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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T Hiking 2018_08 – Good bye, dessert. Good bye, hiker friends.

PCT Hiking 2018_08 – Good bye, dessert. Good bye, hiker friends.

선경 고 2018년 11월 1일

Tehachapi 911.6km ~ Walker Pass Camp Ground 1048.1km

5/7-월. 39일째

다시 트레일로 복귀하는 날이다. 일찍 일어난 덕분에 시간 여유가 있어 트레일 앤젤 집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며 다른 하이커들과 함께 곧 다가올 고산지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곳에서 250km정도를 가면 서서히 사막 기후가 끝나고 아직도 눈이 남아있는 중부 캘리포니아-시에라 네바다 지역에 접어든다. 그렇기에 대화의 주제가 물 공급지 간의 간격에서 눈산에서의 하이킹시 주의점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우리는 그 고산 지역을 ‘하이 시에라’라고 부른다.

트레일 앤젤 하우스에서 출발하는 첫 차량에 올라타 빵집과 우체국에 내리는 다른 하이커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홀로 트레일 헤드로 들어섰다. 이곳은 영화 “Wild”에서 주인공이 하이킹을 시작하는 시점이란다.

모하비/테하차피 마을에서 복귀한 트레일 헤드 / 사진 제공: 고선경

도로 옆 트레일을 따라 걸어가는 걸음 걸음이 내리쬐는 태양 볕에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작은 덤불의 그늘도 여간 감사한 것이 아니다. 언덕을 오르며 연신 땀을 닦아내다 고개를 들었더니 오른쪽 언덕 위에서 코요테 한 마리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혹여 다른 놈들이 있을까 걱정되어 걸음을 멈춘 채 눈을 떼지 않고 있었더니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던 녀석이 고개를 돌리고는 언덕 너머로 사라진다. 이대로 가 버린걸까? 지금이 저 녀석들의 사냥 시간인 걸까? 처음 마주한 상황이라 살짝 겁도 나고 걱정이 된다. 숨도 돌릴 겸 그 자리에 멈춰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덤불의 작은 그늘 하나마저도 감사하다 / 사진 제공: 고선경

사막지대가 끝나면 만날 고산 지대에 대한 생각이 하루종일 마음속에 가득하다. 어떤 풍경일까, 이제 겨우 사막 기후에 익숙해져 가는데 그곳에서는 어떤 상황에 부딪히게 될까. 그 지역은 물이 충분하다니까 가루 형태의 음식들 중 콜드 소킹(Cold soaking;찬 물에 음식을 불려 먹는 방법)과 끓여서 익혀 먹을 수 있는 두 가지가 동시에 가능한 음식으로 꾸려야겠다, 등 먹을거리에 대한 생각도 빼놓을 수 없고, 풍경에 대한 궁금증도 생긴다. 더불어 아직도 눈이 남아있을 만큼 낮은 기온일 그곳의 시간들에 약간의 두려움도 생긴다. 그곳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야생 동물은 또 뭐가 있을까? 미지의 환경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끊임없이 공존하는 하루였다.

사막 뿔 도마뱀. 사막에도 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다 / 사진 제공: 고선경

5/8-화. 40일째 오늘은 초반엔 고도 변화가 별로 없지만 오후가 되면 700m 가량의 내리막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출발 전 발목과 무릎에 테이핑을 했다. 신축성이 좋은 테이프를 무릎 주변으로 둥글게 붙여 근육을 잡아주는 방법인데 테니스 선수들이 어깨에 붙이고 경기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내리막길에는 몸무게와 배낭 무게가 한꺼번에 무릎과 발목에 실려 오르막길보다 그 충격이 배가된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종종 사용했었다.다만 걱정인 것은 어제와 오늘 오전 중 걷는 도중 갑자기 심장 부근이 뻐근해지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그럴 때마다 하이킹을 멈추고 앉아서 마사지를 해 주고 있지만 원인을 알 수 없으니 걱정이다. 속도를 갑자기 올리지도, 배낭 무게가 평소보다 무겁지도 않은데.

그늘 하나 없이 이어지는 트레일. 걸러지지 않는 태양의 열기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 사진 제공: 고선경

여전히 태양은 뜨겁고 그늘은 보이지 않는다. 물 공급지도 자주 있는 편이 아니라 그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은데 몸 상태까지 좋지 않으니 자주 쉬면서 조심조심 걷는다. 그래서인지 캠핑 사이트에 도착하기 전에 물이 동나버렸다. 아직 한참 더 가야 하는데… 어플리케이션을 열어 먼저 간 하이커들이 남긴 코멘트를 찾아 보았다. 그중 한 개에 캠프사이트 가기 전 트레일 오른쪽에 위치한 건물 근처에 갈색 물탱크가 있다는 멘트가 있다. 위치를 알아보니 마침 서 있던 곳 근처라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다. 앞쪽에 폐쇄된 듯한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오고 그 옆에 갈색 물탱크가 있다. ‘저것인가?’싶어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걸었는데 앞서 가던 하이커는 그 입구를 지나쳐 간다. 분명 조금 전 만났을 때 그도 물이 얼마 남지 않았었는데.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 보니 다행히도 물이 나온다. 배낭을 던지듯 내려놓고 물통에 물을 담아 정수기째로 허겁지겁 들이켰다. 그제서야 조금 안심이 되어 숨을 좀 돌린 뒤 캠프 사이트까지 갈 만큼의 물을 받아 다시 트레일로 돌아왔다. 싱크대든 세면대든 손잡이만 돌리면 콸콸 쏟아지는 물이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이 곳에서는 매일매일 물 한 방울의 소중함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캠프 사이트 한쪽에서 쫄쫄 흐르는 물가 어딘가에서 밤새 시끄럽게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마저 감사하다.

5/9 수

누군가는 벌써 출발했는지 텐트가 보이지 않고, 누군가는 아직도 자고 있다. 트레일 위의 아침은 늘 이렇다. 각자의 계획대로 각자의 페이스대로. 아침을 먹고 텐트를 정리한 뒤 트레일로 돌아가는데 한 하이커가 나를 불러 세운다. ‘잠깐, 잠깐. 그거 낚시대야?’ 그 말에 ‘낚시대? 어디? 어디?’, ‘누가 낚시대를 갖고 있어?’라며 짐을 싸던 몇몇 하이커가 내게 다가온다. 한국에서 지인을 따라 가끔 루어 낚시(가짜 미끼를 사용하는 낚시)를 다녔던 적이 있어서 트레일에서 깨끗한 호수에 사는 송어를 보면 낚시를 해 볼까 하는 생각에 낚시대를 챙겨왔었다. 미끼와 릴 등 다른 부품은 무거우니 사막구간이 끝나는 마을에 우편으로 보내두었지만 길이가 긴 낚시대만은 배낭 옆구리에 꽂아서 하이킹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발견했나보다. 그 수다에 생각지도 않게 어수선한 출발이 되어버렸다.

길 위에서는 걷기만 하는데도 시간이 금방금방 지나간다. 조금 전에 텐트를 정리한 것 같은데 그걸 금방 다시 펼치고 있는 느낌이 드는 날이 많다. 또 가진 것이 많은 자가 괴로운 길이다. 꼭 필요한 것만 챙기고 욕심을 버려야 가벼운 배낭에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기고 길을 걷는 것이 더 즐거울 텐테. 나도 욕심을 더 버리고 자신을 믿는 마음을 더 채워 넣어야 할 텐데.

테하차피를 떠나온 이후로 물 때문에 고생이다. 어제와 오늘은 물 공급지 간 거리가 하루 만에 갈 수 없을 만큼 멀어서 적게는 5리터, 많게는 8리터 이상을 지고 가는 하이커도 있다. 오늘은 물 포인트가 한 번 뿐이라 하루종일 마실 물과 점심/저녁/내일 아침 식사 준비용, 내일 워터캐쉬까지 마실 물과 워터캐쉬가 없을 경우를 대비해 약간의 여유 물까지 준비를 해야 한다. 워터 캐쉬(Water Cash;물이 중요한 사막에서 누군가 하이커들을 위해 두고 간 물)가 중간에 있다고는 하나 언제 바닥날지 모르는 ‘용량’이라는 점에서 하루하루 꼭 필요한 물을 공급해야 하는 우리들로서는 작은 물줄기라도 ‘확실한’ 물이 필요한데 말이다. 다들 물 상황을 체크하느라 온종일 그 얘기뿐이다. 내일 만날 워터 캐쉬가 부디 풍족하기를…

오늘의 유일한 물 포인트 / 사진 제공: 고선경

5/10

목이 길 위에 오기 전까지는 사막의 밤이 이렇게 추우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밤새 바람이 많이 불어 주변에 덤불이 꽤 있음에도 텐트 안은 모래투성이다. 자다가 화장실을 가야 해서 잠시 텐트 밖으로 나갔더니 하늘에 별이 가득하다. 육안으로도 별똥별이 몇 개씩 보인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이 아니었다면 보지 못했을 그 별들의 흔적이 ‘시간을 허비하지 마, 지금 이 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아’라고 일깨워 주는 듯 했다. 텐트로 돌아와 침낭 위 먼지를 털어내고 들어 누우니 더 없이 편안하다. 바람은 여전히 강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금방 눈이 감긴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에 유성이 떨어진다 / 사진 제공: 고선경

오늘도 여지없이 물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다들 물을 아껴 마시며 걷고 있는데 나 역시 없다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니까 더 마시고 싶어진다. 날씨도 더워서 머리에서도 땀이 나고 있다. 다행히도 사막 한가운데 누군가 놓아둔 워터 캐쉬가 풍족해서 다들 그곳에서 점심을 먹느라 배낭을 내려놓고 시간을 보낸다. ‘셰프! 우린 살아남았어! 너도 살아 남았고!’ 다들 반기며 서로 인사한다. 전체 사막 구간 중 가장 물 컨디션이 좋지 않은 며칠을 무사히 보내고 난 후 만난 이 순간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정말 감사한 순간이다.

워터 캐쉬 주변의 작은 그늘에 기대어 앉은 하이커들 / 사진 제공: 고선경

온종일 강한 바람과 태양에 시달리며 그늘 없는 길을 걷고 있다. 트레일을 덮은 모래 때문에 걷는 것조차 쉽지 않은 날이다. 하마터면 발 밑의 뱀을 못 보고 지나칠뻔 했는데 앞서가던 하이커가 뱀을 발견하고는 알려준다. 그냥 걷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보여도 주변에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늘 한 점 없는 언덕을 오르내리는 길이 이어진다 / 사진 제공: 고선경

다행히도 오늘은 멀지 않은 곳에 물이 나오는 곳이 있어 그곳에서 캠핑을 하고 내일은 Walker Pass CG까지만 가기로 했다. 종종 만나던 하이커 한 명을 테하차피 마을의 트레일 앤젤 하우스에서 만났는데 부모님께서 Walker Pass CG에서 트레일 매직을 해 주신단다. 다들 그곳에서 트레일 매직을 즐긴 뒤 하루 여유를 갖고 다음날 계속 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물 공급지에 도착해 텐트를 치고 먼저 도착해 저녁을 먹고 있는 일행과 합류했다. 저녁을 위해 물을 끓이고 있는데 이게 웬걸.. 가스가 동났다. 마지막 한끼까지는 해결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다들 부족할 것을 알기에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Salmon이 선뜻 자신의 가스를 내어준다. 분명 자신도 넉넉지 않을텐데 고마운 일이다. 이래저래 이 길 위에선 끊임없이 다른 이들에게 고마운 순간이 늘어간다. 겨우 저녁을 만들어 먹는데 대화의 주제가 나이로 옮겨갔다. 오늘이 두 명의 생일이라기에 축하 인사를 건넨 뒤 대화를 이어가는데 누군가 나의 나이를 물었다. 대답을 듣고는 절대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며 다들 놀란다. 역시나 체구 작은 동양인이라 어리게 보이는가보다. 한달 뒤면 생일이라니까 생일 파티도 꼭 하잔다. 오늘이 생일인 두 명의 생일 파티는 내일 트레일 매직에서 하기로 하고.5/11 금

바람이 잦아들지 않아 소란스러운 밤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13.6km이후의 Walker Pass CG까지만 가면 된다는 생각인지 늦은 아침까지 여유롭다.인사를 건넨 뒤 먼저 출발해 걷고 있는데 길 주변으로 꽃이 가득하다.

트레일 주변에 가득 피어 있는 꽃들 / 사진 제공: 고선경

두 눈이 행복한 길을 걸어 Walker Pass CG에 도착하니 먹고 마실거리가 넘쳐난다. 다들 짐을 내려놓고 인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자리를 잡고 앉아 허겁지겁 배를 채운다. 우리는 언제나 배고프니까.

한참을 먹고 마시며 망중한을 즐긴 뒤, 늦은 오후가 되기 전에 하이커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무릎과 발목의 상태가 썩 좋지 않은 편인데 이제 곧 고산 지대에 들어갈 예정이라 컨디션 조절을 위해 휴식이 필요했다. 다들 예상치 못한 나의 일정에 아쉬워한다. 하지만 우린 하이커이고 언제든 길 위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니 See you on the trail, 인사를 하고 마침 부족한 음식을 더 구입하기 위해 마을로 가신다는 아버님의 차에 올라탔다. 군부대가 있어 다른 마을보다 거주 인구가 많다는 이 마을에는 월마트와 알버슨 등 큰 슈퍼와 아웃도어 스토어가 있어 필요한 장비와 음식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숙소도 비교적 저렴한 편이라고 했다.

숙소에 체크인 한 뒤, 샤워와 세탁기를 돌리고 그 동안 침낭과 다운 재킷을 펼쳐 말리고, 조리 도구와 수저 세트를 설거지 하고, 다음 타운까지의 거리와 남아있는 음식을 체크했다. 그 사이 세탁도 끝나고 낮도 끝나가 태양의 뜨거운 열기도 조금씩 사그라진다. 그제서야 숙소를 나서 가까운 그로서리 스토어에 가서 저녁거리와 필요한 식량들을 구입 해 돌아왔다. 이제 며칠 쉬는동안 마사지와 스트레칭을 하면서 다리와 무릎의 상태가 좋아지는지를 지켜봐야겠다. 이 마을을 떠나 트레일로 복귀하면 2~3일 후에 고산지대에 들어가게 된다. 4000m가 넘는 혹은 그에 육박하는 높이를 매일 혹은 하루에 2개를 넘어야 하는데 완벽하지 못할 지언정 통증을 느끼는 상태로 갈 수는 없으니까 내 몸이 충분히 쉴 시간을 가져야 했다. 마음은 벌써 조급해 지고 있지만 조금만 쉬어가자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더 멀리 가기 위해선 한 발 쉴 줄도, 물러 설 줄도 알아야 한다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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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 고

여행하는 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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