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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찾은 지속적이고 건강한 음주 생활의 의미

통영에서 찾은 지속적이고 건강한 음주 생활의 의미

Sunjoo Kim 2020년 8월 3일

혼밥, 혼술, 혼행.
‘혼자 먹는 밥’, ‘혼자 마시는 술’, ‘혼자 하는 여행’을 줄인 말로 밀레니얼 세대에겐 하나의 문화처럼 번졌다. 한때 유행처럼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혼자’ 문화는 이제 전 세대의 일상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고,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다.

다들 아시다시피 코로나19 사태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우리의 일상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많은 사람과 접촉하는 장소를 피하고 비대면(언택트) 관광지를 선호하게 된 것도 코로나로 인한 큰 변화 중 하나다. 기업에서는 재택근무를 하고 사적인 모임을 자제하게 되면서 우린 어쩔 수 없이 ‘혼자’여야만 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 여럿과 어울려 마시는 술이 가장 맛있고, 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필자 같은 애주가에겐 가혹한 상황이다.

코로나 시대에 걸맞게, 편의점에서 ‘4캔에 만원’ 하는 맥주를 집어 들고 집에서 술(집에서 즐기는 술)을 즐기며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고 있지만, 출장을 빙자해 지역 술을 즐길 때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두세 개 테이블이 전부인 조그만 동네 밥집에서 즐기는 지역 술, 예전엔 그 귀함을 미처 몰랐다.

국내산 찹쌀과 고구마를 누룩으로 발효하여 맑게 걸러낸 ‘고메생약주’

오래전, 니시카와 오사무 작가의 <행복한 세계술맛기행>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는 40년간 세계명주 기행을 떠났던 범상치 않은 술력(술 능력)을 맛깔스러운 글로 풀어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후, 필자는 이 작가처럼 살고 싶다는 꿈보다 작가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이렇게 많은 술을 마셨음에도 아직까지 안녕하신지가 궁금했던 거다.

몇몇 자료를 통해 작가가 여전히 건강하게 음주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필자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술과 그에 맞은 음식을 페어링하고 섭취했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하는 거라고. 지속적이고 건강한 음주 생활의 척도는 술과 음식의 조화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빌레트의 부엌X봉수>, <정도악 도가> 입구

필자는 이번 달 통영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조선 시대 국가적 위급상황을 횃불이나 연기로 알렸던 봉화대가 있었던 곳, <봉숫골>이란 동네를 시간 내서 걸었다. 용화사까지 이어지는 짧은 길이지만, 통영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몇 년 사이 힙한 거리로 떠올랐다.

봉숫골에는 지역 출판사 ‘남해의 봄날’이 운영하는 <봄날의 책방>, 일러스트레이터인 밥장이 운영하는 내성적싸롱 호심,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전혁림 화가의 <전혁림 미술관>을 비롯해 아기자기한 카페, 밥집, 공방이 모여있고, 4월에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감상할 수 있는 <봉숫골 벚꽃축제>가 열린다.

느긋하게 봉숫골을 걷다가 한 가게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혼술과 낮술을 환영한다는 <빌레트의 부엌x봉수> 앞에서였다. 가게 간판 옆엔 술 빚는 집 <정도악 도가> 간판이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통영에 산양막걸리 외 또 다른 술도가가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일어 들어갔다.

김창남 국수와 고메생약주, 낮술환영세트

1인 식당으로 운영하는 <빌레트의 부엌x봉수>는 제주도 세화에 있다가 작년쯤 봉숫골로 이전했다. 사장님께서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동네라고 하니 굳이 봉숫골을 선택한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린 시절 추억을 기억하고자 <정도악 도가>에 할머니 함자를 담았다. 메인 메뉴 중 하나인 <김창남 국수>는 어머니의 비법인 멸치 육수와 양파 조림, 고추장 소스로 만들었다. 예상대로, 김창남 씨는 어머니의 존함이다.

고구마가 주재료인 고메생약주를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판매한다.

전통주는 크게 탁주, 약주(청주), 증류주, 와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약주와 청주(淸酒)는 혼용되어 사용하기도 했지만, 1909년 일본에 의해 제정된 주세법 이후 약주와 청주는 의미를 구분하여 사용하게 되었다(일본식 맑은 술은 청주로 한국식 맑은 술은 약주로 정해졌는데, 주세법과 관련된 내용은 다음 기회에 설명하게 되길 바란다).

막걸리(탁주)를 흔들지 않고 가만히 두면 그 위로 맑은 술이 뜨는 것을 보셨을 거예요. 곡물을 원료로 하여 발효시킨 술덧을 체나 천 주머니로 거칠게 걸러내면 탁주이고, 술독에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떠내거나 탁주의 지게미를 가라앉혀 맑게 만든 술이 약주예요. 약주라고 하면 약재가 들어간 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부재료를 넣지 않고 쌀 등의 곡물로 빚은 술도 약주라고 부릅니다. 대부분의 약주는 탁주를 목적으로 만든 술에 비해 몇 단계의 공정을 더 거쳐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잔 술, 한국의 맛>, 이현주-

참기름 향이 고소한 명란덮밥. 단맛이 없는 약주와 잘 어울린다.

2층 양옥집의 작은 방에서 빚는 <정도악 도가>의 고메생약주는 국내산 찹쌀과 고구마를 누룩으로 발효하여 맑게 걸러낸 11도의 약주다. 고메란 고구마를 뜻하는 옛말로 통영시 욕지면 특산물이 고구마인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단맛이라곤 거의 없는 드라이한 맛에 진득한 향. 이런 술이라면 몸에 약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고메생약주와 메인 메뉴(김창남 국수, 명란덮밥)를 결합한 낮술 세트는 ‘건강’까지 생각하는 애주가에게 권장할 만하다.

국내에는 이처럼 소규모 양조장에서 빚는 술,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전통주가 의외로 많다. 동네 밥집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고, 지역 양조장에서 만날 수도 있다. 필자는 소중하게 찾아온 연(緣)을 내치지 않고, 기억하고 소개하려 한다. 이런 지역 술은 현지 음식과 페어링할 때 진가가 드러난다. 지속적이며 건강한 음주 생활을 즐기고 싶다면, 당신도 애주가이자 미식가였으면 한다. 혼술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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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joo Kim

철로와 맥주가 있다면 어디든지 가고 싶은 여행자, 지구상의 존재하는 술을 마시기 위해 여행하고 글을 쓰는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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