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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 밀을 먹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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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 밀을 먹을 수 있을까?

김대영 2022년 9월 13일

라면 가격이 또 올랐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세계 식량 공급망 문제는 놀랍게도 우리가 좋아하는 라면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되었다. 밀가루 생산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밀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밀 가격이 급격히 오른 탓이다.

겨우 1% ..?

밀 가격이 오르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사실 우리나라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1%도 되지 않는 국내 밀 생산량이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먹는 밀의 99%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밀은 세계 주요 3대 작물이자 가장 광범위하게 주식으로 활용되는 작물이다. 쌀이 주식인 우리는 밀의 중요성을 인지하기 어렵지만, 밀은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물이다. 그렇기에 밀 생산을 국가의 경쟁력, 식량안보 차원으로 본다면 밀의 자급은 상당히 중요한 이슈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중요한 밀을 국내에서는 단 1%도 생산하지 않는 걸까?

국내 밀이 밀린 이유?

1970년에는 밀 역시 쌀, 보리 다음으로 중요한 곡류로 취급되어 국내에서 15%까지 자급했다. 하지만, 값싼 수입 밀과 경쟁하기엔 지형의 70% 이상이 산간 지형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는 밀 생산 조건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생산량이 적은 국내 밀은 가격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와 더불어 80년대부터 계속된 밀 수입자유화와 수입 밀 관세 폐지로 인해 국내 밀 가격경쟁력은 점점 떨어졌고, 가격경쟁에서 밀린 국내 밀의 생산 기반은 처참히 붕괴됐다. 실제로 1970년, 10만여 헥타르까지 재배했던 밀은 2019년 3700헥타르 정도만 남게 됐다. 수입 밀에 국내 밀이 밀린 것이다.

밥보단 빵! 한국인의 밀 사랑?

국내 밀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과는 반대로 한국인의 밀사랑은 197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농촌진흥청에서 발표한 ‘1인당 연간 양곡 소비량’을 보면 1970년 쌀은 137kg, 밀은 26kg이었다. 반면 최근 소비량(2021)을 보면 쌀은 57kg, 밀은 33kg로 쌀 소비량이 급격히 감소한 것에 비해 밀 소비량은 아이러니하게도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현대인들이 더 이상 쌀뿐 아니라 밀을 활용한 음식을 많이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며, 우리 식탁에서의 밀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밀 생산이 어려운 이유?

우리 식탁에서의 밀 의존도가 높아지는 만큼 국내 밀 생산량과 자급률 역시 증가해야 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밀 생산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1. 지역, 기후적 한계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농업의 경쟁력을 갖기에 불리한 지역적, 기후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대규모의 농업을 진행하는 타 국가에 비해 밀을 저장하고 가공하는 생산 인프라가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비효율은 곧 가격으로 전이되어 수입 밀과 가격으로는 경쟁할 수 없게 된다. 더불어 연교차(일 년 중 최고, 최저 온도의 차)가 50도 이상이라 온도를 유지하는 데에 들어가는 에너지 소모가 크고 병충해에도 불리하다.

2. 작부 체계상의 한계

농사에 적합한 땅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경우 땅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특히 연중 같은 땅에 다른 작물을 심어 수확하는 ‘이모작’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 작부 체계상에서도 밀은 다른 작물에 비해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벼를 수확하고 보리를 심는다. 즉 쌀과 보리의 이모작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쌀과 보리농사에 사용되는 기구들이 같아 활용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밀은 보리에 비해 성숙하는 기간과 수확 기간이 늦는데, 이는 일반적인 장마와 시기상 겹쳐 품질 저하의 원인이 되는 곰팡이, 수분에 상당히 치명적이다. 때문에 벼와 같이 이모작을 진행하는 데에 상당한 한계점이 존재한다.

3. 수매제도의 한계

정부는 국내 농산물의 가격 조정과 농산물,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수매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농산물의 일부를 정부가 직접 구매하고 비축해 활용하는 제도이다. 정부는 이렇게 수매제도를 통해 국내 농산물 자급률을 유지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쌀은 이러한 정부의 적극 개입을 통해 95% 이상의 자급률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밀은 비교적 열악한 수매 체계로 인해 수익을 보장받기 어렵다. 수매 체계가 열악한 작물을 심는 것은 농민들에게 큰 부담이다.

4. 품종 활용과 홍보의 부재

현재 국산 밀은 자금 및 저장 시설의 부족 등을 이유로 품종과 용도별 원료곡의 분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국산 밀의 대부분이 중소기업 혹은 소규모 영세 기업에서 가공&개발되고 있어 대기업에서 다루는 수입산 밀과 같이 우수한 품질관리체계나 제품 개발 능력에 한계가 있다. 또한 국산 밀 홍보의 부재로 소비자들이 수입산 밀과 국산 밀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국산 밀을 이용해야 하는 이유를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품종별 활용도가 여전히 다양하지 못해 사실상 국산 밀을 써야 하는 이유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냥.. 포기는 안 돼?

이쯤 되면 그냥 밀 생산을 포기하는 것이 낫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사실 이 부분은 밀 생산뿐 아니라 우리나라 농업 전체에 해당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생산 효율성도 없는 국내 농산물보다 차라리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이 더욱 경제적이라는 생각인데, 이는 단기적인 생각으로는 맞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방향으로는 오히려 세계 식량 공급망 불안으로 가격에 대한 변동성에 대응할 수 없어 더욱 비효율적이다.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나라인 ‘싱가포르’ 역시 농산물 가격 변동성에 못 이겨 현재는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가장 상황이 비슷한 일본 역시 식량자급률을 매년 꾸준히 높이는데 상당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농업은 타 산업과는 다르게 국가의 식량 안전성과 직결되는 산업이다. 또한, 식량 안전성은 단 한 번의 실수 혹은 실패도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의 농업은 어떠한 상황인가?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정부가 실패 없는 식량 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문제점은 알았으니 이제 해결만이 남았다. 앞으로 우리 식탁에서 우리 밀을 더욱 자주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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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음식이야기를 좋아하고 즐깁니다. 음식의 가치를 올바르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팟캐스트 "어차피, 음식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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