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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마시는 여자, 술 마시는 남자

차 마시는 여자, 술 마시는 남자

임지연 2017년 11월 22일

오직 중국에만 있는 ‘술 편의점(酒便利)’

필자에게는 술 알레르기가 있다. 한 때 점심, 저녁 오찬, 만찬 때마다 소맥을 직접 타 마시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부끄럽게도 나이 ‘서른’의 강을 넘으면서 ‘알코올 알레르기’라는 요상한 병을 지니고 살게 됐다. 한때 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각종 모임에 얼굴을 내밀었던 필자가 알코올 알레르기라는 이름부터 이상한 병명을 남몰래 지니고 살게 되면서부터 즐기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차(茶)’다.

‘차’ 이전에는 커피를 종류별로 섭렵해보기도 했지만, 늦은 새벽까지 잠 못 이루게 되는 불면증에 시달리고서 부터는 이 마저도 차 마시는 습관으로 길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노란색 간판이 인상적인 술 전문 편의점 ‘지요피엔리’.

하지만 베이징에서 같이 사는 그 남자는 나와 달리 주당이다. 도수 40도의 브랜디와 럼, 그보다 더 높은 도수의 위스키까지 말끔히 비워내고도 마뜩한 정신을 가진 그는 술을 마셨을 때와 마시지 않았을 때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주당이다. 술 한 잔에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거리는 나와는 정반대이니,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부럽기가 그지없다.

그런 그와 몇 해째 같이 살다 보니, 술을 입에 대지 못하는 필자라도 베이징 어느 곳에 가면 술이 싸고 또 맛이 좋은지를 알게 됐다. 특히 베이징에는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던 술 편의점이 있는데, 그곳이야 말로 같이 사는 그 남자에게 천국과 같은 곳이다. 그렇다, 오직 술만 파는 전문 편의점이 있다.

우리가 아는 골목마다 한 두 곳씩 눈에 띄는 편의점이지만, 취급하는 품목은 오직 술이다. 지요피엔리디엔(酒便利店),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중국의 술 전문 편의점이다.

@찾아가면 종종 마주할 수 있는 할인 기회가 넘쳐난다. 와인 2병 세트에 99위안(약 1만 7천 원)에 판매되고 있는 모습.

중국 사람들이 가진 식문화 가운데 하나는 술을 직접 술 전문 판매점에서 구매한 뒤, 다른 식당에 들고 들어가서 마신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 반드시 그 식당에서 판매하는 술을 팔아줘야 한다는 것을 상식으로 가진 우리에게는 낯선 풍경이지만, 가짜 술이 넘쳐나는 중국에서는 손님이 직접 다른 곳에서 구매한 술을 식당에 가져와 주문한 음식과 함께 반주하는 것이 오히려 상식이다.

물론, 이 때문에 중국 여행객이 많이 찾는 제주도와 서울의 명동, 동대문 일대의 식당에서는 이 같은 중국인들이 가진 외부에서 구매한 술을 가져와 마시는 문화 탓에 식당 주인과 종종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과거 제주도에서 칼부림이 날 뻔했다고 보도됐던 치킨 전문점에서 역시 가해자로 지목된 중국인 여행자들이 가져온 외부 술 반입 문제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중국 국내 술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수입된 유명 주류가 전시된 모습.

우리와 다른 식문화는 곧장 잘나가는 식당 인근마다 전문 술 편의점이 들어서게 하는 계기가 됐다. 식당에서 판매하는 값비싼 술이 그 외관만 근사할 뿐 속에 든 술은 가짜로 제조된 것일 수 있다는 소비자들의 타당한 의심 탓에 우후죽순 생겨나는 술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술의 종류는 100여 가지에 달한다. 퇴근 후 간편하게 한 잔 시원히 마실 수 있는 캔 맥주부터 ‘마오타이주’, 쌀로 만든 ‘미주’ 등 다양한 곡주까지 술이라면 없는 것이 없다.

술을 좋아하는 애호가라면 반드시 찾아가 보길 권하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의 술이라면 으레 마오타이주부터 떠올리는 이들에게 다양한 곡주의 맛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을 필자는 여전히 가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으로 출장을 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부모님과 친척 어르신들을 위해 중국에서 생산되는 쌀로 만든 미주 몇 병을 사서 갈 때가 많다. 내가 사서 가지고 들어가는 미주 맛을 보기 위해 제사 때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었던 친척 오빠가 나타났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중국의 미주는 내가 아는 지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명성을 얻었다.

또, 중국의 맥주라면 칭다오만 떠올리는 이들에게도 이곳 술 편의점은 반드시 방문해야 할 필수 코스다.

전 세계 연간 최대 판매량 기록을 가진 술은 다름 아닌 ‘설화(雪華)’이기 때문인데, 가볍고 순수한 맥주 맛에 반해, 가 처음 베이징을 찾았던 2013년 무렵에는 퇴근길마다 시원한 설화 캔 맥주 한 잔을 넘기는 맛에 신바람이 났던 적이 있었다. 그 가격도 무려 5위안 남짓에 불과하니, 더 없이 매력적인 맥주임에 틀림이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에서 추운 지역으로는 으뜸으로 꼽히는 하얼빈 지역에서 생산되는 맥주 ‘하얼빈’ 역시 소문난 맛 술이다.

미국의 NBA의 공식 후원 업체로도 이미 미국에서 유명세를 얻었는데, NBA 경기장에서 판매되는 중국 맥주는 하얼빈이 유일하다고 한다.

아마도 농구 경기를 즐기는 상당수 미국인 중에서도 중국 맥주 하얼빈에 중독된 이들이 많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또, 베이징의 옛 이름을 간직한 옌징 역시 편의점에서 반드시 구매해야 할 리스트에 포함된다. 지금은 베이징으로 불리지만 과거 옌징이었던 시절부터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였다. 그 때문에 수도에서 제조되는 황제가 마시는 맥주라는 의미에서 그 자부심이 남달랐을 맥주 ‘옌징’은 여전히 베이징 시민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가격은 ‘설화→옌징→하얼빈→칭다오’ 순으로 저렴하며, 1병씩 모두 맛본다 해도 술 전문 편의점에서 저렴하게 구입하면 불과 20위안대에서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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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연

평범함 속의 특별함을 찾는 인생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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