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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와인 지역 – 시칠리아 (1부)

유럽의 섬 중 시칠리아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섬이 또 있을까. 영화를 좋아하는 누군가에게는 <대부>의 배경이 되는 마피아의 섬.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고대 역사가 숨 쉬는 살아 있는 유적지. 또 우리 부부에게는 다채로운 미식과 흥미로운 토착 품종이 공존하는 와인의 섬. 이 모든 특징을 갖춘 곳이 바로 시칠리아다.

시칠리아는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에서 앞 굽에 해당하는 칼라브리아 Calabria와 맞닿아 있는 지중해 최대의 섬이다. 제주도와 비교해서 무려14배의 크기다. 시칠리아는 지중해 중앙부에 있고 북아프리카와도 가깝기 때문에 예로부터 지리적, 군사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이 때문에 수많은 세력에 의해 지배되면서 다양한 문화가 혼합된 아주 독특한 매력을 뿜어낸다.

칼라브리아에서 렌터카를 실은 배를 타고 시칠리아로 넘어 가는 중 / 사진 제공: 배두환

와인 이야기에 앞서 간단히 시칠리아의 역사를 짚고 넘어가 보자.

고대 그리스가 시작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시칠리아에 정착한 시기는 대략 기원전 8세기경. 섬의 해안 지역은 모두 그리스인들에 의해 식민지화가 되었고, 원주민들은 내륙으로 쫓겨났다. 원주민들에게 고대 그리스인들은 원망의 대상이었겠지만, 그들 덕분에 문명이 꽃피게 되었다. 기원전 6세기부터는 마그나 그라에키아의 일부가 된다. 참고로 마그나 그라에키아는 ‘위대한 그리스’라는 뜻의 그리스어 ‘메갈레 헬라스 Megale Hellas’의 라틴어로,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의 총칭이다. 경제적으로 크게 번영한 마그나 그라에키아는 본국으로부터 각종 문화적, 경제적 혜택을 받으면서 다른 곳들과 차별화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이후 시칠리아는 섬을 무대로 한 1, 2차 포에니 전쟁을 거쳐 고대 로마의 속주가 되었고, 비옥한 땅 덕분에 로마의 곡창지대로 발전하게 된다. 로마제국과 서로마 제국의 멸망 후, 동고트 왕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사실 이 시기부터 시칠리아 왕국이 성립되기 전까지는 비잔틴, 이슬람, 그리스도교 세력에 의해 수시로 점령되는 복잡한 역사를 지녔다.

11세기 후반,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세력을 넓히던 노르만족(바이킹)들이 성지순례를 위해 이탈리아 남부를 경유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시칠리아를 지배하던 이슬람 군주들을 몰아내면서 1130년 루제루 2세 Ruggeru II가 시칠리아 왕국을 성립하게 된다.

하지만 루제루 2세의 유복녀이자 상속자인 쿠스탄차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6세와 결혼하면서 시칠리아 왕국은 황제 가문인 호엔슈타우펜 가문에게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황제의 세력이 이탈리아 남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원치 않던 교황은 프랑스 앙주 백작이었던 카를루 1세를꼬드겼고, 전쟁에서 승리한 그는 시칠리아 왕국의 주인이 된다. 하지만 카를루 1세는 세력 확장을 위해 영내 주민들을 탄압하고 세금을 많이 거두었다. 불만이 극에 달했던 주민들은 1282년 그 유명한 ‘시칠리아 만종 사건’을 일으키고 카를루 1세를 이탈리아 남부로 쫓아낸다.

이후 ‘시칠리아 만종 사건’을 일으키는 데 도움을 줬던 페로 3세가 시칠리아 왕국의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아라곤 연합 왕국(스페인)이 된다. 이후사보이 공국, 부르봉 왕조를 거쳐 1816년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 왕국에 병합되고, 최종적으로는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탈리아로 흡수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이처럼 길게 역사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시칠리아를 거쳐 간 다양한 문화가 와인에도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시칠리아의 토착 품종인 안소니카 Ansonica라든지, 그레카니코 Grecanico, 지빕보 Zibbibo는 프랑스, 그리스, 북아프리카에서 넘어온 포도 품종이라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시칠리아의 포도밭. 멀리 에트나 화산이 보인다. / 사진 제공: 배두환

생소한 역사와 달리 시칠리아 와인들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와인 브랜드인 돈나푸가타Donnafugata라든지, 플라네타 Planeta는 와인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큼 익숙한 이름이다. 하지만 이 이름들은 다채로움으로는 이탈리아 남부에서 끝판왕이라고 여겨지는 시칠리아 와인의 빙산의 일각이다. DOCG는 체라수올로 디 비또리아 Cerasuolo di Vittoria 단 하나지만, 이를 받쳐주는 DOC가 무려 24개에 달한다. 물론 이런 와인 등급과 전혀 관계없이 에트나 Etna 화산 근방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 와인 업계의 주목을 받아 왔고, 섬의 서쪽 마르살라 Marsala에서 탄생하는 주정 강화 와인과, 섬 안의 섬인 판텔레리아 Pantelleria에서 생산하는 스위트 와인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다. 여기서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DOCG 한 곳과 몇 개의 DOC를 살펴본다.

유일한 DOCG인 체라수올로 비또리아는 2005년 DOC에서 DOCG로 승격한 나름 신생 DOCG다. 여기서 ‘체라수올로’는 ‘체리 같은’이라는뜻인데, 간혹 이 때문에 이 와인을 로제 와인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 DOCG는 오로지 레드 와인만 생산할 수 있다. 다만 그 색이 영롱하다 보니 이런 단어가 붙게 된 것뿐이다. 주요 품종은 네로 다볼라 Nero d’Avola와 프라빠토 Frappato.

에트나 화산에 1900년대 초에 심어진 올드 바인 / 사진 제공: 배두환

네로 다볼라는 단연코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레드 품종으로, 다른 명칭에 칼라브레제 Calabrese(칼라브리아의 라는 뜻)가 있다. 뜻만 보면 칼라브리아가 원산지일 것 같지만 네로 다볼라는 시칠리아 고유 품종이다. 가설에 의하면 중세 시대에는 칼라브리아의 와인이 시칠리아보다 유명했기 때문에 시칠리아 산 레드 와인을 칼라브리아 와인으로 판매했다는 데서 이런 별칭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네로 다볼라의 생장력은 뛰어난 편이고 토질이나 기후와 관련해서 특별히 요구되는 조건이 없을 만큼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다. 단일 품종으로 양조되면 체리 색을 띤다. 또한 드라이하며 알코올 도수가 높고 바디감도 훌륭한 양질의 와인으로 탄생한다.

프라빠토 또한 시칠리아에서만 재배되는 토착 품종이다. 정확한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1900년대 초 멘돌라 Mendola 후작의 작품에서 최초로 언급된다. 여기에서 이 품종의 원산지를 Vittoria(시칠리아 지역)로 언급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약 1600년대부터 경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만큼 프라빠토의 모범은 비또리아라고 할 수 있다. 전형적인 체리 색에 붉은 과일 향과 살짝 감도는 꽃 향, 신선하며 적당한 바디와 균형 잡힌 맛의 특징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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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쟁이부부

선후배 사이였던 와인 매거진 기자 출신 남자, 소믈리에 출신 여자. 살아오며 경험한 와인의 절반을 함께 마셨고, 앞으로 만나게될 와인들은 항상 같이 마시게 될 동반자 관계. 평소엔 식당 주인, 때론 여행작가, 이따금 와인 강사, 이곳에선 와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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