끌어가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분명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있다.
다시 광명동굴로 돌아오자. 광명동굴은 현재 한국와인의 위치를 잘 보여준다. 그 현실이 절망적인 수준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충분한 테스트 배드를 얻었다. 고객의 반응을 통해서 제2의, 제3의 광명동굴이 나올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한국와인이 수입된 와인들과 마트에서 수평 경쟁을 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큰 시장은 일본의 예에서도 보듯 대기업의 투자를 통해 저가와인으로 경쟁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장 먼저, 관광과 연계한 와인 판매가 필수적이다. 광명동굴을 찾는 관광객들이 와인 애호가여서 와인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볼거리와 교육, 체험과 연계한 와인의 판매는 농가의 일차적인 목표인 생존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다.
맛도 지금은 대중의 입맛에서 시작해야 한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테이스팅이 애호가 집단에 비해서 한국와인에 대한 좀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언젠가는 대기업이 생산하는 저가 와인과 경쟁하기 위해 고급화를 추구해야 하며 양조용 포도품종으로 넘어갈 준비도 해야겠다. 대기업은 와인 문화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머스트 수입을 통한 저가 와인을 시도해볼 수 있겠다.
그리고 결국 언젠가는 한국와인의 독자성을 갖춰야 한다. 라벨은 몇 년 전에 비하면 많이 세련되어졌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달은 지자체들이 지원금을 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보기 좋은 제품이 더 잘 팔리는 것은 입 아프게 강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라벨은 큰 고민 없이 수입산 와인 라벨의 특징들을 잘 카피한 수준이다. 오크의 사용에서도, 우리 품종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다. 식용 품종으로 만든 와인에 오크숙성을 적용해 오크향이 지나치게 지배적이 되어버린 경우를 많이 본다. 광명동굴을 책임지고 있는 최정욱 소믈리에의 말처럼 “한국 음식에 어울리는 것이 한국와인” 이라는 프레임이 가장 안정적이다. 이번 광명동굴 페스티벌에서 가장 높게 평가할 만한 부분도 한국 음식과의 매칭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시음행사에서 벗어나 다양한 음식에 페어링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현지에서 생산된 와인이 가지는 의미가 있다. 소비자가 아는 생산지에서 생산된 과실로 양조된 와인이 가지는 가치가 있다. 한국의 와인바나 레스토랑은 종종 외국 손님의 한국에서 생산된 와인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응답해야 한다. 물론 그들에게 막걸리나 전통주를 내어줄 수도 있지만, 식문화가 학습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새로움을 강요하는 것은 때때로 불가능하다. 한국이 주최하는 행사가 있거나 주요 인사들이 국내를 방문할 때에 수입산이 아니라 한국와인을 내놓을 수도 있다. 이런 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 필자는 한국와인이 먼저 생존하기를 바란다.
1. 한국에서 재배하고 양조한 와인을 이야기한다.
2. 한국 와이너리들은 온라인을 통한 개인구매와 농수산품 판매소, 그리고 광명동굴을 통해서 와인을 판매하고 있다. 와이너리에서 잡힌 매출액을 기준으로 계산했다.
3. 현재까지 총 20여 군데의 지자체가 협약을 맺었다.
4. 다 익기 전에 껍질이 벌어지는 현상
5. 김경욱 외, “위기의 포도산업, 흔들리는 국산과일”, 한국농어민신문, 2016.8.2
6. 마주앙은 70년대 한국에서 7,000톤 이상의 와인을 생산했지만 현재는 400톤 가량에 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