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와인과 각종 주류, 관련 기사를 검색하세요.

추석에 ‘갈비찜’이 ‘레드와인’과 어울리지 않는 이유

추석에 ‘갈비찜’이 ‘레드와인’과 어울리지 않는 이유

italianwineeditor 2016년 9월 13일

잘 어울린다고 얘기하실 분들은 뉴코리아 파인 다이닝을 지향하는 식당에서 알라카르트 갈비찜과 함께 드시길.

곧 추석이다. 가족들이 모여 송편, 전, 잡채, 갈비찜 등을 함께 먹곤 한다. 그중 갈비찜은 불고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와인회사 마케터들이 가장 사랑하는 페어링 메뉴 중에 하나이다. 며칠 전에도 칠레의 한 유명 와인회사 회장이 방한하여 갈비찜과 자신의 와인이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잘 교육한 듯.


실제로 잘 어울릴까? 주의를 기울여 갈비찜과 자신이 좋아하는 레드와인을 마셔본 적이 있는가. 혹시 그동안 머리로만 페어링 했던 것은 아닌가. 갈비찜이 ‘고기’ 요리니까, 그중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고기 요리 중 하나니까, 레드와인=고기라는 무의식적인 연결고리를 통해 갈비찜이 레드와인과 잘 어울릴 거라고 막연하게 사고한 인지학적 오류는 없었는지. 


추석상에 올려진 갈비찜 주변을 살펴보자. 멀리 주방에는 차마 상에 앉지 못하고 계속 주방 일을 하고 있는 누군가의 슬픈 뒷모습이 언뜻 보이고, 상 위에는 최소한 나물, 김치가 포함된 10가지는 족히 넘는 음식이 놓여 있다. 당신은 와인을 좋아해 굳이 와인글라스를 상에 올려놓고 와인을 따본다. 화이트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을 먼저 마시는 경우도 드물게 있겠지만, 레드 와인은 반드시 나올 것이다. 명절 상차림에선 갈비찜이 메인 요리이니까. 구태의연한 유교사상으로 인해 제사상에 한
번 올렸던 것이면 한번 더 데워서 나중에 나올 것이다. 미리 내버리면 갈비찜만 쏙 없어지는 걸 아는 우리 어머님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레드 와인은 ‘반주’이상의 역할을 하기 힘들다. 그나마 반주 역할을 하면 다행이다. 보통은 평소 먹던 맛의 반에 반도 맛이 안 날 것이다. 누군가는 이때 맥주를 가져오라고 말할 것이고, 대동강 맥주만도 못한 소주의 토닉워터 역할인 국산 맥주가 소환되어 더 대접을 받는 상황이 돼버릴 수도 있다. 물론 온 가족이 와인 러버라면 와인에 대한 이야기가 신의 물방울처럼 펼쳐지고 테이스팅에 집중하며 갈비찜을 즐기겠지만, 그래도 계속 갈비찜만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당신의 입안에는 김치의 깊은 맛이 박혀 있고 코는 참기름에 마비되어 있을 것이다. 제대로 즐길 수 있겠는가. 

google

이 사진들을 보면 갈비찜뿐만 아니라 왜 한식을 먹을 때 와인을 같이 즐기기 쉽지 않은 지 느낄 수 있다. 한 상에서 수십 가지의 맛이 섞이기 때문에 애초에 페어링이란 개념이 끼고 들어갈 곳이 없다. 반주로서 와인을 골라야 한다.

페어링만 따져도 갈비찜의 근본적인 문제는 ‘단짠단짠’ 캐릭터가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와인의 섬세함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매콤함이 더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 갈비찜의 달콤함은 어느 정도 인지가 되어 진판델, 쁘띠 시라 등 달짝지근한 레드와인과 매칭하려는 시도를 보긴 했다. 이탈리아 경우에는 진판델 친구인 프리미티보를 비슷한 예로 들 수 있겠다. 나쁘진 않겠지만, 평소엔 거들떠도 안 보는 와인들인 건 상관없나 보다. 그리고 결국 혀 뒤쪽에 남는 레드와인의 타닌이 갈비찜의 달콤함이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가는 것과 막아서며 충돌해 껄끄러운 뒷맛을 남기게 된다. 온 가족이 와인 러버라(또?) 와인을 위해 갈비찜을 정말 달지 않게 만들 수 있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짠맛. 짠맛의 속성이 간장이라는 것이다. 간장 양념은 온 국민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양념이지만, 간장 또한 발효식품이기에 유독 와인과는 맛이 부딪힌다. 와인 폴리(Wine Folly)는 와인 페어링에서 피해야 할 6가지 음식에 간장을 포함시킬 정도다.(https://winefolly.com/tutorial/6-foods-dont-pair-wine/)

soy-sauce-sushi-asparagus-blue-cheese-chocolate-illustration

Chocolate, Blue Cheese, Asparagus, Sushi, Soy Sauce & Brussel Sprouts are hard to match with wine

이쯤 되면 추석에 갈비찜을 와인과 맛있게 먹기는 요원해 보인다. 어쩌란 말인가. 신대륙 카베르네 쇼비뇽 같은 맛없는 와인을 맛없게 먹는 방법이 있긴 하다. 손해는 안 보니까. 그러다간 또 국산 맥주가 소환되겠지. 어쨌든 와인에서 찾아야 한다. 필자는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작년 설날 즈음 갈비찜을 피에몬테식으로 해본 적이 있다. 피에몬테 와인이랑 맛있게 같이 먹으려고. 갖은 채소와 약간의 토마토에 바르베라 와인을 부어 끓였다. 어쨌든 와인과 맛있게 먹는 데까진 성공하였으나, 추석 상차림 같진 않다는 고정관념에 또 발목이 잡혔다. 그놈의 고정관념. 요즘의 추석 상이 그리 전통이 깊지 않다는 기사가 많이 보인다. 좋게 생각해도, 국민 중 노예 비율이 40%에 육박했던 조선 말기의 양반집 허세 상차림으로 보이는 건 나뿐인가. 중요한 건 가정의 화합과 세계 평화일 텐데 상 차리느라 허리가 휘어져 나가는 건 정말 이상하다. 여기에서 정답을 찾아보자. 고생하시는, 혹은 고생하셨던 어머님이 좋아하는 와인을 고르면 된다. 어머님이 좋아하는 와인을 가지고 계다면 좋겠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평소에 어머님이 와인을 드셔본 적이 별로 없다면, 뽀글뽀글 기포가 살아있는 아스티(ASTI)나 프로세코(PROSECCO)를 준비하자. 어디서든 구할 수 있지만, 이왕 준비하는 거 제일 좋은 걸로. 아무리 평소에 와인 안 드시는 분들도 좋은 것, 안 좋은 것은 아신다. 이 와인들은 최상급으로 사더라도 가격에 부담이 없다는, 명절에 걸맞은 미덕을 갖추고 있다. 플루트 잔 따위는 없어도 좋다. 집에 있는 가장 이쁜 유리컵에 따르면 된다. 장담컨대 당신의 어머님 입가에 못 보던 미소가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페어링? 페어링 측면에서도 아스티나 프로세코는 다른 어떤 와인보다도 훨씬 더 훌륭하게 한 상을 커버해준다. 명절 상차림에서 빠질 수 없는 간장, 참기름, 김치 등 와인 페어링의 방해요소들까지도 부드럽게 커버해준다. 청량감에선 절대적인 점유율의 음료인 국산 맥주나 콜라, 사이다와 같이 놓고 비교해 봐도 밀리지 않는다. 단맛이 기분 좋게 혀에 남는 엑스트라 드라이나 드라이급(EXTRA DRY-DRY, 잔당 기준 12-32g/l 사이)의 프로세코가 한 상 반주로서, 즉 음식을 받쳐주는 역할로서는 좀 더 유리하고 어머님의 미소 측면에선 아스티가 좀 더 유리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브뤼(BRUT)급 프로세코(잔당기준 0-12g/l)는 쌉싸름한 맛이 강해 어르신들에겐 거부감이 발생될 수 있고, 단맛이 거의 없어 간장 등 커버할 수 있는 페어링 영역이 좁아짐을 주의한다.

그래도 이런 가벼운 와인보단 갈비찜에 레드 와인이 낫지 않겠냐고? 갈비찜을 한 입 베어 물고 갈비찜 국물을 흰밥에 비벼 김치와 함께 아사삭 입에 넣어 먹고선 프로세코로 샤샤삭 입가심을 하는 미각적 쾌락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그래도 된다. 가뜩이나 집 안 분위기들 무거울 텐데 가볍게, 가볍게 가자.

Tags:
italianwineeditor

이탈리아 와인 에디터, 이탈리아 와인'만' 전문가.

  • 1

You Might also Like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