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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그리고 바롤로

아직도 짙은 안갯속에서 미처 수확이 되지 않은 네비올로가 나무에 매달려 있을지 모른다. 가을엔 피노 누아라면, 으슬으슬한 저기압의 첫눈이 내린 초겨울엔 좀 더 따뜻한 느낌의 네비올로다.

네비올로 하면 떠오르는 건 바롤로다. 그런데 유독 바롤로는 맛있게 마시기가 어렵다. 가격도 높다. 바롤로를 먹는다는 건 어떤 의식과도 같아 나도 평소에 집에선 오픈할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왜일까, 왜 이렇게 바롤로를 맛나게 먹기가 쉽지 않은 걸까? 실제로 맛은 있는 걸까?

바롤로에 대한 기대와 실망은 되풀이된다. 꼭 숙성된 바롤로만 마시겠다는 사람도 많다. 낙엽이 깔린 숲속에서 트러플을 코에 대고 있는 듯한 향의 잘 숙성된 바롤로는 언제나 황홀하다. 하지만, 바롤로만의 매력이 숙성되었을 때만 나온다면 최고의 와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트러플 향은 후레쉬 트러플을 먹을 때가 가장 좋다.

첫눈이 내려 이제 바롤로를 먹기 좋아졌다는 것 말고 이 글은 첫눈과 관련이 없다. 첫눈에 관해선 각자 기억 속 아련한 추억들을 꺼내 곱씹길 바란다. 이 글은 바롤로를 맛있게 먹자는 가이드다.


1. 타닌을 맛있게 먹자. 
타닌은 바롤로를 바롤로답게 만드는 요소다. 타닌의 많고 적음만 볼게 아니라, 타닌이 어떤 질감으로, 어느 정도 굵기로, 얼마만큼 어떻게 입에 남는지, 남고 나서 (잔향이 아닌) 잔’맛’이 어떤지에 따라 좋은 바롤로와 더 좋은 바롤로로 구분된다. 타닌 빠진 네비올로가 딱 피노 누아다. (물론 피노 누아에도 타닌이 있지만 네비올로 마시고 피노 누아 마시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타닌을 먹을 줄 알아야 바롤로를 맛있게 먹는다.

2. 자신만의 시음 적기를 생각하고 바롤로를 사자. 
시음 적기에 다다른 바롤로는 어릴 때보다 훨씬 좋은 향과 맛을 낸다. 문제는 시음 적기가 언제인지 만든 사람도 가늠이 잘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빈티지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의 바롤로는 보통 수확 연도로부터 6-12년 사이 시음 적기에 이른다. 시음 적기에 들었다가 다시 빠지기도 한다. 베르두노, 라모라 지역의 바롤로가 일찍 열리고 몬포르테, 세라룽가의 바롤로가 늦게 열린다. 시음 적기 이후의 올빈을 먹는 건 순전히 취향의 문제다. 난 신선한 과실 향이 누그러진 바롤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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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있을까 없을까. 살아있을까 죽었을까. 결국 뜯어봐야 안다.

3. 돌체토, 바르베라, 랑게 네비올로와 친해지자.
어느 정도 시간이 더해진 와인들의 가치가 더 돋보이는 건 맞지만, 실제로 시간이 엄청 필요한 톱클래스 바롤로들이 즐비하다. 실력 있는 소믈리에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상, 정말 마시기 쉽지 않다.
돌체토, 바르베라뿐만 아니라 랑게급 네비올로에서 얼마든지 좋은 맛과 향은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오히려 네비올로만의 선명한 검은 과실 향은 랑게급에서 훨씬 더 쉽게 즐길 수 있으며, 이들은 한식을 포함한 음식도 잘 포용한다. 질 좋은 바르베라와 랑게 네비올로는 10년 정도는 우습게 숙성되어 환상적인 향을 내는 경우가 많다. (돌리아니 같은, 질 좋은 돌체토도 마찬가지) 이들에게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새 바롤로를 이해하기가 한결 쉽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결국, 같은 땅에서 나오니까.

4. 폐쇄적으로 마셔라
피에몬테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다른 이탈리아 사람들과는 성격이 꽤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이들은 폐쇄적이다. 음식과 와인 문화 또한 다르지 않다. 피에몬테 와인을 마실 때 토스카나 와인 같은 다른 와인이 같은 자리에 껴있다면 그 매력이 서로 반감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음식 또한 마찬가지이다. 거나하게 비스떼까 피오렌티나를 준비해서 바롤로를 꺼낸다면 평소 고소하다고 느꼈던 소고기 맛이 네비올로의 밸런스를 무너트리며 비릿한 피 맛으로 바뀌는 모습과 마주칠 것이다. 그릴에 구운 고기와 생각보다 매칭이 잘 안 되는 이유는 그들이 고기를 주로 스튜로 해 먹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토마토소스를 거의 쓰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비(非 )피에몬테 이탈리아 음식과 은근히 매칭되지 않는다. 까다롭다. 음식도 꽤 신경 써서 맞춰주어야 한다. 바롤로니깐.

5.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나 거기서 거기
이 둘을 구분하는 건 이름 정도다. 바르바레스코가 좀 더 부드럽다고 얘기되는 것은 좀 더 쉽게 팔 수 있는 양조 스타일로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이것도 이미 예전 얘기다. 요즘은 프렌치 오크 숙성을 예전처럼 하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퀄리티의 두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 해보면 구분하기 매우 힘들다. 소믈리에 대회를 준비할 것이 아니면 같은 선상에서 와인을 고르면 된다. 중요한 것은 생산자다.

6.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자.
여기까지 읽다 보면 이렇게까지 마셔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 수 있다. 그럼 브루넬로 마시면 된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자. 바롤로는 응당 노력을 통해 성취해야만 하는 고결함을 지니고 있다. 꼭 찾아서 느껴 보시길. 첫눈이 오는지 마는지도 모르는 사람과 첫눈을 기다리고 자신만의 감정을 찾는 사람이 다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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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lianwineeditor

이탈리아 와인 에디터, 이탈리아 와인'만'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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