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와인과 각종 주류, 관련 기사를 검색하세요.

인생엔 직진만 있지 않다. – 오래된 와인 영화 “사이드웨이 (Sideways)”

인생엔 직진만 있지 않다. – 오래된 와인 영화 “사이드웨이 (Sideways)”

Rachael Lee 2017년 9월 25일

와인을 소재로 다룬 영화를 꼽으라고 하면 아마 많은 사람이 “사이드웨이 (Sideways)”를 제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이제는 다소 오래된 영화이기는 하지만, 와인 관련 영화 중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지고, 와인 시장에까지 영향력을 남긴 영화이다. 중년의 교사, 그리고 이혼남인 마일즈가 결혼을 앞둔 친구 잭과 함께 와이너리로 주말여행을 떠나면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다룬 로맨틱 코메디 영화. 이 영화의 배경이 된 와인 산지는 그 유명한 나파도 소노마도 아닌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Santa Barbara)라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LA에서 약 2시간 북쪽에 위치한 산타바바라는 위도상 소노마나 오리건보다 훨씬 남쪽이기는 하지만, 산맥과 바다의 이중영향을 받아 미국 내 가장 서늘한 기후의 와인 산지로 알려진 지역이다. 와인 산지를 얘기할 때 항상 기후와 토양을 얘기하는 건 사실 좀 지리멸렬하긴 하지만, 미국 와인을 많이 접해본 필자가 가장 드라이한 미국 와인이라고 생각하는 와인이 산타바바라 와인이니만큼 서늘한 기후의 영향을 받은 와인이 생산되고 있는 지역이라 볼 수 있다.

안개 낀 산타바바라 와이너리 Source: https://winewitandwisdomswe.com

AVA (American Viticultural Areas)에 의하면, 산타바바라의 와이너리는 가장 북쪽에 있는 산타마리아 밸리 (Santa Maria Valley), 남쪽의 가장 왼편에 있는 산타리타 힐즈 (Sta Rita Hills), 남쪽 가장 오른편에 있는 해피캐년 (Happy Canyon), 그리고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산타이네즈 밸리 (Santa Ynez Valley) 이렇게 네 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산타바바라 지역 AVA Source: Wine Folly

이중 산타리타 힐즈는 계곡 사이에 위치하여 태평양의 찬 기운과 산맥의 시원한 바람의 이중영향을 받는 미국 와인 산지 중 가장 서늘한 기후를 가진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오전에는 바다안개가 자욱하고, 오후에는 계곡의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입지 – 이러한 기후를 반영하여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가 주 생산 품종이며, 산타리타 힐즈 산지의 컬트 와인은 Dry 하면서도 Minerality를 많이 머금은, 가장 비 신세계적 와인 특성이 있다.

산타바바라 지역에서는 1782년부터 와인을 만들기 시작해 현재 약 200여 개의 와이너리가 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며,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가 총생산량의 80퍼센트를 차지한다.

 [주요 생산품종, 2016 기준]

  1. 샤르도네 Chardonnay: 7720 acres
  2. 피노 누아 Pinot Noir:5571 acres
  3. 시라 Syrah:1930 acres
  4. 소비뇽 블랑 Sauvignon Blanc:830 acres

Source: Santa Barbara Country Vintners Association , Wine Institute of California

 

기후와 품종 이야기가 조금 지루했다면, 사이드웨이 (Sideways)의 속뜻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단순한 사전적 의미를 보자면,

“a direction to the left or right, not forwards or backward” – “옆방향으로, 앞도 뒤도 아닌”

“Sideways” 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에서 볼 수 있듯이, “사이드웨이”는 와인병을 저장할 때 눕혀두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인생에서 한 번쯤은 앞으로 나아가는 걸 멈춰서는 여유로운 시간을 의미한다. 영화에서 마일즈는 이혼 후의 후유증, 소설 출간의 어려움과 같은 실패와 절망 속에서 일탈처럼 산타바바라 와이너리로 주말여행을 떠났고, 이 여행이 어떻게 보면 삶의 전환점이 된다.

영화의 원작을 쓴 작가 렉스 피켓 (Rex Pickett) 역시 삶의 절망 가운데, “사이드웨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자신의 얘기를 글 속에 투영한 내용으로 당시 산타바바라에 거주하고 있던 렉스 피켓은 이혼, 작가로서의 실패, 빚더미 등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는데, 유일하게 위안을 주었던 건 와인 – 와이너리에서의 테이스팅, 와인 애호가들과 만남이 희망과 행복의 시간이었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게 된 내용이 “사이드웨이”이다. 잠시 쉬어가는 “사이드웨이”의 시기가 그가 인생작을 쓰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인생이 힘들고 외로울 때 한 번쯤은 앞뒤 생각하지 말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나 고민도 내려놓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나만의 시간을 즐기는 여유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의미로 와인 한잔 기울이는 여유는 어떨까?

산타바바라 시내 소재한 테이스팅 룸 – Wine Therapy

영화 속 여주인공 마야의 대사처럼,

I like to think about what was going on the year the grapes were growing; how the sun was shining; if it rained. I like to think about all the people who tended and picked the grapes. And if it’s an old wine, how many of them must be dead by now. I like how wine continues to evolve, like if I opened a bottle of wine today it would taste different than if I’d opened it on any other day, because a bottle of wine is actually alive. And it’s constantly evolving and gaining complexity.”

포도가 태양과 토양의 환경을 바탕으로 자라나고,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재배, 수확되어 그 포도가 와인으로 탄생하고, 어느 정도의 숙성을 거쳐 오픈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고, 어떤 자리에서 그 와인이 진가를 발휘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길고도 짧은 인생, 어떠한 굴곡이 있을지도 모르고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색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기 마련이다. 와인병은 눕혀 놔야 – sideway – 숙성이 되듯, 사람의 인생도 때로는 다 내려놓고, 쉬고, 옆길로도 가봐야 연륜이 생기기 마련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의 장면은, 마일즈가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햄버거를 우걱우걱 먹으며 일회용 컵에 1961년산 샤토 슈발블랑 (Chateau Cheval Blanc)을 쓸쓸히 따라 마시는 장면이다. 그 아끼던 고가의 와인을 말이다.

“Sideways” 영화 한 장면

“If anyone orders Merlot, I’m leaving, I am NOT drinking any f* Merlot!”  

피노 누아만 애정하고, 메를로 와인을 경멸하던 마일즈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아끼던 와인은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이 블렌딩된 보르도 와인 슈발블랑 이었다. 그 좋은 와인이 몹시 씁쓸한 한잔이었겠지만, 마일즈에게는 되돌아보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한잔이었을 것이다. 이 또한 와인의 매력이 아닐까, 좋은 와인이 가장 쓴 잔이 될 수도 있고, 저렴한 와인도 어떤 사람, 어떤 분위기에서 즐기는지에 따라 훌륭한 한잔이 될 수도 있고.

“사이드웨이” 영화 한 편에는 산타바바라 지역의 풍광, 와인 품종과 테이스팅에 관한 이야기, 인생에 대한 교훈까지 많은 내용이 담겨있다. 다시 봐도 약간 어이없는 내용에 실실대며 보다가도 10년 전보다 더 Sideways의 의미가 마음에 와닿는 건, 내 인생도 좀 더 숙성 (와인처럼?!)이 되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오늘 저녁에는 산타바바라 피노를 한잔 마실지, 보르도 메를로를 마실지 행복한 고민을 하며 글을 마친다.

산타바바라 테이스팅 룸에서의 와인 한잔

 

Tags:
Rachael Lee

Life, world, contemplation, and talk through a glass of wine 여행과 예술을 사랑하는 프리랜서 에디터

  • 1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