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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맛 나는 맥주를 소개합니다.

쌀 맛 나는 맥주를 소개합니다.

염태진 2022년 12월 20일

미국의 버드와이저, 스페인의 에스트레야 담, 일본의 아사히, 라오스의 비어라오, 한국의 한맥. 이들 맥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쌀을 부재료로 사용한 맥주입니다. 대부분의 맥주는 홉, 보리(맥아), 효모, 물과 같은 기본적인 재료로 만듭니다. 하지만 일부 라거 맥주에서 보리와 함께 쌀을 부재료로 사용합니다. 쌀은 옥수수와 함께 맥주 양조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부재료입니다.

[ 많은 맥주들이 쌀을 사용해 만들어집니다.]

쌀을 재료로 사용한 맥주의 역사는 오래되었습니다. 기원전 중국 남부의 양쯔강이나 인도 북부에서 쌀을 사용해 맥주를 만들었다는 것이 고고학적인 탐사로 발견되었는데, 이 지역의 쌀 맥주는 축제에 사용하기 위해 양조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쌀을 사용한 맥주는 아메리칸 라거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일명 부가물 라거라고 부르는 맥주입니다. 19세기 중반 미국으로 넘어온 독일의 이민자들은 개척된 땅에서 본국의 전통에 따라 맥주를 만들었습니다. 이전의 미국은 에일이나 포터와 같은 맥주를 만들었는데, 독일의 이민과 함께 본격적인 라거의 시대가 열립니다. 하지만 개척된 땅에서 나는 보리는 유럽의 보리와는 달랐습니다. 개척된 땅에서 나는 여섯 줄 보리는 유럽의 두 줄 보리에 비해 풍미와 수율 모두 떨어졌습니다. 이때 보리의 주요 성분을 보충하기 위해 주변에서 찾은 대표적인 곡물이 쌀과 옥수수입니다. 쌀과 옥수수는 미국의 금지법 이후 맥주를 싼 가격에 공급하기 위해 더더욱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일본도 쌀을 사용한 맥주로 유명합니다. 일본에서 일본인이 세운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은 1876년에 설립된 삿포로 맥주입니다. 물론 1870년에 설립된 현재 기린 맥주의 전신인 스프링 밸리 양조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프링 밸리 양조장은 일본 최초로 세워진 맥주 양조장이긴 해도 일본인이 설립한 양조장은 아니었습니다. 아사히 맥주는 이보다 조금 늦은 1889년에 오사카에 설립되었습니다. 그때의 이름은 오사카맥주회사였습니다. 이렇게 1800년대 세워진 일본의 맥주 양조장들은 독일 맥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독일에서 맥아 공급이 어려워지자 쉽게 대체할 수 있는 곡물을 찾았습니다. 일본은 쌀을 발효해 사케를 만들던 전통이 있었으므로 맥주의 보조 재료로 쌀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쌀을 사용한 아사히 맥주는 드라이합니다.]

사실 쌀은 맥주의 풍미에 크게 기여하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쌀을 사용한 이유는 비용 절감 때문이었습니다. 쌀은 약간의 단맛이 있기는 하지만 풍미와 아로마를 거의 내지 않는 중성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결국 맥주에서 쌀을 사용하는 이유는 맥주에 풍미를 부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족한 맥아를 대신하여 알코올을 생산하기 위한 당분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일부 국가에서는 부가물 비율이 높은 맥주에 세제 혜택을 적용해 주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국산 쌀을 사용한 맥주는 세제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도정을 거친 쌀은 단백질 함량이 낮습니다. 보리 맥아의 단백질이 맥주의 혼탁함을 유발하기 때문에 쌀을 사용해 만든 맥주는 그보다 깨끗하고 맑습니다. 입안에서 느끼는 질감도 더 청량하고 드라이합니다. 게다가 단백질 성분의 하나인 글루텐에 거부감이 있다면 쌀로 만든 맥주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글루텐 함량이 낮은 글루텐 프리 맥주의 재료가 주로 쌀입니다.

[맥주명 : 음미하다 | 맥주 스타일 : 고제 (Gose) | 알코올도수(ABV) : 5.3% | 쓴맛 정도 (IBU) : 11]

과거에는 비용 절감을 위해 대기업 맥주에서 쌀을 사용했다면, 현대에 와서는 크래프트 브루어리 업계에서 쌀의 독특한 특성을 살려 맥주를 만들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중 주목할 만한 두 개의 맥주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토종 쌀을 사용해 만든 몽트비어의 ‘음미하다’입니다. 음미하다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한국에서 거의 사라져 버린 토종 벼를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한국에 토종 벼가 사라졌다니 그럼 우리가 매일같이 먹는 쌀은 무엇이란 말인가요? 맥주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우리나라 쌀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겠습니다.

오래전 일이라 맥주 이름이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만 국내산 쌀이 들어간 크래프트 맥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료의 표기에 쌀을 ‘Japanese Style Rice’라고 해서 어느 분이 오해하신 모양입니다. “왜 한국 맥주에 굳이 일본의 쌀을 썼을까”라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여기서 일본 스타일 쌀이란 일본에서 생산된 쌀이 아니라 쌀의 품종이 ‘자포니카’라는 뜻입니다.

[(좌) 길쭉길쭉하고 찰기가 없는 남방계 쌀, 인디카 / (우) 한국, 일본 등 북방계 쌀, 자포니카]

벼의 품종은 크게 인디카(Indica)와 자포니카(Japonica)로 나뉩니다. 인디카는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자라며 길쭉길쭉하고 찰기가 없는 남방계 쌀입니다. 자포니카는 한국, 일본 등에서 잘 자라며 둥글둥글하고 찰기가 있는 북방계 쌀입니다. 라오스의 국민 맥주인 라오비어처럼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대부분 인디카를 사용합니다. 그 외 미국과 일본, 한국은 자포니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재배하는 쌀의 품종이 왜 자포니카일까요? 자포니카는 ‘일본의’라는 뜻이 있습니다. 중국과 한국보다 벼농사를 늦게 받아들인 일본이 북방계의 쌀을 대표하는 이름이 된 것입니다. 이 이름을 붙인 사람이 일본의 학자였기 때문입니다. 1920년대 후반 일본의 학자 가토 시게모토는 북방계 쌀과 남방계 쌀을 교잡해도 잘 섞이지 않아서 이들을 고유의 품종으로 유지하자고 주장했고, 북방계에는 일본, 남방계에는 인도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학계는 이 주장을 받아들여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토종 벼는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요? 1910년 일본이 조사한 기록에 의하면 당시 1,451개의 조선 벼 품종이 지역마다 다르게 재배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유신 정권을 거치면서 한국의 토종 벼는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일본은 품종 개량으로 수확량이 좋은 인공교배 품종을 한국에 널리 퍼트렸습니다. 일본은 비합리적이고 강압적인 방법으로 한국 농민들의 합리적인 의견을 무시하면서 비료에 내성이 있고 수확량이 좋은 일본 품종을 강요했습니다. 게다가 일부 지주들은 일본의 혜택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한국의 토종 벼를 일본의 종자로 교체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자포니카와 인디카를 교배하여 만든 ‘통일벼’를 정부가 앞장서서 보급하면서 토종 벼를 되살릴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습니다. 거의 사라졌던 토종 벼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경기도 양평군을 중심으로 토종벼를 복원하고 확산시키는 노력으로 현재는 약 400여 종의 토종 벼가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우보농장에서 재배하고 음미하다에서 사용하는 토종벼 북흑조]

쌀에 대한 이야기가 더 깊어지기 전에 다시 맥주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한국 쌀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근현대 한국 쌀의 사회사>를 추천해 드립니다). 몽트비어의 음미하다는 토종 쌀 복원을 지속해서 추진하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자 하여 만든 맥주입니다. 양평군에서 토종 벼 복원에 앞장섰던 우보농장에서 재배한 토종쌀을 부재료로 사용해서 만들었습니다. 음미하다에 들어간 토종 쌀 품종은 조선시대 수도 한양에 주로 재배되어 관이나 궁궐에 올렸던 한양조와 이삭이 흑자색을 띠며 북방 지역의 강인한 풍모를 닮은 북흑조입니다.

음미하다는 고제라는 스타일의 사우어 맥주입니다. 유산균 발효를 거쳐 특유의 새콤한 맛이 납니다. 맥주의 특성상 쌀의 향을 온전히 느낄 수는 없습니다. 대신 쌀의 전분을 완전히 당화시켜 맛이 가볍고(드라이함) 깔끔합니다. 쌀의 단백질을 살려 내려고 도정 비율을 낮추어 쌀의 단백질이 부드러운 거품의 형성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북흑조의 고유한 붉은색은 맥주에 오렌지빛을 띤 황금색 외관을 입혔습니다.

음미하다는 토종 쌀이 들어간 품격에 맞게 다른 재료도 최대한 한국적인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었습니다. ‘맥주 만드는 농부’에서 재배한 국내산 유기농 홉, 이천의 과일 농장에서 발굴한 효모, 국내산 생강과 유자, 전통 명인의 소금 등 다양한 재료들을 접목했습니다.

[맥주명 : 도담도담 | 맥주 스타일 : 에일 | 알코올도수(ABV) : 5.4% | 쓴맛 정도 (IBU) : 38]

다음으로 소개할 쌀 맥주는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의 ‘도담도담’입니다. 서울 공릉동에 위치한 바네하임은 2004년에 설립하여 국내 수제맥주 초창기에 많은 기여를 한 브루어리입니다. 바네하임의 도담도담은 토종 쌀은 아니지만 ‘도담쌀’이라는 국내산 쌀을 선택했습니다. 국내산 쌀과 토종 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르게 구분합니다. 토종 쌀이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한반도에서 재배된 고유의 쌀이라면, 국내산 쌀이란 근현대에 와서 우리나라의 기술로 개량된 쌀을 말합니다. 국내산 쌀은 거의 대부분 야포니카 품종을 교배해서 만들어집니다. 도담쌀은 2013년 농촌진흥청이 국내산 기능 쌀의 활성화를 위해 개발한 품종입니다.

바네하임은 국내산 쌀의 소비 촉진을 목적으로 쌀 맥주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국내산 쌀 중에서 도담쌀을 선택한 이유는 쌀알이 잘 분쇄되어 가공하기에 용이한 연질미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도담쌀은 ‘다이어트용 쌀’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도담쌀에는 식이섬유가 일반 쌀보다 많아 살을 덜 찌게 할 뿐만 아니라 당뇨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도담도담은 건강과 기능적인 측면도 어필합니다.

쌀로 만든 맥주가 대부분 부가물 라거인 것과는 달리 도담도담은 에일 맥주입니다. 알코올 도수가 5.4%로 밝은 갈색을 띠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쌀이 맥주의 풍미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도담도담은 쌀의 풍미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낮지만 쓴맛과 단맛이 조화롭고 바디감과 질감은 가볍습니다. 김정하 바네하임의 대표의 말에 의하면, 쌀을 이용하여 발효하면 알코올의 맛이 부각되는 경향이 있어 여러 번의 실험을 거쳐 쌀의 비율을 30% 이하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쌀을 사용해 만드는 맥주의 공정은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마시는 맥주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렇게 엄청난 공로가 숨어 있습니다. 쌀 맥주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풍부한 양조 경험에서 나온 만큼 우리는 그 결과를 음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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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태진

맥주인문학서 저자. 맥주로 내장도 채우고 뇌도 채우며 '날마다 좋은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 iharu@kakao.com / 인스타 iharu04 / 브런치 https://brunch.co.kr/@i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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