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와인과 각종 주류, 관련 기사를 검색하세요.

가(加)하거나 감(減)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평택의 술’

가(加)하거나 감(減)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평택의 술’

Sunjoo Kim 2020년 9월 8일

최근 넷플릭스, 티빙, 왓차, 웨이브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Over The Top)로 옛날 드라마, 시트콤, 예능 프로그램을 다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콘텐츠에 할애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필자는 과거 방영했던 <라이프 온 마스>에 뒤늦게 빠져 있다. 2018년에서 1988년으로 타임슬립을 한 주인공이 범인을 찾아내는 수사극인데,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며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매회 손에 땀을 쥐며 보던 어느 날, 뇌리에 박히는 대사가 있었다. 모든 게 다 엉켜있어서 자신이 어떤 것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주인공에게 가게 사장이 하는 조언이다.

“국밥에 잡내를 제거한다고, 약재를 넣고, 들깻가루 뿌리고.. 온갖 짓을 해도 소용없어요. 냄새가 나는 이유는 고기거든요. 신선한 고기를 쓰고 핏물을 잘만 빼면 냄새가 안 나요.”

문제의 ‘근원’을 찾으라는 내용이었지만, 이를 다르게 생각하면 ‘기본’ ‘재료’가 중요하다는 얘기겠다.

평택 오성면 숙성리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술을 빚을 때도 ‘주재료’가 중요하다. 좋은 쌀로 빚으면 좋은 술이 나오는 건 자명하다. ‘평평하고 윤택한 땅’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평택, <평택쌀>이라고 하면 쌀의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예상하셨을 것이다. 그렇다. 경기도 평택에는 좋은 쌀로 술을 빚는 양조장이 두 곳이나 있다.

호랑이 배꼽 막걸리를 빚는 <밝은세상영농조합>, 천비향을 빚는 <주식회사 좋은술>이다. 좋은 사람은 좋은 향기가 나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사람이 모를 수가 없다고 하는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좋은 술 역시 좋은 향이 나기 때문에 주변 사람이 모를 수 없다. 두 양조장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지정하는 ‘찾아가는 양조장(지역의 우수한 양조장을 선정하여 체험과 관광이 결합한 지역 명소로 육성하는 사업)’에 각각 선정되기도 했다.

호랑이배꼽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 <밝은세상영농조합>

와인처럼 향긋하고 담백한, 호랑이 배꼽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을 이름 <호랑이배꼽> 막걸리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막걸리를 ‘배꼽’이라고 했으며, 배꼽은 선천과 후천의 연결고리, 어미와 자식의 연결, 정신과 육체의 연결고리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한반도를 호랑이 모양이라고 할 때, 배꼽(중심) 위치인 평택에서 빚는 술이라고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호랑이배꼽 막걸리

서양화가 이계송 화백이 빚는 <호랑이배꼽>의 첫인상은 막걸리답지 않았다. 그의 <1988 호랑이> 작품 일부를 레이블로 사용하여 예술적 감각이 느껴지는 것도, 걸쭉하거나 텁텁하지 않은 담백한 맛도 기존 막걸리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독특하고 감각적인 걸 좋아하는 세대가 열광할 만한 술이다.

쌀가루를 누룩에 섞어 100일간 발효하고 저온 숙성을 하면 시원한 배 맛이 나는 청량감 있는 <호랑이배꼽>이 만들어진다. 3일~7일 발효되는 일반 막걸리에 비해 긴 시간과 노력으로 만들어졌기에 맛은 가벼울지언정 마냥 가볍지 않은 바디감이 있다. 해외를 나갈 때면 식사 전 아페리티프로 입맛을 돋우는 문화를 접하며 우리 전통주에도 식전주가 있다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는데, <호랑이배꼽>이라면 식전주로도 손색이 없겠다.

<좋은술>의 대표술인 천비향 약주와 생주

다섯 번을 깨운 술, 천비향

천비향을 빚는 <좋은술> 양조장을 찾아가는 길의 양옆은 푸릇푸릇한 벼로 가득했다. 논길이 끝날 때쯤 <좋은술>이라고 쓰여있는 양조장 건물이 보였다. 무작정 찾아갔음에도 이예령 대표는 덥지 않냐며 시원한 식초를 내오셨다. 술은 마시지 못하지만 손재주 좋은 그녀가 전통주를 빚게 된 계기는 가족들이 술을 좋아해서 이왕이면 좋은 재료로 빚은 술을 마시게 하자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2013년 주식회사 <좋은술>을 설립했고, 현재는 가족이 함께 술을 빚고 있다.

막걸리를 빚는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전통주는 보통 밥과 누룩을 섞어 발효시키며, 이렇게 발효된 술은 단양주(單釀酒)다. 여기에 밥을 한 번 더 섞어 덧술을 하면 이양주라고 한다. 오직 쌀과 누룩, 물만을 이용해 빚는 <천비향>은 덧술을 네 번이나 한 오양주다. 덧술을 할수록 술의 향이 깊어지고 원숙한 맛을 내지만 시간, 비용, 기술 등 현실적인 문제로 시중에서 오양주를 만나 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좋은술> 이예령 대표가 빚는 약주, 탁주는 3개월 이상 발효, 3개월의 저온 숙성을 거치며 삼양주와 오양주 기법을 사용한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천비향 약주는 2016년 청와대 만찬주로 지정되었고, ‘2018 대한민국 우리술 대축제’에서 약·청주 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대한민국 우리술대축제에서 약청주부문 대상을 수상한 천비향 약주

그녀는 평택쌀을 사용하여 술을 빚는다. 평택쌀은 은은하고 차분한 기운을 품고 있기 때문에 좋은 술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좋은 쌀, 좋은 누룩, 물로 만들어야 하고, 불필요한 것이 일절 가미되지 않아야 한다는 게 그녀가 생각하는 좋은 술이다. 인공적인 감미가 되지 않은 자연이 빚은 천비향 생주. 부드러운 목넘김과 진득하면서도 뭉근한 술맛에 자꾸만 손이 간다.

Tags:
Sunjoo Kim

철로와 맥주가 있다면 어디든지 가고 싶은 여행자, 지구상의 존재하는 술을 마시기 위해 여행하고 글을 쓰는 여행작가

  • 1

You Might also Like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