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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누나 덕에 크로아티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크로아티아는 우리나라의 변방 국가였다. 지금은 여름 최고의 휴양지이자, 신혼여행지로 급부상하였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전용노선도 생겼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도 그 열기는 식지 않았다. 호스텔 매니저가 요즘 한국인들의 방문이 많은 이유를 되레 물었다. 답변으로 그 불씨가 되었던 프로그램 하나는 소개하였다. <꽃보다 누나>. 이승기가 짐꾼을 자청했던 누나들의 여행기. 다른 연유도 있겠지만, 그 프로그램 하나로 많은 한국인이 크로아티아 여행을 꿈꿨을 것이다. 내 말을 듣던 중, 호스텔 매니저는 바로 비즈니스 마인드를 전환하면서, 한국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아이템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일단 맛으로 여심을 사로잡아야 한다며, 맛집 정보를 꼼꼼하게 정리하라고 조언하였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여행 플랜은 아니지만, 상업적이고 실질적인 입장에서는 그만큼 좋은 피드백이 없다. 매니저 친구는 만족스러운지 토미스라브 피보 Tomislav pivo 맥주 한 병을 서비스로 화답하였다. 기분 좋은 상호작용으로 시작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여행,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큼 행운도 없다.

 

[사진 001] 토미스라브 피보 Tomislav pivo. 크로아티아 맥주.

[사진 001] 토미스라브 피보 Tomislav pivo. 크로아티아 맥주.

호스텔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게 로트로슈차크 탑 Kula Lotrščak이다. 고르니 그라드의 언덕에 세운 로트르슈차크 탑은 자그레브 과거의 영광을 여실히 보여준다. 고르니 그라드와 신시가지의 경계에 있으며, 탑에서 바라보는 자그레브 시내 전망이 일품이다. 이 종탑은 13세기에 세워졌는데, 로트르슈차크는 ‘도둑의 종’이라는 뜻이다. 원래 종이 있었으나 도둑을 맞은 이후 로트르슈차크라고 명명하였다. 이 탑보다 더 유명한 건 케이블카다. 탑이 서 있는 언덕과 그 아래는 파란색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노선이라는 말도 있듯이, 운행 시간이 채 1분도 안 된다. 마치 아해들이 이용하는 놀이기구가 있는, 레고 마을에 온 환상이 든다.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로 내려올 때는 그 옆에 나 있는 계단으로 서서히 산책하듯 내려왔다.

 

[사진 002] 파란 케이블카와 어퍼 타운에 오른편에 위치한 로트로슈차크 탑

[사진 002] 파란 케이블카와 어퍼 타운에 오른편에 위치한 로트로슈차크 탑

MBC <무한도전-나쁜 기억 지우개>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시민들을 만나서 상담하며 고민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 마무리는 나쁜 기억들을 종이에 적어 지우면서, 훌훌 털어버리는 세리머니를 펼쳤는데, 이 프로그램의 애초 소재가 되었던 박물관이 자그레브에 있다. 실연박물관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이 그것인데, 수많은 박물관을 다녀도 이렇게 구미가 당기는 박물관은 드물었다. 여행 계획을 정하면서, 박물관 여행은 지양하는 편이라 애초에 검색조차 하지 않는데, 이 박물관은 호스텔 매니저가 먼저 추천한 곳이기도 해서 박물관 설명을 듣고 입장권을 끊었다.

 

[사진 003] 박물관 소재 자체가 유별난 ‘실연박물관’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

[사진 003] 박물관 소재 자체가 유별난 ‘실연박물관’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

연인과는 헤어졌지만, 그(녀)의 흔적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사랑의 증표들은 어찌할꼬. 혹시 보관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분들은 이곳에 보내봅시다. 크로아티아의 한 예술가가 사비로 세운 이 박물관은 결별이나 사별, 이혼 등으로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 영화제작자와 조각가와 만난 이 크로아티아 커플은 4년간의 만남을 마감했다. 그들은 열애를 끝내고 난 후 헤어짐을 아픔으로 간직하기보다는 함께 극복해야 할 아름다운 시간으로 축하하고자 이 박물관을 기획하였다. 발상의 전환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은 지인들의 헤어진 물품들을 기증받기 착수했으며, 이 프로젝트는 유럽 인근 지역까지 퍼지게 되었다. 드디어 기증된 물품들이 정리된 후, 대중에게 공개하였다. 전 남자친구가 사준 인형이나 옷과 같은 평범(?)한 것에서부터 깨진 거울이나 선물로 받은 속옷, 한쪽에는 도끼 한 자루가 걸려 있다. 주인공 남자는 헤어진 이후 이 도끼로 여자의 가구를 하나씩 부쉈다고 한다. 물론 연인과의 이별뿐 만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 등 가슴이 짠한 사연도 있다. 관광객들은 관람하면서 추억의 반작용이 일어나 한숨, 눈물 혹은 파안대소 등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하였다. 처음 이 물건들을 마주했을 때는 주인 잃은 사물들로 측은함 마저 들었지만, 사연을 읽어 볼수록 특별한 생명력이 전달되어 관광객들에게 그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매개체가 아닌가 싶었다. 이 박물관은 현재 영국, 네덜란드 등 다른 나라에 순회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 004-005] 실연박물관에 진열된 전시품들

[사진 004] 실연박물관에 진열된 전시품들

[005] 실연박물관에 진열된 전시품들

[005] 실연박물관에 진열된 전시품들

옐라치치 광장에서 오른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자그레브에서 유명한 상징물인 자그레브 대성당 Zagreb’s Cathedrale을 볼 수 있다. 이 성당은 13~18세기에 지었으며, 1880년 지진 피해를 본 후 네오고딕 양식으로 재건하였다. 대성당을 둘러싼 견고한 성벽은 1512년부터 1521년까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침략에 대비해 쌓은 것으로, 르네상스 양식의 귀중한 건축 유산이다. 두 개의 뾰족한 첨탑이 하늘을 찌르는 이 거대한 건축물은 ‘성 스테판 성당’이라고도 불린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대성당과 이름이 똑같다. 두 개의 첨탑 중, 현재 1개의 탑은 공사 중이다. 성당 앞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황금빛 ‘성모 마리아’가 기품있게 서 있다. 햇빛을 그대로 반사해 반짝이는 마리아상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어 보는 이에게 온기를 안겨준다. 성당 내부는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지는 의자와 대리석 제단, 바로크풍의 설교단, 13세기 프레스코화 등으로 채워져 시간에 녹슬지 않은 인류의 찬란한 문화유산들이 관광객을 압도한다. ‘꽃보다 누나’에서 이승기가 무한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그 자태만 봐도 숙연해지는 건축물. 이름이 같아서 그런지, 빈 여행에서 느꼈던 그 기운이 감돈다.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서 여행 중 영험함이 몸에 투과하는 시간이 있다. 바로 자그레브는 이 성당에서가 아닌가 싶다.

 

[사진 006] 자그레브 대성당. 유럽의 건축물은 보수공사를 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진 006] 자그레브 대성당. 유럽의 건축물은 보수공사를 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그레브 대성당을 나와서 바로 길을 건너면 재래시장이 펼쳐져 있다. 반 옐라치치 동상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동상의 왼쪽 길을 보면 북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거기로 올라가도 시장이 보인다. 한국 지역 여행을 할 때, 반드시 찾는 곳이 시장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장 속 대폿집. 꼭 대폿집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 지역 시장만의 음식이나 분위기를 입과 머릿속에 훔쳐간다. 그 여행 습관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1926년부터 돌라츠 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청과물 시장은 ‘자그레브의 밥통’이라 불린다. 자그레브 시민들이 즐겨 찾는 시장으로 크로아티아 각지에서 온 신선한 채소와 과일, 지방 특산품 등을 매일 이른 아침부터 판매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정도다. 옐라치치 광장 쪽에는 꽃 시장이 펼쳐졌다. 이 시장의 상징은 저 붉은 파라솔이다. 주중과 주말 상관없이 매일 보통 아침 8시에 문을 열고 오후 2시에 장사를 접는데, 이는 상인마다 다르다. 붉은 파라솔과 과일들의 총천연색 때문인지, 원색의 조화가 느껴진다. 과일 가격은 저렴하다. 보통 1kg에 1,000원 정도 한다. 여행 중 비타민 보충하는데 제격이다. 과일의 무게를 다는 저울도 특이하면서 클래식하다.

[사진 007] 돌라츠 시장의 풍경. 청과물 판매대 가운데에 아날로그스런 저울이 있다.

[사진 007] 돌라츠 시장의 풍경. 청과물 판매대 가운데에 아날로그스런 저울이 있다.

돌라츠 광장에서 오르막길로 올라가면, 성 유라이 동상이 보인다. 성유라이의 동상 건너편에 돌의 문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중세기대에 고르니 그라드 지구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성벽의 성문 중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 돌의 문이다. 문 자체는 1731년에 발생한 화재로 타 없어졌지만, 그 속에서 성모 마리아의 성상이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어 제단에 모셨다. 이후 돌의 문에 있는 성모 마리아는 자그레브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매년 5월 31일에는 돌의 문의 성 마리아 축제가 성대하게 열린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성모마리아를 찾아와 경건하게 소원을 빈다. 유럽 여행하면서 성스러운 곳에 오면 일단 멈춤. 짧은 시간 동안 나만의 세리모니로 신성한 혼에 나를 접속한다. 평생 여행하면서 살게 해달라고.

[사진 008] 돌의 문 안에는 성모 마리아의 성상이 있다. 이곳에서 소원을 빈다.

[사진 008] 돌의 문 안에는 성모 마리아의 성상이 있다. 이곳에서 소원을 빈다.

궁극의 목마름까지 도달했다. 맥주 한잔의 시간도 최대한 미뤘다. 물도 마시지 않은 채. 크로아티아는 맥줏값이 물값과 대동소이할 정도로 저렴하다. 배고픔도 한계 임계치를 건드렸다. 크로아티아식의 안줏거리를 찾던 중, 체바프치치 Cevapcici가 오늘 맥주와의 파트너로 선정되었다. 우리나라의 떡갈비 형태다. 잘게 다진 고기를 뭉쳐서 만든지라 맛도 떡갈비와 비슷하다. 쌈장과 같은 다홍색 매콤한 소스에 뿌려 먹는다. 왠지 낯설지가 않아 입이 쉬이 적응하였다. 체바프치치 Cevapcici는 터키의 영향을 받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요리로 인접 국가인 크로아티아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형태에 따라 사진과 같이 감자튀김과도 함께 나온다. 뿌려주는 허브향이 또 다른 맛을 누리게 만든다. 맥주 안주로는 그만이다. 하지만 딱 봐도 고열량 음식이니 알아서 조절해 드시길…

 

[사진 009] 맥주 안주에 제격인 체바프치치 Cevapcici.

[사진 009] 맥주 안주에 제격인 체바프치치 Cevapcici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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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발로 기억하는 보헤미안, 혀로 즐기는 마포술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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