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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와인 지역 – 시칠리아 (2부)

에트나 DOC는 개인적으로 시칠리아에서 가장 흥미로운 와인 산지다. 이 DOC는 시칠리아의 명물인 에트나 화산 지대를 아우르며, 화산토를 베이스로 탄생하는 여러 수준 높은 와인들이 와인 애호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시칠리아 와인계의 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에트나 와인이 유명하고 품질이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물론 화산토가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고도가 높다는 점도 주요하다. 높은 고도는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며 포도에 적당한 산도를 부여하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에트나 DOC는 후에 DOCG로 승격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포도밭은 가파른 경사의 에트나 화산 비탈에 조성되어 있다. / 사진 제공: 배두환

에트나 DOC의 주요 화이트 품종에는 카리칸테 Carricante가 있고, 레드에는 네렐로 마스칼레제 Nerello Mascalese와 네렐로 카푸쵸 Cappuccio가 있다. 네렐로 마스칼레제나 카푸쵸는 시칠리아 와인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에트나 DOC에서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품종이다. 에트나 화산 지대의 많은 와이너리들이 이 두 품종을 오랜 시간 침용시켜서 진한 루비색을 지닌 강직한 레드 와인을 만든다. 잘 만들어진 와인들에서는 풍부한 제비꽃 향을 특징적으로 느낄 수 있으며, 균형 잡힌 타닌과 산도 덕분에 우아한 여운을 즐길 수 있다. 드물게 로제나 스푸만테를 만드는 데 활용하기도 한다.
카리칸테는 1800년대 말까지 섬 전역에서 재배되었으나 후에 시장 수요 변화로 인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현재 가장 대표적인 재배지가 바로 에트나 지역.  서리나 가뭄에 민감한 편이지만 생산량이 매우 풍부한 편이어서 과거 양을 우선시하던 때에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단일 품종으로 양조될 경우 옅은 노란색에 섬세한 과일 향과 드라이하며 진한 맛을 지닌 와인으로 탄생한다. 가끔 네렐로 마스칼레제와 블렌딩을 하기도 한다.
마르살라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주정 강화 와인이다. 포트 와인을 이야기할 때 늘 역사 이야기가 따라오는 것처럼 마르살라에도 흥미로운 역사가 숨어 있다. 때는 1773년. 리버풀의 수상인 존 우드하우스 John Woodhouse가 상거래를 위해 마르살라 항구에 엘리자베스 Elizabeth 호를 정박시켰다. 그는 그곳에서 지역 와인을 맛보게 됐는데, (셰리처럼) 솔레라 방식을 이용해 자연적인 산화를 거친 와인 맛에 반했고, 50파이프(파이프는 개당 412리터)를 고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는 긴 항해 동안 와인이 변질하는 것을 막고자 소량의 브랜디를 첨가했는데, 바로 이 스타일이 마르살라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가져간 와인은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그는 마르살라에 포도밭을 구입해 직접 와인을 생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후 존 우드하우스의 뒤를 이어 많은 영국인이 마르살라를 생산할 목적으로 그 지역에 정착하면서 성공적인 산업으로 발전하게 됐다. 당시 넬슨 제독은 영국 함대와 버킹엄 궁전을 위해 무려 500 파이프의 마르살라를 살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마르살라는 한때 생산자들의 외면으로 품질과 명성이 급감한 적도 있지만, 오랜 세월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1969년 DOC 등급을 획득하면서 생산법의 정확한 규정도 정해졌다. 화이트 마르살라는 그릴로 Grillo, 카타라또, 안소니카 Ansonica, 다마스끼노 Damaschino로 생산하고 있고, 레드는 페리코네 Perricone(Pignatello), 네로 다볼라, 네렐로 마스칼레제로 만들어진다.
마르살라는 포트나 셰리처럼 주정을 강화한 포티파이드 와인이다. 그리고 생산하고자 하는 마르살라의 타입에 맞추어 모스토 코또 Mosco Cotto(캐러멜 색상을 띠게 된 포도즙), 미스텔라 Mistella(늦수확한 포도에서 얻은 포도즙), 그리고 모스토 콘첸트라토 Mosto Concentrato(당도가 농축된 포도즙)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독특한 플레이버를 얻게 된다. 이때 모스토 코또는 와인의 색과 향을 형성하기 위해서, 미스텔라는 적절한 당도와 풍부하고 복합적인 3차 아로마를 형성시키고 알코올을 강화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모스토 콘첸트라토는, 예전보다는 사용 빈도가 낮지만, 당도를 높이고 부드러움을 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마르살라는 최소 숙성 기간에 따라 피네 Fine(1년), 슈페리오레 Superiore(2년), 슈페리오레 리제르바 Superiore Riserva(4년), 베르지네(솔레라스) Vergine(Soleras) 혹은 베르지네(솔레라스) 스트라베끼오 Vergine(Soleras) Stravecchio(10년)의 5개 등급으로 나뉜다. 이외에도 색상(금빛 oro, 호박빛 ambra, 루비빛 rubino)이나 당도(드라이 secco, 세미 드라이 semi-secco, 스위트 dolce)에 따라 분류되는데, 알코올 도수는 최저 18%를 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판텔레리아도 DOC도 빼놓을 수 없다. 메인 품종은 지빕보. 이 지빕보는 익숙한 이름인 모스카토의 한 종류다. 정확한 명칭은 모스카토 달레싼드리아 Moscato d’Alessandria. 지빕보라는 어원은 ‘dry grape’ 혹은 ‘마른’이라는 의미를 지닌 북아프리카어 Zibibb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아랍인들이 워낙 좋아하는 포도 품종이어서 정복하는 곳마다 가져다가 심었기 때문에 시칠리아에도 상륙하게 됐다.
지빕보는 지중해 연안이나 호주 등 기온이 높은 지역에 특히 많이 분포하고 있다. 왜냐면 이 품종이 더운 바람이나 가뭄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와인에는 대부분 스위트 와인 양조에 활용되고, 시칠리아에서는 판텔레리아섬의 파씨토를 만드는 원재료다. 진한 황갈색에 아주 강한 사향, 높은 알코올 도수, 풀바디하며 라운드한 특징을 지닌 와인을 만든다.

판텔레리아 DOC는 어떤 스타일의 와인이든 반드시 지빕보를 써야 하고, 화이트(최소 85%)를 제외한 나머지 타입(스푸만테나 주정강화와인조자도)은 100% 지빕보만 써야 한다. 지빕보는 수확 후 말리는 공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말리는 기간은 어떤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 건지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유명한 ‘Passito di Pantelleria’의 경우 잠재 알코올이 20%는 되어야 하므로 건조 기간이 더 늘어난다.

에트나 DOC의 유명 와이너리 테레 네레 / 사진 제공: 배두환

우리 부부는 시칠리아에서 플라네타 Planeta, 테레 네레 Terre Nere, 코스 Cos, 베난티 Benanti, 돈나푸가타 Donnafugata까지 총 5곳의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섬의 동쪽에서 시작해 에트나 지역을 거쳐 북으로 올라가 다시 동쪽 끝의 마르살라로 여행하는 긴 루트였다.
5곳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와이너리는 테레 네레다. 테레 네레는 이탈리아어로 ‘검은 땅(혹은 대지)’이라는 뜻으로 화산토의 특징을 그대로 표현한 셈이다. 이는 현지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와이너리를 둘러싼 토양은 밟으면 푸석하게 검은 먼지가 그대로 날리는 척박한 토양 그 자체다. 아무것도 자라지 못할 것 같은 이 화산토에서 포도나무는 훌륭히 뿌리를 내렸고 이에서 열린 검은 과실을 테레 네레는 훌륭히 와인으로 탄생시켰다. 이들 와인의 품질은 수년간 와인 애호가들의 입맛을 완벽히 매료시켰고 이제는 이 지역의 그랑 크뤼 클라세와 같은 명성을 구가하고 있다. 최근의 업적으로는 2018년 <Wine Spectator> TOP 100에서 9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 우리 부부도 와이너리 투어 후 그들의 신선한 와인을 테이스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마치 부르고뉴의 TOP 와인들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우아했고, 강직한 느낌. 이탈리아에서 방문한 140여 곳의 와이너리 중 몇 곳과 함께 가장 인상적인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테레 네레는 방문자들에게 열려 있는 편이지만, 반드시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음식과 함께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베난티 시음장 / 사진 제공: 배두환

베난티도 강력하게 추천한다. 테레 네레보다 방문객을 맞이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잘 갖춰진 편이다. 단체 관광객을 맞이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과 더불어 음식 페어링까지 가능한 시설을 갖추었다. 무엇보다 와이너리가 약간은 도심 근처에 위치해 있어서 방문하기가 용이하다. 와이너리 바로 옆에는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수영장과 그 주변을 둘러싼 포도밭이 있어서 자유롭게 사이를 오가면서 한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네렐로 마스칼레제와 카푸쵸로 만든 레드 와인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테레 네레에서도 느꼈지만 이곳 와인들의 진정한 묘미는 바로 우아함에 있다. 두 번째 이야기하지만 마치 잘 만든 피노 누아 같다는 생각. 우아했고, 조밀하며, 긴 여운이 인상적이다.

이탈리아에서도 이국적인 풍경이라 할 수 있는 코스 / 사진 제공: 배두환

코스는 한 가지 때문에 다른 곳과는 차별화되는 개성 있는 와이너리다. 바로 암포라 와인. 우리 부부는 이탈리아 북동쪽의 프리울리 Friuli 지역에서 이 암포라 와인의 거장이라 불리는 그라브너 Gravner를 방문하면서 그 신비로운 현장을 확인한 바 있다. 코스는 그라브너와 마찬가지로 땅에 촘촘히 박은 암포라에서 와인을 자연 숙성시켜 매우 흥미로운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이 분야에 있어서는 그라브너와 마찬가지로 매우 깊은 내공을 선보이는 대표 와이너리다. 와이너리 투어는 이 암포라 셀러는 물론 와이너리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있게 구성되어 있다. 와인도 역시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그라브너보다는 대중적인 맛과 향을 지녔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암포라 와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이 접근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와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오래된 현지 가옥을 리모델링한 플라네타 셀러 도어 / 사진 제공: 배두환

마지막으로 플라네타와 돈나푸가타. 두 와이너리는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대형 와이너리다. 플라네타의 경우 시칠리아에서만 무려 3곳의 셀러 도어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에트나 화산에 있는 곳을 방문했는데, 셀러 도어 규모가 생각보다 아기자기하다. 공간이 협소하고 직원이 적어서 반드시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남다른 규모를 자랑하는 돈나푸가타 / 사진 제공: 배두환

돈나푸가타는 마르살라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다. 대형 와이너리인만큼 세계 곳곳의 방문객들이 오는 만큼, 와이너리 투어는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와이너리 곳곳을 둘러보면서 이들이 자리 잡은 마르살라 지역과 생산 와인에 대해서 친절히 들어볼 수 있다. 또한 현대적인 감각이 물씬 풍기는 셀러 도어에서의 시음도 특별한 시간으로 남았다. 마르살라까지 도전이기는 하지만, 돈나푸가타에서의 시간은 돈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시칠리아는 단연 이탈리아 남부를 대표하는 와인 산지다. 다만 와인 애호가로서 시칠리아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만, 단순 렌터카 여행객으로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섬 곳곳을 이어주는 도로의 인프라가 조악하고 거칠어서 초보 운전자라면 이 때문에 매우 고생을 할 수 있다. 거기다가 도로 곳곳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를 보는 괴로운 심정과 정말 거칠게 운전하는 현지 운전자들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얻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칠리아 와인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우리 부부 같은 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을 안겨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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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쟁이부부

선후배 사이였던 와인 매거진 기자 출신 남자, 소믈리에 출신 여자. 살아오며 경험한 와인의 절반을 함께 마셨고, 앞으로 만나게될 와인들은 항상 같이 마시게 될 동반자 관계. 평소엔 식당 주인, 때론 여행작가, 이따금 와인 강사, 이곳에선 와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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