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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깔 고운 로제를 사기 전에 당신이 꼭 알아야 할 것

빛깔 고운 로제를 사기 전에 당신이 꼭 알아야 할 것

조나리 2021년 6월 24일

낮 기온은 종종 30도를 넘어가지만 저녁이면 아직 선선한 바람이 부는 여름의 초입이다. 이 시기를 지나는 와인 애호가들에게 테라스에 앉아 스파클링이나 로제 한 잔을 마시는 것보다 즐거운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적당히 뜨거우면서도 아직은 가벼운 공기가 차갑게 식힌 와인의 맛을 한층 더해 줄 테니까. 그런데 이렇게 실외에서 와인을 마시거나 햇볕이 강렬해지는 시기에 와인을 고를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하나 있으니, 바로 와인 병의 색깔이다. 빛으로 인한 결함 없이, 생산자가 의도한 그대로의 아로마를 즐기고 싶다면 말이다.

태양이 와인에 미치는 영향

셀러가 없거나 작아서 공간이 충분치 않다면 와인을 어디에 보관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많은 이들이 냉장고 혹은 옷장을 선택하곤 한다. 비교적 온도가 일정하고 빛을 차단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온도 변화가 심하거나 특히 너무 더운 곳에 와인을 보관하면 신선한 과일 풍미가 줄어들고, 와인이 코르크를 타고 넘치면서 공기의 유입으로 산화가 진행될 수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빛은 와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자외선과 같은 단파장의 빛 입자가 와인과 만나면 와인 속 리보플래빈과 반응을 일으키고, 그 결과 아미노산이 황 화합물을 만들어내면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나게 된다. ‘좋지 않은 냄새’가 뭐냐고? 생산자가 결코 의도하지 않았던 풍미, 상한 양배추나 젖은 울의 냄새다. 대부분의 와인이 짙은 녹색 병에 담겨 출시되는 건 빛을 차단해 이 같은 변질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로제 와인병이 투명한 이유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럼 로제(그리고 몇몇 내추럴 와인과 스파클링 와인)는 왜 투명한 병에 담아 파는 걸까? 로제가 자외선에 특별히 강하기라도 한 걸까? 두 번째 의문에 대한 답부터 하자면, 그렇지 않다. ⟪디캔터⟫의 지난해 기사에 따르면 빛에 취약한 와인의 범주에는 섬세한 화이트 와인과 스파클링, 그리고 로제가 포함된다. 레드 와인의 타닌 성분이 빛으로 인한 손상을 막아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으니 적어도 레드보다는 로제가 빛에 취약하다고 할 수 있겠다.

로제 와인병이 투명한 이유는 마케팅에서 찾는 편이 낫다. 소비자들이 빛깔을 보고 로제 와인을 고르는 데다 테이블 위에 병을 올려두고 아름다운 핑크빛을 즐기고 싶어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산자가 투명한 병을 선택한다는 것. 와인 마켓 카운실(Wine Market Council)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와인을 마시는 838명의 응답자 중 많은 수가 분홍빛(혹은 연어빛)의 농도를 당도나 바디를 예측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드라이한 로제 와인을 선호하는 32%의 응답자들은 색이 옅은 로제를 살 가능성이 두 배 높았고 달콤한 로제를 좋아하는 66%의 응답자들은 짙은 연어색 와인을 고를 확률이 여섯 배나 높았다. 소비자들은 투명한 병에 담긴 로제가 예뻐서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편이 자기에게 맞는 와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되어서 선호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로제 와인 생산자들은 투명한 병 때문에 생길지 모르는 결함에는 관심이 없고, 일단 잘 팔리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게까지 말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로제는 수확 후 1년 이내에 소비되기 때문에 빛의 영향을 받아 결함이 생길 확률이 숙성형 화이트, 레드에 비해 적다는 것이 로제 와인 생산자들의 주장이다. 프랑스 비도방에 위치한 로제 리서치 센터(Rosé Research Centre, RRC)의 디렉터이자 양조학자인 질 마송(Gilles Masson)은 RRC가 로제 와인에 미치는 빛의 영향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으며, “거의 아무런 영향이 없거나 긴 기간의 에이징 후에만 영향이 있었다”고 밝혔다.

[CSWWC 창립자 톰 스티븐슨의 트윗. 출품된 와인 중 투명한 병을 모두 이중으로 감쌌더니 결함 와인이 94% 줄었다는 내용이다.]


정말 괜찮은 걸까?

물론 로제 생산자나 연구자들이 뭐라건 투명한 병에 의구심을 갖는 이들은 존재한다. 스파클링 와인 하우스 NYE Timber의 와인 메이커 브래드 그레이트릭스(Brad Greatrix)는 투명한 병에 담긴 와인의 결함이 부쇼네보다 20배 정도 일반적이며, 자신은 (실험 목적이 아니면) 투명한 병에 담긴 와인을 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근거로 든 것은 샴페인 앤 스파클링 와인 월드 챔피언십(Champagne and Sparkling Wine World Championship, CSWWC) 창립자인 톰 스티븐슨의 트윗과 직접 진행한 미니 실험이다. 톰 스티븐슨은 지난 2020년 6월 20일에 “CSWWC에 출품된 투명한 병을 모두 이중으로 감싼 뒤로 결함 와인이 94%나 줄어들었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린 바 있다.

그건 스파클링이라 그렇고, 위에서 언급한 질 마송의 말대로 로제에는 큰 영향이 없는 게 아닐까? 그레이트릭스의 실험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그는 ⟪더 바이어⟫에 기고한 칼럼에서, 랜덤으로 구입한 투명한 병에 담긴 로제 와인 여섯 병 중 한 병은 빛으로 인한 결함이 심각한 수준이었고 두 병은 약간 영향을 받은 상태였다고 주장한다. 결국 구입한 와인의 반이 빛에 영향을 받아 맛이 변질되었다는 이야기다.

[실외에서 천천히 로제를 즐길 생각이라면 그늘에 앉는 편이 안전하다.]

위험을 최소화 하는 법

꽤 주관적인 실험이라 어디까지 명확한 사실인지 알기 어렵지만, 전문가가 그렇다고 하니 투명한 유리병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로제를 덜컥 구매하기가 망설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좋은 계절을 로제 없이 나기는 너무 서운하다. 빛으로 인해 결함이 생긴 로제를 최대한 피할 방법은 없을까?

우선 진열 상태를 관찰한 후 구매하는 방법이 있겠다. 예쁜 핑크빛을 뽐내며 쇼윈도 앞에서 행인들을 유혹하던 로제는 웬만하면 바구니에 담지 말고, 셀러에 보관 중이거나 박스에서 아직 꺼내지 않은 보틀이 있는지 물어봐서 구매하자. 투명한 병에 담긴 와인은 세 시간만 빛에 직접 노출되어도 영향을 받는다니 가게를 나와서도 박스나 쇼핑백에 담은 채로 이동하고, 실외에서 마실 작정이라면 되도록 그늘을 찾아가는 편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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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리

애주 경력 15년차 북 에디터. 낮에는 읽고 밤에는 마십니다. / mashija@winevisi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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