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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탄생 (1부)

개인적으로 많은 시간과 돈을 와인이라는 분야에 투자해 왔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에 있어서 무지하며 그 끝은 아마 평생을 공부해도 다 깨우칠 수 없다고 확신한다. 그 이유는 단순히 생각하면 술의 하나인 ‘와인’이 이를 탄생시키기 위해 실로 많은 전문지식들이 동원되기 때문이다. 이에는 와인의 근원에 대해서 탐구하는 역사학에서부터, 포도나무 재배를 위해 요구되는 지리(지질)학이라든지, 와인을 실제적으로 양조하는 데 필요한 생화학, 미생물학도 포함된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다)

와인을 만든다는 것은 실로 많은 돈과 지식이 필요한 일이다. / 사진 출처: 배두환

그리고 (개인적인 의견이다) 다채로운 와인 지식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우선되어야 하고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역사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왜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생산국이 되었는가?
왜 보르도는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생산 지역이 되었는가?
왜 1855년 보르도 그랑 크뤼 클라쎄는 만들어졌는가?
왜 ‘샤또’라는 말이 와이너리에 붙게 되었는가?
왜 샴페인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클링 와인이 되었는가?
와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은 모두 역사 안에 있다. 와인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 동안 와인에 대해서 가졌던 매우 원초적인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을 느꼈다. 그럴 때면 나 자신이 조금이나마 와인의 본질에 대해서 가까이 다가서는 느낌을 받았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지난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와 같은 거창한 명언은 여기서는 필요 없다. 다만 와인의 역사를 공부하면 어떤 와인을 이해하는 데 그리고 그 와인을 더 맛있게 만들어주는 데 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와인 역사를 다룬 책 중 가장 읽기 쉽고, 추천하는 것은 로드 필립스 Rod Phillips의 <A short history of wine>. 매우 다행스럽게도 번역본이 있다. 제목은 <도도한 알코올 와인의 역사>다. 앞으로 연재할 와인 역사 칼럼은 이 책을 많이 참고했음을 미리 밝힌다.

와인 고고학계의 살아 있는 전설, 패트릭 에드워드 맥고번 Patrick Edward McGovern 교수 / 사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Patrick_Edward_McGovern

시작은 물론 태초의 와인에 대한 이야기다.
와인 애호가라면 많이 들어봤을 이야기. “와인의 탄생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맞다. 그 누구도 와인이 누구로부터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가장 오래된 와인에 대한 증거는 전 세계의 뛰어난 고고학자들로부터 제시되어 왔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것은 무려 BC 7000이라는 까마득한 과거, 중국의 지아후(賈湖)에서다. 허난성 지아후에서 발견된 몇몇 토기에서 쌀이나, 꿀 혹은 과일 등으로 발효시킨 음료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찾았다는 것.

지아후에서 출토된 토기에서 와인의 증거가 발견되었다. / 사진 출처: https://www.penn.museum/sites/biomoleculararchaeology/?page_id=247

재미있는 사실은 이 지아후라는 곳이 동시에 가장 오래된 맥주 생산 지역이라는 데 있다. 2000년대 중반,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분자고고학 교수인 패트릭 맥고번 Patrick McGovern이 지아후에서 발굴된 신석기 토기에서 고대인이 술(특히 맥주)을 만들어 마셨다는 고고학적 증거를 발견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교수가 <Dogfish Head>라는 양조회사에 고대인의 양조기술을 재현한 맥주를 만들어달라 요청을 했고, 실제로 이 회사에서 지아후 지역의 쌀, 꿀, 나무 열매를 활용해 만든 샤또 지아후 Chateau Jiahu라는 맥주를 출시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판매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도 마셔본 일이 없어서 매우 흥미롭다.

샤또 지아후 / 사진 출처: https://www.dogfish.com/brewery/beer/chateau-jiahu

이야기가 잠시 벗어났지만, 신석기 유물에서 와인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그때 와인을 고의적으로 만들었다고 100%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와인이라는 것이 포도가 있고 효모가 활동할 수 있는 온도만 맞춰지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예외도 있는데, 바로 이란의 자그로스 산맥에서 발굴한 신석기 유물에서 발견한 9리터 단지 6개다. 이 단지는 기원전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그 안에 포도즙뿐만 아니라 송진 찌꺼기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송진이 이 지방에서 자라는 야생 나무에서 비롯된 것으로, 와인의 방부제로 쓰였을 거라고 추측한다는 것이다. 즉 지금으로부터 약 7000년 전의 고대인들이 우연이 아닌, 고의적으로 와인을 만들었고, 이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송진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리스 일부 와인에는 송진이 들어가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대단하지 않은가!

지금도 생산되는 그리스 와인 Retsina는 적어도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와인으로, 고대에 와인에 송진을 넣어 품질을 보존했던 것을 현대에도 이어서 유지하고 있다. / 사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Retsina

개인적으로도 고대의 와인은 참으로 흥미롭다. 그때의 사람들은 ‘취한다’의 의미를 알았을까? 아마도 곡식이나 과일이 자연스럽게 발효되면서 우연히 ‘술’을 접하게 되었고,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취하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적당한 알코올이 기분을 좋게 하고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에 고대인들은 이 ‘취하는 음료’를 계속해서 마시고 싶었을 것 같다. 결국 오래 보관하기 위해 토기를 만들고 진흙으로 봉하고 심지어 그 안에 송진을 넣어 장기 보관을 노렸던 것이다.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생각은 위에서 언급한 맥고번 교수도 물론 했다. 그는 그의 논문인 <The Beginnings of Winemaking and Viticulture in the Ancient Near East and Egypt>에서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서 즙은 발효되었다. 밑바닥에 고인 즙을 마시고 감미로운 향과 기분 좋은 맛에 깜짝 놀란 사람들은 이후 일부러 포도를 으깨게 되었다”고 적었다.

근래 몇몇 와인 생산자는 거대한 토기(크베브리) 안에 화이트 품종을 껍질까지 통째로 으깨 넣어 오래 숙성시킨 와인을 만들고 있다. 고대의 방식과 그다지 다를 게 없다. / 사진 출처: 배두환

여하튼 어디가 과연 먼 미래에 ‘최초’가 될 것인가가 중요하기 보다 그 먼 과거에도 와인을 즐겼다는 점이 중요하다. 실제로 기록 가능한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일컬어지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와인은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무역 상품이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가장 유명한 고대 도시였던 바빌론의 벨라누 Belânu라는 상인이 기원전 1750년쯤에 남긴 편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 쪽지가 어떻게 발견되고 유지되어 왔는지는 필자도 전혀 상상할 수 없다)
“시파르에 배가 도착했지만 고급 와인을 보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오? 열흘 안으로 직접 갖다 주시오.” 하나 더. “와인을 가득 실은 배가 시파르에 도착했소. 나 대신 10시클어치를 사 주시오. 내일 바빌론에서 만납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고대 토기(암포라)의 모습 / 사진 출처: 배두환

기록은 참 중요한 것이다. 벨라누 본인은 자신이 남긴 이 쪽지가 수천 년이 지난 후에 중요한 고고학적 증거를 갖게 될 줄 알았을까? 여하튼 메소포타미아의 와인 무역은 이후 수천 년 동안 계속되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이전에 가장 유명하고 번성했던 고대 이집트의 와인 문화도 아주 볼만하다. 한때 가장 오래된 와인 관련 유물이라고 확신했던 스코르피온 1세의 무덤에는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토기가 발견이 되었는데, 이 단지가 모두 와인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무려 4,500리터에 달하는 와인이 스코르피온 1세와 함께 매장되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스코르피온 1세 무덤에 매장되어 있던 토기들. 당시 와인은 중요한 종교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증거다. / 사진 출처: https://www.penn.museum/sites/biomoleculararchaeology/?p=42

이집트는 100% 확실하게 고대에서는 가장 와인 문화가 발달한 곳이었다. 이는 수많은 고고학적 증거로 증명이 된다. 와인 애호가라면 한 번은 봤음직한 아래 벽화가 바로 가장 유명한 증거다. 와인 제조 과정이 처음 등장하는 이 그림은 약 기원전 3000여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한 그림 하나지만 이를 통해 고대 이집트인들이 어떻게 포도를 재배했고 와인을 만들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벽화. 포도 수확과 와인 메이킹 방법을 추측할 수 있다. / 사진 출처: https://egyptianaemporium.wordpress.com/2012/09/18/tuesday-tomb-tt52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고대의 와인 제조 방식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우선 포도를 한 알씩 손으로 따서 바구니에 담고 으깬 뒤 2~3단계에 걸쳐 즙을 낸다. 과즙은 단계에 따라 질이 나뉘었는데, 힘을 가하지 않고 포도 무게에 으깨져 나온 즙을 최고로 쳤다고 한다. 이런 부분을 보면, 포도를 한 알씩 따는 것 빼고, 지금과 놀랄 만큼 비슷하다는 것을 느낀다. 어찌 생각하면, 와인을 만드는 행위란 기본적으로 고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또한 위 그림에서 보듯이 고대 이집트에서는 포도알을 발로 밟아서 즙을 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포도를 발로 밟아 즙을 내는 곳들이 있다. 사진은 포르투갈의 도우루 밸리의 한 양조장에서 찍은 라가레스(포도를 발로 밟기 위해 콘크리트로 만든 곳) / 사진 출처: 배두환

이렇게 만든 와인의 특징은 어땠을까? 고대의 와인 맛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3세기경 아피아누스라는 이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물론 위 그림이 그려진 시대에서 수천 년 뒤이긴 하지만) 대부분이 화이트 와인으로, 와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당도였고, 숙성도로도 가치를 평가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에는 와인 보관 기술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만든 와인은 그 해 에 다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다만 (지금도 그런 인식이 없잖아 있지만) 이집트에서 와인이란 상류층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고 한다. 이는 고대 이집트의 역대 왕들의 무덤에서 발굴된 수많은 와인 단지들로 증명이 된다. 참고로 가장 유명한 무덤은 1922년 발굴된 투탕카멘의 무덤이다. 그의 무덤에도 어김 없이 와인 단지(36개)가 발견이 되었는데, 매우 흥미롭게도 그 단지 26개에는 밀봉용 진흙, 그러니까 마개에 와인의 제작 연도와 만든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샘플 하나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즉위 4년, 생명, 번영, 건강을 상징하는 아톤 신전에서 빚은 달콤한 와인. 양조인은 아페르에르쇼프”

와인 한 잔에는 생각보다 많은 역사와 비밀이 숨겨져 있다. / 사진 출처: 배두환

그야말로 최초의 와인 레이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고대 이집트에서는 와인이 사회, 문화,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무덤에 와인을 함께 매장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과거 고대 이집트인들은 부활을 믿었다. 그리고 포도나무는 겨울이 말라 비틀어지면서 죽음에 이른 것처럼 보이지만, 봄이 되면 다시 새 생명을 부여 받은 듯 되살아난다. 고대 이집트에서 와인 단지를 왕과 함께 매장한 것은 부활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이집트에서는 와인을 시신과 함께 묻고 포도나무를 심는 것을 종교적 의무로 여겼다고 한다. 람세스 3세는 아몬 라(Amon-Ra, 고대 이집트에서 숭배한 태양신)에게 바치는 글에서 자신이 일군 포도밭에 대한 자랑과 함께 신에게 바친 와인 단지가 59,588개라고 적고 있다.

(2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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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쟁이부부

선후배 사이였던 와인 매거진 기자 출신 남자, 소믈리에 출신 여자. 살아오며 경험한 와인의 절반을 함께 마셨고, 앞으로 만나게될 와인들은 항상 같이 마시게 될 동반자 관계. 평소엔 식당 주인, 때론 여행작가, 이따금 와인 강사, 이곳에선 와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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