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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의 낮과 밤, 상하이를 걷다

동양과 서양의 낮과 밤, 상하이를 걷다

김재영 2017년 3월 9일

전 세계에서 이름만으로 설렘을 주는 도시가 몇 개나 될까. ‘상하이’는 나에게 그런 도시였다. 그리고 여행을 끝냈을 때, 여행을 떠나기 전 부풀었던 마음은 잘 익은 과일처럼 달콤함으로 남았다. 한 번 경험하면 또다시 가고 싶은 기분 좋은 도시, 상하이를 소개한다.

<상하이임시정부>

김구 선생의 집무실

임시정부의 식탁

손님 모시는 방

 

상해 푸동 공항에 입국한 날,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고등학교 국사책에서만 보던 상하이임시정부를 방문했다. 그래도 상하이에 왔는데 이곳을 지나치는 건 어쩐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 속의 임시정부는 한국의 예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는 듯, 현대적인 느낌이 배어있었다. 임시정부청사는 1926년부터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1932년까지 대한민국의 청사로 사용되던 곳으로, 중국 속에 숨 쉬던 한국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건물 내부를 살펴보니 그 역사가 가깝고도 멀게 느껴졌다. 현재의 집에 놓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가구와 서적, 의사들의 모습을 모두 담은 사진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이곳의 모습을 한 장 한 장 사진에 담으며 누군가가 꼭 영화로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신천지>

유럽풍 건물과 잘 어울리는 분수

붉은 벽돌의 성스러운 건물

색다른 느낌의 스타벅스

상하이임시정부에서 역사 공부를 마쳤다면 상하이만의 매력을 살펴보러 떠나야 한다. 상하이 속 유럽을 느끼고 싶다면 빼놓을 수 없는 곳, 바로 신천지로 가보자. 황피남로(黃陂南路)에서 태창로(太創路)까지 이어진 신천지는 현대적인 외관 덕에 젊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유럽풍의 이국적인 카페와 바가 한 몫을 차지한다. 내가 방문한 날은 비가 와서 조용했지만 날이 좋은 때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고 한다. 신천지의 건축 양식은 상하이를 제외한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이다. 시쿠멘이라 불리는 19세기 건축물은 현대적으로 리모델링되었는데, 중국식과 서양식을 조합한 퓨전 양식인 점이 인상적이다. 청담동을 연상시키는 거리에서 비에 가만히 젖어 들어가는 건물들의 모습이 참 고즈넉했다. 2~3층짜리 낮은 단층 건물에 자리 잡은 카페와 바 가게들은 단순함 그 자체였다. 누군가가 안아주길 바라는 예쁘고 새침한 아가씨처럼 고상한 모습으로 거리를 지켰다. 시간이 넉넉하여 그중의 한 가게에 들러 식사하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날이 어두워지니 옅은 갈색의 희미한 조명이 로맨틱하게 거리를 물들였다.

 

<옛 거리>

옛 거리의 낮풍경

상점에 파는 고풍스러운 찻잔

옛 거리의 밤풍경

새침한 신천지를 잊고 기품 있는 옛 거리주가각을 만나는 일은 상하이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한국의 인사동 혹은 남대문시장 같은 옛 거리는 쇼핑의 명소지만 필자는 건물의 모습에 매료되어 쇼핑은 뒷전으로 미뤄두었다. 중국식의 웅장한 외관과 미로처럼 이어진 내부, 3~4층의 단층 목조 건물은 필자가 중국에 와 있음을 실감케 했다. 건물이 자아내는 풍경만으로도 마음은 시간여행을 떠난 듯 황홀했다. 특히 곡선을 따라 예쁘게 이어진 처마 끝과 위층의 나무 창문에는 비가 맺혀 더욱 아름다웠다. 몇 번을 돌고 돌아 길을 헤매도 그 헤맴이 즐거웠다.

 

<주가각>

동양의 베네치아다운 주가각의 아름다운 풍경

주가각 골목의 고즈넉한 상점

소담한 주가각 건물의 뒷모습

옛 거리를 떠날 때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주가각이 있었기에 여행의 즐거움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동양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운하 도시 주가각은 상하이에서 가장 오래된 운하라고 한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인기가 있다는데 다리 위에서 보는 그 풍경을 가만히 본다면 정말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다. 마을을 따라 흐르는 운하를 배를 타며 감상하니 그 정취는 더욱 멋스럽게 다가왔다. 주가각의 좁은 골목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야기꾼처럼 낡았지만 단정했다. 거리의 건물들은 서양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멋스럽게 담았다며 온몸으로 자신을 뽐내는 듯 했다.

 

<동방명주>

막대에 구슬을 꿴 듯한 동방명주 외관

아찔한 유리 전망대

유럽풍의 상하이와 고전풍의 상하이를 느꼈다면 이젠 상하이의 현대를 느낄 차례다. 현대 상하이를 느끼고 싶다면 동방명주 만한 곳이 없다. 동방명주는 상하이의 랜드마크이자 푸동의 상징이다. 아이스크림 막대 끝에 구슬을 꿰어놓은 모양의 건물로 높이 468m, TV 송신탑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가장 높은 스페이스 캡슐(315m)까지 갈 수 있는 티켓인 스페이스 캡슐을 포함하여 주 전망대(263m)까지 갈 수 있는 티켓, 유리 전망대(259m)까지 갈 수 있는 티켓까지 3종류인데 그중 유리 전망대를 택했다. 우리나라 남산 엘리베이터를 연상시키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더니 상하이 전역은 물론 푸동, 황포강, 외탄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만 보면 무슨 재미랴. 동방명주 유리 전망대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전망대 밑으로 보이는 아찔한 풍경이다. 하늘을 걷고 있는 듯 바닥이 훤히 보이는 유리 전망대는 처음에는 조금 무서울 수 있지만 자꾸 걷다 보면 스릴감에 중독되어 계속 걷게 된다. 다만 유리 바닥에 온 관심이 집중되기에 바깥 풍경은 의식적으로 신경을 써야 챙겨볼 수 있다. 몇 바퀴를 걸어도 지루하지 않은 유리 전망대만의 매력이다.

 

<역사박물관>

남경로 야경과 닮은 모형

유럽풍 건물 모형

동방명주에서 전망대만 관람하고 떠나면 너무나 아쉽다. 왜냐하면, 동방명주 지하에 있는 상하이역사박물관의 볼거리가 만만치 않게 많기 때문이다. 상하이 백녁사를 보여주는 역사박물관에는 각양각색의 외국인 주거지 모습, 예전 화교와 서양인들이 함께 생활했던 조계지, 그리고 동서양의 양식이 혼합된 석고문 등이 작은 모형으로 진열되어 있다. 상하이 근대사를 생생하게 전하는 이곳에서 모형으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근래에 방문했던 박물관 중에 단연 최고! 상하이는 박물관 안에서도 이렇게 매력이 넘쳐난다.

 

<남경로>

 

비 내리는 남경로

명동과 닮은 남경로

출국 전, 마지막 방문지는 남경로를 선택했다. 남경로는 중국 최고의 번화가이자 한국의 명동과 같은 곳으로, 중국 현대화의 상징인 거리이다. 다양한 상점과 레스토랑, 백화점, 호텔 등이 위치해  남경로에는 늘 사람이 붐빈다. 비가 오는데도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미 우리나라에 입점한 브랜드가 많았기에 이곳에서도 쇼핑보다는 건물의 분위기를 감상했다. 기념으로 사진도 몇 컷 찍고 남경로의 인기 간식이라는 에그 타르트와 요거트도 맛있게 먹었다.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니 이제 정말 상하이와 이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 불빛은 이상하게도 더욱 예쁘게 반짝이는 것 같았다.

 

여행 내내 비가 왔지만, 날씨마저도 상하이의 아름다움을 흐리게 만들지는 못했다. 상하이는 방문하는 곳마다 각각의 매력으로 넘쳤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중국 음악을 들으며 상하이를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김재영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다루는 시인이자 프리랜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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