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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바이오다이내믹의 선구자, 벤지거 와이너리 투어

샌프란시스코 현지인은 샌프란시스코를 미식과 안개, 히피가 모여있는 낭만의 도시라 부른다. 이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반드시 해야 하는 “Must do” 리스트 3가지가 있다. 먼저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 그리고 금문교를 배경으로 비스타 포인트에서 사진 찍기, 마지막으로 나파 밸리와 소노마 카운티의 와이너리 방문하기가 그것이다.

나는 그 중 와이너리 방문이 샌프란시스코의 꽃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도시에서도 높은 수준의 와인을 전문가의 설명을 영어로 들으며 까브에서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직접 와이너리에 방문해서 포도나무를 만져보고, 동굴에 들어가 잠들어 있는 오크 배럴들 사이에서 와인을 테이스팅하는 것만큼 가슴 떨리는 순간이 없을 것이다.

와인은 자연을 반영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차를 타고 1시간 15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소노마 카운티의 소노마 밸리에 위치하고 1973년에 설립된 이후로 3대째 이어져오고 있는 벤지거 패밀리 와이너리(Benziger Family Winery).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나파 밸리와 소노마 카운티를 통틀어서 처음으로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을 시작한 와이너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프랑스에 니콜라 졸리가 있다면, 캘리포니아에는 벤지거 패밀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1995년부터 유기농 재배방식으로 와인을 만들면서 점진적으로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 바꿔오다가 5년이 지난 2000, 바이오다이내믹 인증 기관인 디미터 협회(Demeter Association)로부터 캘리포니아 최초로 인증을 받게 된다. 와이너리 오너인 마이크 벤지거와 와인메이커 조 벤지거의와인은 자연을 반영해야 한다는 와인 철학이 반영된 결과이다.

포도밭의 악어새, 포도나무의 친구들

벤지거 와이너리는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테이스팅룸과 오피스를 중심으로 5개의 자체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물론 전부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 토양과 포도나무를 관리하고 있다. 이 곳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풍경은 바로 수 십 마리의 양, 6마리의 소, 그리고 새들이다. 양들이 잡초를 뜯어먹고 분뇨를 만들면 이는 자연 비료가 되어 토양의 영양을 책임진다. 바이오다이내믹의 상징, 소 분뇨를 집어넣은 소 뿔은 벤지거 와이너리 소유의 스카티시 하이랜더(Scottish Highlander)라 불리는 6마리 소들로부터 나온다. 심지어 6마리 모두 이름이 있는데, 츄이(Chewy)나  퍼디난드(Ferdinand) 등으로 불리는 이 친구들은 벤지거 패밀리의 또 다른 소중한 가족이라고 한다.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의 규정상 화학 비료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양과 소의 분뇨가 화학비료를 대체하고 있다. 그렇다면 포도나무에 해로운 벌레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바로 수백 마리의 벌새와 해충을 잡아먹는 이로운 벌레들이 그 답이다. 벌새들은 포도나무를 해치는 벌레들을 잡아먹고, 포도나무와 포도에 해롭지 않은 천적 벌레들 역시 해충을 잡아먹어 포도밭 해충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들으니, 이 곳은 와이너리면서 동시에 하나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생태 공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2014년에 소노마 시정부에서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이 정식으로 인정되었고, 2019년까지 소노마에 있는 모든 와이너리가 바이오다이내믹 농법, 혹은 유기농법으로 포도밭을 관리해야 한다는 지침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노마 카운티의 여러 와이너리들이 벤지거 와이너리의 여러 요소들을 공부하고 모방해가고 있다는 후문이다.

벤지거의 오아시스

가이드 캐리와 함께한 배럴 와인 테이스팅

벤지거 와이너리는 총 3종류의 테이스팅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파트너 투어, 까브 투어, 그리고 바이오다이내믹 트램 투어가 있는데, 나는 포도밭과 까브 투어가 모두 포함되어있는 파트너 투어를 신청했다. 이 역시 트램을 타고 와이너리를 돌아다닌다. 포도밭으로 가던 중,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작은 호수 두 곳을 볼 수 있었다. 첫 번째 호수에서는 오크통을 씻은 갈색 물이 지하 수도를 통해 호수 가장자리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호수 중앙에 설치된 최첨단 장비로 이물질을 제거하고 산소를 공급하여 다시 쓸 수 있는 깨끗한 물로 만들고 있었다. 이 물은 관개에도 쓰이고 다시 오크통 세척에 사용된다고 한다. 두 번째 호수는 소노마 산의 지하수를 퍼 올려 더욱 맑은 물을 볼 수 있었는데, 100% 포도밭 관개에 쓰이고 있다고 한다. 지인으로부터 저렇게 규모가 작은 호수에서 무슨 관개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받았다. 포도나무는 성장하고 과실을 만드는데 많은 물이 필요 없는 식물이다. 그리고 벤지거 와이너리는 물방울 단위로 관개하는 “Drip irrigation system”을 사용하고 있어서 물의 낭비가 없으므로 작은 호수에서도 관개가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포도밭의 조건, 방향! 토양! 경사!

트램을 타고 언덕을 올라가자 25년 된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나무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차갑게 칠링된 소비뇽 블랑을 즐겼다. 와인은 때와 장소에 따라서 맛과 향이 달라지는데, 이 때의 소비뇽 블랑은 무더운 태양 아래서 그 어느 때보다 시원하고 만족스러웠다. 5개의 에스테이트를 소유하고 있는 벤지거 와이너리는 언덕의 방향과 경사도, 토양에 따라서 다른 품종을 생산하고 있다. 아침 해가 짧은 이유로 동향을 바라보는 포도밭에서는 소비뇽 블랑, 햇빛을 가장 많이 받는 남향의 포도밭에서는 가장 높은 경사도에서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토양도 역시 다른데, 벤지거 와이너리는 포도밭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15개의 토양 중에서 9개의 토양이 모두 모여있다. 자갈이 많고 배수가 잘 되는 토양에서는 카베르네 소비뇽을, 점토와 석회로 구성된 이회토에서는 피노 누아를 기르고 있다. 이번 여행의 가이드 캐리(Kerry)는 가까이 있는 산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가 가리키는 산은 바로 소노마 산이었다. 이 산은 300만 년 전에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필연적으로 미네랄이 풍부한 여러 종류의 화산토가 포도밭 땅속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포도나무에 칼슘, 마그네슘, 철분 등의 영양분을 풍성하게 공급해준다. 와이너리가 만들어지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오감충족! 벤지거 와인 테이스팅

벤지거 패밀리의 카브

뜨거운 포도밭을 지나 카브에서 배럴 테이스팅이 진행되었다. 산을 뚫어 동굴을 만들고 자연적으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도록 설계된 이 카브에는 4,000개의 배럴이 때를 기다리며 잠들어 있었다. 이곳에서 2016년 빈티지의 피노 누아와 배럴 숙성을 거친 2014년 빈티지의 같은 와인을 비교 테이스팅 했는데, 오크 배럴 숙성이 와인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 차이를 여실히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와인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써 정말 소중한 순간이었고, 차가운 카브 안에서 비교 테이스팅으로 얻은 깨달음에 몸은 뜨거워지고 있었다. 나는 오크 배럴을 만져보고 바닐라 냄새가 혹시 날 수도 있지 않을까 오크통에 코를 대보면서 더 없는 행복을 만끽했다.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해괴한 행동에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여기서 와인이 들어있는 오크통과 빈 오크통은 어떻게 구분할까? 캐리의 말에 의하면, 오크통의 마개가 수직으로 하늘을 향해 있으면 와인이 들어있는 통이고, 사선으로 눕혀 있으면 빈 통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벤지거 와이너리는 모든 오크통을 프랑스에서 수입하고 있고 모든 오크 배럴은 과한 토스팅을 지양하고 있다.

투어의 마지막 순서, 와인 테이스팅

파트너 투어의 마지막은 테이스팅 룸에서 이루어진다. 피노 누아, 카베르네 소비뇽, 보르도 블렌딩 2종을 테이스팅하는데 여기에는 벤지거 와이너리의 최상급 와인 중 하나인 “Tribute” 2013 빈티지도 포함되어 있다.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말벡, 프띠 베르도의 전형적인 보르도 블렌딩인 이 와인은 벤지거 와이너리에서 처음으로 바이오다이내믹 디미터 인증을 받은 와인이기도 하다. 잘 익은 블랙 체리, 블랙 베리, 블랙 플럼의 아로마가 1차 레이어를 만들고, 그 위에 블렌딩에서 나오는 타임, 로즈마리와 같은 각종 허브, 바이올렛 꽃 향기, 오크 숙성에서 나오는 바닐라, 에스프레소, 달콤한 향신료의 향이 겹겹이 층을 이루어 코와 혀를 즐겁게 해준다. 풀바디의 묵직한 무게감, 잘 익었지만 여전히 살아있어 질감을 즐겁게 해주는 타닌, 오랫동안 이어지는 후미를 즐기면서 이 여정을 마무리했다.

보통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을 접해본 사람들은 인공적인 비누 향이 난다든지, 전형적으로 예상하는 그 향과 맛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벤지거의 와인들은 이러한 편견을 여지없이 깨트렸다. 벤지거 와이너리의 와인은 피노 누아든 보르도 블렌딩이든 예상하는 향과 맛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깊은 감동을 주었다.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던 순간이었다.

이렇게 1시간 30분 코스의 투어가 끝나고 기념품 샵에 들어가면 포도밭의 심토와 표토를 그대로 복원한 투명한 유리 상자들이 있다. 반드시 둘러보고 와이너리 투어를 마무리 하도록 하자.

벤지거 패밀리 와이너리는 8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오전 10 15분 투어를 신청할 경우, 수확을 축하하는 의미로 샴페인을 터뜨린다고 한다. 이는 자연에 기대어 와인을 만드는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의 특성상 큰 피해 없이 원하는 포도가 수확되었을 때의 기쁨을 방문객을 포함한 와이너리의 모든 사람들과 나누는 의미라고 한다.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다면 사람과 동물, 포도와 따뜻함이 공존하는 벤지거 패밀리 와이너리를 꼭 방문하길 바란다.

와이너리 주소: 1883 London Ranch Rd, Glen Ellen, CA 95442

와이너리 홈페이지: https://www.benziger.com/

바이오다이내믹 농법

: 오스트리아 출신의 루돌프 스타이너 박사가 1920년대에 고안한 자연친화적인 농법이다. 달과 별의 움직임에 따라서 비료를 주는 시기, 수확하는 시기 등이 다 정해져 있고, 바이오다이내믹 달력에 나와있는 순서대로 포도밭을 관리한다. 일체의 인공 화학비료, 살충제, 제초제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양조 과정에서도 상업 효모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서 천연 효모로만 발효를 한다. 당분과 산 첨가, 알코올을 높이기 위한 원심 분리기 같은 추가 작업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토양 관리 방법으로는 소 뿔에 소의 분을 채워서 땅속에 묻어놓고 분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면 다시 달력의 날짜에 맞춰서 뿔을 꺼내고 다시 집어넣어 이를 반복하는 과정이 있다. 현재 이 농법은 지속 가능한 농법(Sustainable farming)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농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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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현

샌프란시스코에서 WSET Diploma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MW가 되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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