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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와인 마을 2탄 _ 몬테풀치아노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 산지로 단 3곳을 꼽으라면 토스카나, 베네토, 피에몬테를 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우리 부부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와인 생산량이나 퀄리티를 떠나서 위 세 곳은 전 세계의 와인 애호가들을 충분히 만족시켜줄 만한 와인 투어리즘 인프라를 잘 갖추었기 때문이다. 예약 후에 방문한다면 더 많은 기회가 있겠지만, 여행자들의 한정된 일정 동안 모든 와이너리를 예약 후 방문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위의 세 지역의 와이너리들은 방문객들을 위한 셀러도어(시음실)을 마련해둔 곳이 많기 때문에 몇몇 와이너리들은 예약 없이도 셀러도어에서 간단한 와인 시음을 요청할 수 있고, 운이 좋다면 무료로 시음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영어가 가능한 직원이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와이너리는 양조장 투어뿐 아니라, 아그리투리스모 Agritourismo(와이너리 숙박)라든지, 쿠킹 클래스 같은 다채로운 와이너리 투어 상품을 가지고 있는 곳들이 있어 이탈리아 와인 여행의 매력을 마음껏 경험할 수 있다.

우열을 가리기 정말 힘들지만 세 곳 중에서 여행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를 꼽으라면 토스카나를 추천할 것이다. 키안티 Chianti, 몬탈치노 Montalcino, 몬테풀치아노 Montepulciano, 슈퍼 투스칸 Super Tuscan, 산 지미냐노 San Ginignano 등 그야말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 산지들이 토스카나주 전체에 고루 펼쳐져 있고, 피렌체, 시에나, 피사 등 역사적인 구시가지를 볼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들이 있어 볼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토스카나의 미식 역시 여행의 큰 즐거움이다. 토스카나주는 돼지를 염장해 만든 햄과 소고기가 유명하다. 그래서 토스카나주 어디를 가든 돼지의 뒷다리를 염장시켜 만든 질 좋은 프로슈토를 맛볼 수 있다. 또한 토스카나의 주도인 피렌체는 이탈리아 티본 스테이크의 본고장이다. 피렌체의 티본 스테이크를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라 부르며 지역의 많은 레스토랑에서 메인 메뉴로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를 선보이고 있어 토스카나 와인과 함께 완벽한 페어링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 부부 역시 이 지역의 와인들과 함께 즐겼던 티본 스테이크의 맛을 잊지 못한다.

등심과 안심이 T 모양 뼈와 함께 붙어있는 티본 스테이크

피렌체에 간다면 꼭 티본 스테이크를 먹어보자. 토스카나 풀 바디 레드 와인과 궁합이 좋다.

토스카나는 지금까지 두 번을 여행했다. 여행을 위해 방문한 것은 두 번이지만 중장기 여행이 익숙한 우리 부부가 토스카나 지역에 머문 기간은 약 한 달의 시간이다. 한 달여의 기간 동안 방문한 40여 곳의 와이너리들은 우리 부부에게 좋은 와인 시음의 기억을 남겨주었다. 내로라하는 슈퍼 투스칸이나 키안티의 유명 와이너리들, 몬탈치노의 몇몇 TOP 와이너리들이 특히 기억에 남지만, ‘우리가 사랑한 와인 마을’이란 테마로 와인 마을 한곳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몬테풀치아노를 추천한다.

몬테풀치아노 마을은 언덕 위에 위치한다.

몬테풀치아노는 이탈리아 3대 명품 와인을 생산하는 몬탈치노 Montalcino 마을과 인접해 두 지역을 묶어 일정을 짜는 것이 일반적이다. 와인만을 이야기하자면 몬탈치노 마을의 명성이 더 높다. 그런데도 ‘왜 몬탈치노가 아닌 몬테풀치아노를 추천하는가?’에 대한 답변은 여행이라는 테마 안에서 몬테풀치아노 마을의 매력이 더 높기 때문이다. 몬탈치노의 와이너리들은 누구에게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편은 아니다. 그 때문에 와이너리의 투어 여부를 꼭 확인해서 예약 후에 방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는 몬탈치노 마을의 에노테카에서 와인을 시음하고 사는 것으로 와인에 대한 경험을 대신한다.

하지만 몬테풀치아노 마을 내에 위치한 많은 와이너리들은 무료 시음 또는 저렴한 시음비를 제안한다. 몬테풀치아노는 중심부로 올라갈수록 고도가 높아지는 요새의 형태를 띠고 있다. 마을의 바깥쪽부터 경사진 골목을 따라 빙글빙글 따라 올라가면 가장 고지대인 마을의 중심부인 광장에 도착한다. 이러한 지형의 특성에 따라 마을 안의 와이너리들은 지층에서 고층으로 올라가며, 또는 고층에서 지층으로 내려가며 양조 시설이 만들어져 있다. 지하를 파고 들어간 경이로운 규모의 지하 셀러 및 양조장을 무료로 방문할 수 있는 곳들이 많다는 점도 몬테풀치아노 마을을 사랑하게 된 이유이다. 좁은 골목골목 사이로 아기자기한 에노테카와 레스토랑이 즐비하기 때문에 와인 애호가는 물론 단순 여행자들에게도 안성맞춤인 여행지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 몬테풀치아노의 드넓은 포도밭이 펼쳐진다.

골목길을 지나 마을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관. 가슴이 뻥 뚤린다.

몬테풀치아노 마을 안쪽에 있는 광장

전설에 따르면 몬테풀치아노는 토스카나의 고대 민족인 에트루스칸이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다 과학적으로, 고고학적 발견에 의하면 이미 기원전 4~3세기부터 정착민이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셈이다. 실제로 몬테풀치아노 마을에 위치한 와이너리인 ‘데 리치 De Ricci’의 지하 셀러에는 에트루스칸들이 종교적 의식(혹은 무덤으로)을 치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을 구경할 수 있다. 몬테풀치아노는 로마 멸망 이후 랑고바르드족에 의해 종교적 도시로 성장했고 중세에는 유명 건축가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호화스럽고 멋진 건물들을 많이 지었기 때문에 눈이 즐거운 곳이다.

종교적 색채가 강한 몬테풀치아노

몬테풀치아노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꽤 오래전부터 유명했다. 시인 프란체스코 레디 Francesco Redi는 ‘토스카나의 바쿠스’라고 표현했고, 프랑스 작가 볼테르는 그의 저서 <Candide>에서 몬테풀치아노의 와인을 ‘모든 와인의 왕’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지금의 몬테풀치아노를 대표하는 와인은 단연코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 Vino Nobile di Montepulciano’다. 여기서 ‘vino’는 ‘와인’, ‘nobile’는 ‘귀족의’라는 뜻. 결국 ‘몬테풀치아노의 귀족적인 와인’이라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본래부터 이렇게 불렀던 건 아니었다.

비노 노빌레라는 수식어가 붙기 이전에 이 지역의 와인들은 ‘Vino rosso scelto di Montepulciano’라고 불렀다. 여기서 ‘scelto’는 ‘특별히 선택된’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후 이 지역의 유명 와인 생산자였던 아다모 파네티(Adamo Fanetti)가 그의 와인을 차별화하기 위해 ‘Nobile’라는 단어를 붙여 유통했고, 이탈리아 내에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몬탈치노의 전설적인 와이너리인 비온디 산티(Biondi Santi)의 당시 오너였던 탄크레디(Tancredi) 또한 그의 와인을 두고 “이 와인에 미래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후 비노 노빌레 와인의 입지가 점점 상승하고 그 이름을 딴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1966년 DOC 지정, 1980년에 DOCG로 지정되었다.

2016년 DOC 지정 50주년을 맞이한 몬테풀치아노

공식적으로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 DOCG를 달려면 최소 70%의 산지오베제를 써야 한다. 현지에서는 프루뇰로 젠틸레(Prunoglo Gentile)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카나이올로(Canaiolo), 혹은 맘몰로(Mammolo) 같은 현지 품종이나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같은 국제 품종도 블렌딩이 가능하다. 다만 현지의 많은 생산자는 심심치 않게 산지오베제 100%의 비노 노빌레를 선보이고 이를 그들의 진정성을 담은 와인으로 여긴다.

우리 부부는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를 만드는 십여 곳의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이중 몬테풀치아노 마을 내에 위치해 도보로 여행할 수 있는 와이너리를 나열해보면, 타로사(Tarosa), 칸티나 가타베키(Cantina Gattavecchi), 폴리지아노(Poliziano), 데 리치(De Ricci), 콘투치(Contucci)다. 와인 퀄리티만 놓고 본다면 개인적으로 폴리지아노를 가장 추천하고, 볼거리까지 따지면 위에서도 한 차례 언급한 데 리치를 추천한다.

와인의 품질 측면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폴리지아노 테이스팅.

와인에 대한 품질은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폴리지아노는 방문객들의 취향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데 리치의 장엄하기까지 한 지하 셀러는 불호가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볼거리를 가지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수많은 와이너리를 다니면서 다양한 버전의 지하 셀러를 보아왔는데, 개인적으로 이곳만큼 인상적인 곳은 없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에트루스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셀러였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나 봤음 직한 석회 동굴 안에 중세 시대에 만들었음 직한 작은 우물, 와인이 숙성 중인 오크통까지 한 폭에 그림처럼 담긴 이 작은 셀러에 들어서면 경건한 기분까지 들 정도다.

데 리치의 에트루스칸 시대에 만들어진 지하 와인 셀러

데 리치 와인 테이스팅. 로소 디 몬테풀치아노는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보다 한 단계 아래 등급이다.

이외에도 마을에서 차로 이동이 필요하지만, 지역을 대표할 만큼 훌륭한 품질과 볼거리를 갖춘 와이너리들로 라 브라체스카 La Braccesca, 아비뇨네지 Avignonesi, 살케토 Salcheto 등의 와이너리들을 추천한다. 세 곳의 와이너리 모두 방문객들을 위한 셀러도어와 다채로운 와인 투어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특히 아비뇨네지의 투어프로그램은 실로 다양한데, 기본적인 와인 시음 프로그램을 비롯해 양조장 투어, 포도밭 워킹 투어 및 쿠킹 클래스, 구르메-런치, 에어벌룬 투어, 헬리콥터 투어, 페라리 투어까지 방문객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와인투어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아비뇨네지의 테이스팅룸

스위트 와인인 빈 산토를 위해 트레비아노와 말바시아 포도를 말리는 건조실

빈 산토 숙성 창고. 기하학적 아름다움이 빼어나다.

몬테풀치아노 마을에서 차로 불과 15분이면 갈 수 있는 살케토는 ‘친환경’을 컨셉으로 잡은 와이너리다. 와이너리 건물 및 양조 시설 또한 자연 친화적으로 건축이 되었고, 포도밭은 유기농 및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들이 선보이는 ‘OBVIUS’는 (와인 양조에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되는) 이산화황이 1mg도 첨가되지 않는 와인이다. 몬테풀치아노의 친환경 와인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즐거운 방문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와인의 높은 품질과 와이너리의 우아함을 두루 경험하고자 한다면 라 브라체스카 역시 훌륭한 방문지이다.

유기농 및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으로 경작되는 포도밭. 포도나무 사이사이의 풀 뿌리와 포도나무의 뿌리가 경쟁하여 나무 뿌리는 더 깊게 파고들고 나무의 활력이 조절되어 열매는 더욱 잘 익는다.

앙증맞은 라벨. 해와 나무의 단순함이 유기농법임을 표현하는 듯 하다.

여행의 핵심인 몬테풀치아노 마을은 사실 한 두 시간이면 마을을 모두 걸어볼 수 있을 만큼 그 규모가 아담하다. 그러나 마을 골목골목 여행자들의 발길을 붙잡는 아기자기한 상점과 에노테카, 방문객들을 위해 문이 활짝 열려있는 와이너리들까지 돌아보려면 하루 동안 온종일 마을에 머물러도 아쉽게 느껴질 것이다. 또한 이 아름다운 중세마을에서 시간의 흐름은 현실감 없이 흘러가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시간의 여유를 갖고 한 걸음 한걸음 낭만을 즐겨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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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쟁이부부

선후배 사이였던 와인 매거진 기자 출신 남자, 소믈리에 출신 여자. 살아오며 경험한 와인의 절반을 함께 마셨고, 앞으로 만나게될 와인들은 항상 같이 마시게 될 동반자 관계. 평소엔 식당 주인, 때론 여행작가, 이따금 와인 강사, 이곳에선 와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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