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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을 마시다 2편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동상‘, 아일랜드 슬라이고의 섬 ‘이니스프리’. 이만큼이나 허무하지만,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 바로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소년 동상 Manneken Pis이다. 브뤼셀 관광수입의 엄청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명물이지만, 실제로 만난 소년 동상은 60cm의 작은 분수에 지나지 않았다. 실망하는 내 첫인상과는 달리, 동상 앞은 장사진을 치고 있다. 이 동상 앞에서 단독 인증 샷을 남기려면, 로마의 트래비 분수만큼의 운이 따라야 한다. 사실 이 ‘작디작은’ 동상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랑플라스에서 시청사 방향으로 나 있는 골목으로 100m 정도를 가라고 하는데,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사진 001] 브뤼셀의 명물인 오줌싸개 소년 동상

[사진 001] 브뤼셀의 명물인 오줌싸개 소년 동상


이 동상은 1619년 조각가 제롬 뒤케누아에 의해 제작되었고, 1745년에 영국에서 도난당한 후 돌아왔다가 2년 후에 다시 프랑스에 빼앗겼다. 동상에 얽힌 전설도 재미있다. 프랑스군이 브뤼셀에 침략해 불을 질렀는데 한 소년이 오줌으로 불을 껐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이 동상이 만들어졌으며 현지에서는 쥴리앙 Julian이란 애칭으로 불리며 사랑받고 있다. 루이 15세는 그 사과의 의미로 소년 동상의 옷을 금으로 만들어 선물했는데, 이를 계기로 소년의 옷을 선물하는 관례가 생겨 현재는 약 600벌이 왕의 집인 시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행사일이나 계절에 따라 동상에 옷이 입혀지고, 때론 물이 아닌 맥주를 분사한다고 한다. 그 날이 언제인지 알고 싶었다.

 

[사진 002] 오줌싸개 소년 동상 주변에 운집한 관광객들

[사진 002] 오줌싸개 소년 동상 주변에 운집한 관광객들


이후 오줌싸개 소년의 아류작(?)이 생겼다. 1987년 암, 에이즈 퇴치를 목적으로 오줌싸개 소녀 동상 Jeanneke Pis을 제작하였다. 소녀 동상 옆에 동상을 설명하는 안내문에 유방암 퇴치를 상징하는 분홍색 리본이 보인다. 이 동상은 오줌싸개 소년의 반대방향에 있는데, 그랑플라스에서 왕의 집 방향으로 나 있는 골목으로 가다가 레스토랑에 즐비한 부셰 거리를 지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맥주(1,024종류)를 파는 델리리움 카페 Delirium Cafe가 보인다. 오줌싸개 소녀 동상은 카페 언저리 담벼락에 보관되어 있는데, 잠겨진 빨간 철문 안에서 오줌을 싸고 있다. 사실 이 카페는 이전에 들러서 맥주를 마시고 나왔는데, 이 소녀 동상을 보진 못했다. 내가 다시 찾아갔을 때는 아무 옷도 입혀져 있지 않았지만, 크리스마스에는 산타 복장을 한 소녀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사진 003] 오줌싸개 소년보다는 인지도가 낮은(?) 오줌싸개 소녀 동상

[사진 003] 오줌싸개 소년보다는 인지도가 낮은(?) 오줌싸개 소녀 동상


뭐라 읽을까? 누군가에게 이 펍을 소개한다면, 가장 먼저 펍의 이름을 대야 할 텐데, 고민된다. 그냥 브뤼셀 오줌싸개 동상 옆에 자리한 펍이라 하면 사실 편하다. 구글 검색어 Poechenellekelder를 넣고 발음을 유추해봤다. 독일어이고, ‘포셴넬라켈다’. 내가 독일어를 몰라서 대충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일단 인테리어가 눈을 압도한다. 어찌보면 을씨년스럽다. 맥주와 관련된 소품뿐만 아니라 각종 밀랍인형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조명마저 밝지 않아서 어디선가 박쥐 정도는 출몰할 아우라였다. 간판부터 각종 집기는 세월의 물이 들어있었고, 주인장도 옛날 사람 포스가 풍겼다. 물론 벨기에 대표 펍답게 찬장에는 수많은 맥주잔이 들어차 있다. 그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면면을 보면, 가게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 않았나. 백발이 성성한 손님들이 모인 테이블과 나처럼 가게 안을 둘러보며 관광객 티 내는 손님들이 적절한 비율로 펍 안을 구성하고 있다.

 

[사진 004] 포셴넬라켈다 Poechenellekelder의 모습

[사진 004] 포셴넬라켈다 Poechenellekelder의 모습

[사진 005] 펍 안은 사람과 사람 아닌 걸로 꽉 매워져 있다.

[사진 005] 펍 안은 사람과 사람 아닌 걸로 꽉 매워져 있다.


맥주의 나라 벨기에. 브뤼셀 펍을 돌면서 맥주보다 잔에 관심이 가는 맥주가 크왁 Kwak Pauwel이었다. 크왁 맥주는 스트롱 에일로 도수가 8.4%나 되어 1병만 마셔도 뇌에 그 존재감이 박힌다. 따르는 기술이 모자랐을까, 따르자마자 거품이 활화산처럼 솟아오른다. 맥주의 색은 좀 어두운 갈색이고, 탄산도 미디엄 이상이다. 거품의 지속력은 그리 높지 않아 바로 빈 잔을 남은 맥주로 채웠다. 처음 잔을 나무 거치대에서 꺼낼 때 머뭇거린 탓에 괜히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처음에 잘 꺼내지지 않아 평균 이상의 힘을 가해 빼다가 도리어 깨 먹을 뻔했다. 맥주를 다 마시고 나가려고 하는데, 크왁 잔이 눈에 밟힌다.

[사진 006] 따르는 기술이 부족해 ‘거품반 맥주반’의 크왁 맥주.

[사진 006] 따르는 기술이 부족해 ‘거품반 맥주반’의 크왁 맥주.


벨기에는 우리나라의 경상도 만한 크기의 나라다. 이 작은 나라에서 나온 세계적인 음식은 초콜릿, 와플, 맥주, 홍합요리 등이다. 특히, 와플은 길거리 어디에서도 사 먹을 수 있는 접근성 좋은 군것질거리다. 와플은 독일어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프랑스어로는 고프르 gaufrier라고 한다. 와플의 기원은 확실하지는 않으나 중세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와플은 14세기 중반 유럽에서 시작되어 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벨기에 등 각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는데, 1600년대 미국에 소개되면서 와플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사진 007] 결정장애가 생길 수 밖에 없는 벨기에 와플들

[사진 007] 결정장애가 생길 수 밖에 없는 벨기에 와플들


맥주 몇 잔 먹고 나니, 평소에는 찾지도 않는 밀가루 음식이 간절했다. 다시 그랑플라스로 향했다. 적당한 만족감이 들 수 있는 와플 가게를 찾았다. 가격은 저렴하다. 물론 토핑을 추가할수록 비용은 늘어난다. 브뤼셀 그랑플라스 광장에 가면 골목마다 작지만 줄 서서 먹는 와플 가게들이 있다. 대부분 ‘1~1.5유로’란 와플 가격을 내세우며 호객행위를 한다. 막상 가판대 앞에 서면, 많은 종류의 와플 앞에서 결정 장애가 발생한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고… 특히 여성들이 삼삼오오 온 고객들은 각자의 취향에 맞게 고르고 서로 나눠 맛본다. 와플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크게 벨기에식 와플과 미국식 와플 두 가지로 나뉜다. 이중 벨기에 와플은 전통적으로 이스트를 넣어서 발효시킨 반죽에 달걀흰자를 넣어 굽는다. 빵 자체는 달지 않기 때문에 신선한 과일과 휘핑한 크림 등을 얹어서 먹는데, 전문 와플 요리사가 크고 깊은 석쇠를 이용하여 만든다. 처음에는 기본 빵만 주문해서 먹는 아저씨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그 특유의 벨기에식 와플의 본질을 즐기는 이유를 알고는 나도 고개가 끄덕였다. 사실 그 바삭함 때문에 와플을 먹는 거 아닌가?

[사진 008] 주위 사람들이 자주 시키는 걸로 토핑해서 사먹은 와플. 약 2유로 정도.

[사진 008] 주위 사람들이 자주 시키는 걸로 토핑해서 사먹은 와플. 약 2유로 정도.


다음 날, 나의 첫 일정은 역시 펍이다. 현재 시각은 정오, 정장을 입은 두 사내가 스탠딩 맥주를 즐기고 있다. 주말이라 그런지, 꽤 여유롭게 대화를 주고받다가 일시 정지가 생길 때마다 잔을 들고 맥주를 음미한다. 그 틈에 혼자 들어가는 나를 응시하더니, 눈이 마주치는 게 쑥스러운지 괜히 잔을 내 쪽으로 들며, 인사를 보낸다. 난 반사적으로 고맙다고 하며, 즐겁게 지내라는 상투적이고 기계적인 멘트로 대화를 마쳤다.

[사진 009] 정장입은 사내들이 펍 앞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사진 009] 정장입은 사내들이 펍 앞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무더르 람빅 MOEDER LAMBIC은 브뤼셀에 두 군데가 있다. 중심가인 그랑플라스 인근에 자리한 Fontainas 지점과 브뤼셀 조금 외곽에 위치한 Saint-Gilles 지점이다. Fontainas 지점이 탭 비어 위주라면, Saint-Gilles 지점은 바틀비어를 많이 판매하고 있다. Fontainas 지점에는 약 50개의 탭 비어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가게에 들어서자 4~6인석 테이블이 약 20개 정도 줄져 있었고, 조금 더 들어가면 왼편에 바가 금빛 번쩍 내 눈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좀 더 들어가면 약간 높은 턱이 있는 자리에 오래된 목재로 만든 투박한 테이블이 2개 있다. 가게 안에는 손님이 없어서 좀 뻘쭘했지만, 주저하지 않고 바의 한자리를 차지했다. 내가 선택한 맥주는 메뉴판 가장 위에 있는 ‘Band of Brothers(4.0%)’. Cask Modern Lambic 맥주. 가게 상호명에 람빅에 적혀 있음에, 종업원의 가이드 없이 골랐다. 확실히 칸티용 양조장 Brasserie Cantillon에서 마신 람빅 맥주보다는 부드럽고 뭔가 정제된 풍미가 느껴졌다. 색은 탁한 레몬색이다. 종업원이 잔을 돌려가며 탭에서 맥주를 따르는 게 신기했다. 거품이 약 3cm 정도 튀어나오게 따른 후 칼 같은 도구로 잔의 거품을 칼같이 제거한다. 그리고 15초 정도 후에 거품이 가라앉아 비어있는 공간에 남은 맥주를 채운다. 종종 펍을 다니다 보면, 이런 작은 볼거리들이 맥주의 맛을 배가한다. 맥주를 마시다 보니, 손님들로 자리가 채워졌다. 이곳은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듯하다.

[사진 010] Band of Brothers. 무더르 람빅 펍의 람빅 맥주

[사진 010] Band of Brothers. 무더르 람빅 펍의 람빅 맥주


식객의 허영만 화백은 ‘세상에서 맛있는 음식은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같다’고 했다. 벨기에의 맥주잔은 벨기에 맥주 종류의 숫자와 동일하다는 것을 비어숍 Beer Shop에 가면 경험할지어다. 물론 펍에 가도 마찬가지다. 벨기에의 펍은 웬만해서는 그 맥주에 해당하는 잔을 갖춰 놓는다. 펍의 주인은 손님을 대하는 제 1 원칙이라 생각하기에,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라고 한다.

 

[사진 011] 브뤼셀 시내에는 맥주 관련 숍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사진 011] 브뤼셀 시내에는 맥주 관련 숍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맥주의 도시 브뤼셀이다 보니 시내에 맥주 소매숍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가장 유명한 곳은 오줌싸개 동상 주위에 있다. 250 BEERS. 가게 간판에서 알 수 있듯이, 250가지의 벨기에 맥주를 판매한다. 들어가 보니 250개 이상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갖가지 맥주에 눈이 맞추다가, 저마다의 옷을 입고 태어난 맥주잔으로 시선이 옮아갔다. 각 맥주마다 특성에 맞게 제조된 맥주잔들이 디스플레이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전시효과가 큰 잔들에 사람들이 몰리곤 한다. 장화 모양을 닮은 맥주잔은 인기가 좋은지, 이름 모를 지문들이 묻어 있었다. 가격 또한 만만치 않았는데, 우리 돈으로 약 20,000원에 호가한다. 배보다 배꼽이 큰 잔들이 많아 그저 그림의 떡보 듯 지나쳤다. 맥주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 관광지 한복판에서 판매하는 가격이라 비싼 듯하다. 맥주는 동네 마트에서 사는 게 역시 경제적이다. 중심가에서 벗어난 지역으로 가면, 보물 같은 바틀숍도 많으니, 좀 더 발품을 팔아보자. 벨기에 대표 맥주인 포셴넬라켈다 Poechenellekelder 펍에서 마신 크왁 맥주와 잔에 대해서 더 알아보자. 크왁 맥주는 역마차 여관 주인이 여관에 잠시 들러 말이 쉬는 동안 마부들에게 만들어 내주던 맥주이다. 말안장에 달아놓은 말등자에 걸치게 하기 위한 형태를 본떠 전용 잔이 만들어졌다. 크왁은 물방울처럼 살찐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잔에 스토리 텔링이 풍성하니, 호기심이 배가한다.

[사진 012] 장화 모양의 맥주 잔.

[사진 012] 장화 모양의 맥주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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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발로 기억하는 보헤미안, 혀로 즐기는 마포술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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