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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술까지 번진 감미료의 민낯

우리 술까지 번진 감미료의 민낯

김세원 2019년 10월 1일

설탕의 공격이 무섭다. 반찬부터 디저트, 일상적으로 마시는 음료와 커피는 물론, 심지어 밥까지 점점 달콤해지고 있다. 덩달아 근래 유행하는 단맛의 정도가 점점 어마어마하게 폭등하고 있다. 가령 최근 여러 프랜차이즈 및 개인 카페에서 판매되는 ‘흑당’ 종류 음료와 디저트는 그 인기가 날로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바야흐로 달콤한 맛에 길이 든 대한민국의 오늘이다.

‘교이쿠상’이라는 말로 대중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유명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역시 일찍이 이러한 문제를 수차례 지적했다. 모든 음식이 더욱더 달아지는 오늘, 이 음식을 밖에서 사 먹는 삶이 더 익숙한 현대인은 종래 집밥이 전달하던 ‘맛’에 대한 기준조차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문제 제기다. 황 칼럼니스트의 의견을 반드시 정답이라 말하자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 식탁에서 백종원을 그만 찾을 때도 됐다. 이유인즉슨, 우리 식탁에 해도 해도 너무 심하게 달콤한 맛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주, 막걸리가 위험하다. / 사진 출처: Pixabay

이쯤에서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우리 밥상이 점점 달콤해지는 상황에서, 우리 술인 전통주 또한 마찬가지의 현상을 보인다. 언론에서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던 시절도 있었다. 가령 일본의 한류 열풍을 타고 K-푸드의 유력한 선봉장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막걸리의 몰락은 이러한 달콤한 맛의 만연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반면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의 전통주 사케 내지는 니혼슈의 경우, 이미 상품을 분류하는 기준에서부터 술의 순수한 맛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장치가 있다. 일본 사케의 종류를 크게 구분하는 그들의 기준에 따르면, 첫째가 전통적인 방식의 재료인 쌀과 누룩으로만 만들어진 사케(이를 ‘준마이’라고 한다)이며, 둘째가 ‘그 외의 재료’로 만든 사케라 명시하고 있다. 요컨대 일본에서는 애당초 전통적인 방식으로 빚는 순수한 ‘전통주’와 현대인의 응용과 개량이 더해진 개량 전통주를 철저하게 구분하는 방침을 취하고 있다. 한편, 한국의 막걸리는 이와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봐도 좋다.

술은 예로부터 우리를 취하게 했다. / 사진 출처: Pixabay

막걸리를 가리켜 한국의 전통주라고 말하는 데 거리낄 사람은 드물지 싶다. 그만큼 막걸리에는 예로부터 탁주이자 모주로 불리며 우리 농민과 전근대 서민의 하루 일과를 달랬던 위로의 역사가 있다. 근데 정작 근래 우리 대한민국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를 보면, 과연 그때 그 시절의 우리 선조가 마시던 막걸리와 정말 이것을 동일한 궤에 속하는 전통주라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단순히 맛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맛이 다른 것은 물론이거니와, 재료부터 다 다르다. 그 옛날보다 오늘을 사는 우리 현대인이 더욱 부유하고 풍족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데도.

가령 술을 빚는 데 품질 좋은 국내산 쌀을 쓰기보다 단가의 문제로 수입산 쌀을 쓰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으며, 그마저도 풍족하게 넣는 일이 드물다. 술도 무릇 음식의 한 갈래라, 원재료의 맛과 수준이 결국 전체 완성된 술과 요리가 지닐 풍미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 당연한 명제가 도전을 받는 순간은 오직 하나, 바로 MSG와 아스파탐 등 속칭 ‘인공감미료’를 넣어 빈약한 재료의 맛을 ‘보충’하는 경우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역대 다시 없을 풍요의 시대, 쌀이 남아돌아 논을 밭으로 갈아엎는다는 21세기 대한민국은 여전히 수입산 쌀조차도 풍족하게 들이지 않고서 자신의 전통주를 빚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부족한 맛은 소비자들이 찾지 않는다는 이유에 단가의 가성비라는 거룩한 구실까지 보탠 인공감미료를 더하는 것으로 보충하면서.

무엇이 진짜 막걸리인가? / 사진 출처: Pixabay

덕분에 가장 큰 문제는, 쓸데없는 부분까지 술이 달아졌다는 사실이다. 본디 탁주나 모주의 경우, 누룩곰팡이가 원재료인 쌀을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약간의 발효취가 생긴다. 맛 역시 발효에 따른 신맛에 쓴맛, 쌀이 당분으로 쪼개지며 발생하는 약간의 단맛이 한데 어우러진, 이른바 삼중주의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 정석이다. 문제는 인공감미료라는 녀석이다. 요즘의 전통주, 특히 일반 대중이 일상적으로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수준에서의 전통주에는 이러한 맛의 하모니를 찾기 힘들다. 빈약한 재료와 이를 대체하기 위한 간편한 도우미, 인공감미료의 첨가로 재료나 양조장, 발효 누룩의 개성조차 느낄 수 없는 밍밍한 풍미의 천편일률적인 단맛만이 남을 뿐이다.

전통이란 무엇인가. 결국 개인이 살아온 역사를 이야기한다. 따라서 전통주의 맛 역시, 우리 사회를 이루고 또한 구성했던 수많은 개인의 역사가 있듯 당연히 다양한 것이 옳지 않을까? 그 소중한 역사를 놓치게 하는 인공감미료라는 가면과 천편일률적인 단맛은, 이제 잠시 내려놓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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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여행처럼, 다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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