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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와인 지역 – 움브리아

우리가 사랑한 와인 지역 – 움브리아

와인쟁이부부 2019년 3월 15일

이탈리아의 중원 中原에 심장처럼 박혀 있는 움브리아 Umbria는 개인적으로 매우 추천하는 와인 산지다.

첫째로 접근성이 의외로(?) 좋은 편이다. 우선 이탈리아로 와인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방문 희망 1순위에 꼽힐만한 토스카나 Toscana에서 가깝다. 특히 몬테풀치아노 Montepulciano는 토스카나-움브리아의 경계에 지척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하루나 이틀 정도만 시간을 투자해도 충분히 움브리아가 가진 매력을 경험할 수 있다.

둘째. 움브리아가 자랑하는 여러 중세 마을. 아마도 움브리아라는 이름보다 이 주를 보석처럼 장식하고 있는 역사적인 도시들이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주도인 페루자 Perugia는 축구 선수 안정환이 AC 페루자에서 활동했을 때 지내던 곳이고, 성 프란체스코가 태어나고 잠든 아시시 Assisi라든지, 평평한 산의 꼭대기에 그림처럼 자리한 오르비에토 Orvieto는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본 일이 있을 테다. 설사 들어본 일이 없더라도 움브리아라는 이름보다는 더 친숙하지 않을까?

매력적인 아시시의 골목 / 사진 제공: 배두환

산 꼭대기에 있는 오르비에토로 가기 위해서는 푸니콜라레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 사진 제공: 배두환

오르비에토에서 내려다보는 전경.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 사진 제공: 배두환

여담이지만, 우리 부부의 여행이라는 것이 대부분 ‘와인’에 올인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유명한 관광지도 그냥 지나쳐 가기 일쑤였지만, 아시시는 예외였다. 검색 창에 ‘아시시’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쏟아지는 장엄한 사진들이 우리 부부의 마음을 요동치게 한 것. 아시시는 예수의 재림이라 일컬어졌던 성 프란체스코(San Francesco d’Assisi, 1182-1126)가 태어나고 잠든 곳으로, 덕분에 전 세계의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도시 전체가 성스러운 기운이 가득해서 기독교인이라면 더욱 인상적이겠지만, 우리 부부처럼 종교와 무관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였다. 도시 규모가 사진으로 볼 때보다 훨씬 커서 꼬박 하루를 아씨시를 거닐며 중세 마을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기억이 난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 사진 제공: 배두환

셋째.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와인’이다. 움브리아의 와인 생산량은 토스카나의 약 3분의 1 수준으로 이탈리아에서 7번째(2016년 기준)에 랭크하고 있다. 하지만 좋은 와인들이 작은 오크 배럴에서 숙성되는 것처럼, 움브리아는 작지만 내실 있는 와인으로 세계의 와인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으로는 토착 품종인 그레케토 Grechetto와 트레비아노 Trebbiano로 만들어지는 오르비에토 DOC이고, 레드 와인은 사그란티노 Sagrantino 품종으로 만든 몬테팔코 사그란티노 DOCG와 산지오베제 Sangiovese로 만들어지는 토르지아노 로쏘 리세르바 Torgiano Rosso Riserva DOCG다.

사그란티노는 움브리아가 자랑하는 대표 품종이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자. 사그란티노는 포도 재배가 수도사들에 의해 많이 이루어지던 중세 시대에 움브리아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품종이다. 기록에 따르면 중세 시대에는 이 품종의 수확 날짜를 정하는 포고령이 몬테팔코  마을에 내려질 정도였다고 한다. 종교적 색채가 강한 지역이라 그런지 품종의 어원 또한 성구실(sagrestai) 혹은 제의방(sacrestia)에서 유래가 되었다.

사그란티노의 생장력은 낮은 편이고, 보통 드라이한 와인으로 만들지만, 나무로 된 돗자리나 선반에서 말린 포도로 스위트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그란티노는 그 어떤 레드 와인보다 산화방지제인 폴리페놀의 함유량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닌 구조가 순수한 코코와의 그것과 같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특징 때문에 숙성력이 대략 30년 정도로 매우 길고 힘이 강한 편이다. 물론 누가 어떻게 만들어지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토르지아노 로쏘 리세르바 DOCG는 토르지아노 Torgiano DOC와 함께 아주 작은 지역에 국한된다. 특히 DOCG를 달려면 토르지아노 마을의 특정한 언덕에 있는 산지오베제로만 만들어야 하고, 최소 3년을 오크통, 그리고 6개월을 병에서 숙성해야 씰을 달 수 있다. 산지베오제라고 하면 응당 토스카나의 것을 최고로 여기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퀄리티의 와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최고의 퀄리티를 지닌 와인들의 숙성 잠재력은 거의 20년에 육박할 정도.

주목할만한 화이트 와인인 오르비에토 DOC는 유명한 중세 마을인 오르비에토 근방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는 그레케토와 트레비아노(현지에서는 Procanico라고 불림)의 블렌딩(최소 60%)에서 탄생한다. 이곳의 토양이 탄산석회와 화산토가 섞여 있기 때문에 마치 소아베처럼 장기 숙성의 고급 화이트 와인을 탄생시킬 인프라를 갖췄다.

보통 복숭아 뉘앙스를 지닌 크리스피한 드라이 와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장기 숙성에 적합한 고급 화이트와 스위트 와인도 물론 있다. 고급 화이트 와인들은 소아베와 마찬가지로 클라시코 존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들어지고, 스위트 와인들은 무파 노빌레 Muffa Nobile(귀부 와인) 혹은 벤뎀미아 타르디바 Vendemmia Tardiva(늦 수확)라는 이름을 달고 탄생한다. 귀한 와인들이다.

우리 부부는 움브리아를 약 4일에 걸쳐 여행했다. 움브리아 도처에 유명한 와인 생산지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움브리아 와인의 진정한 매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페루자에서 남동으로 약 50분 거리에 있는 몬테팔코 Montefalco로 가야 한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룽가로티 Lungarotti라든지, 아르날도 카프라이 Arnaldo Caprai, 안토넬리 Antonelli, 폰골리 Fongoli 같은 와인 생산자들이 이 근방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움브리아 와인들은 한국에 그렇게 많이 알려진 편이 아니라서 와인 전문가가 아니라면, 어떤 와이너리를 방문해야 할지 난감한 것이 사실이다. 만약 움브리아에서 단 한 곳의 와이너리만 방문할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 부부는 고민할 필요 없이 룽가로띠를 추천한다. 우리 부부가 움브리아에서 유일하게 와이너리 투어를 예약했던 곳으로,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룽가로티 와이너리 / 사진 제공: 배두환

1950년대 말 지오르지오 룽가로티 Giorgio Lungarotti에 의해 설립된 룽가로티는 1999년 그의 사후 아내와 그의 두 딸이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성 파워로 움직이는 와이너리를 소개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다.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와인인 루베스코 Lubersco는 이미 한국 시장에서도 오랜 시간 동안 인지도를 넓혀온 유명 와인으로, 토스카나의 주력 품종인 산지오베제가 움브리아에서 어떻게 훌륭히 정착하고 와인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증명하는 밸류 와인이라 할 수 있다.

루베스코 포도밭 / 사진 제공: 배두환

룽가로티 와이너리를 추천하는 이유가 와인의 퀄리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와이너리에서의 투어도 특별하지만, 그들이 토르지아노 Torgiano에 운영하는 와인 박물관 <MUVIT>와 근처의 와인 바인 <L’U>에서의 경험이 정말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와이너리에서 투어를 한 뒤 와인 바에서 허기를 채우고, 소화를 시킬 겸 와인 박물관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어마어마한 양의 미술품 / 사진 제공: 배두환

1974년 개관한 MUVIT에는 수천 년 와인 역사를 대변하는 수천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뉴욕 타임즈로부터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 박물관이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개인적으로는 무통 로칠드의 와인 박물관만큼 인상적이었다. 또한 룽가로티는 5성급 호텔인 <Le Tre Vaselle>도 운영 중이니, 먹고, 자고, 마시고, 보는 모든 행위를 룽가로티에서 해결할 수 있는 셈이다.

룽가로티의 와인 테이스팅 / 사진 제공: 배두환

이외에도 우리 부부는 디 필리포 Di Fillippo, 테누타 카스텔부오노 Tenuta Castelbouno, 아르날도 카프라이, 칸티나 퐁골리 Cantina Fongoli, 안토넬리 Antonelli, 파또리아 콜 산토 Fattoria Col Santo를 방문했다.

모든 와이너리들을 추천하지만, 그 중 아르날도 카프라이는 방문 2순위로 꼽을 수 있다. 룽가로티가 토르지아노의 산지오베제 품종에 조금 더 헌신하는 쪽이라면, 아르날도 카프라이는 몬테팔코의 사그란티노에 인생을 건 와이너리다. 저명한 와이메이커인 아틸로 파글리 Attilo Pagli와 밀라노 대학과의 공동 연구로 사그란티노 품종이 지닌 매우 높은 타닌을 잘 살린 장기 숙성용 드라이 와인을 최초로 출시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야말로 사그란티노라는 품종을 움브리아에서 재생시키고 세계에 이 이름을 알린 셈이다.

아르날도 카프라이 와이너리 / 사진 제공: 배두환

이 공로로 <Wine Enthusiast>에서 ‘올해의 유러피안 와이너리’ 선정되기도 했고, 마르케 폴리테크닉 대학(Marche Polytechnic University) 조사 결과 이탈리아 국민이 뽑은 ‘가장 존경하는 3대 와이너리’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매우 훌륭한 와인 테이스팅 룸을 갖추고 있고, 이곳에서 별다른 예약 없이 와인을 테이스팅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아르날도 카프라이의 와인 테이스팅 라인업 / 사진 제공: 배두환

조금 더 시리어스하게 움브리아 와인을 파고 싶다면 칸티나 퐁골리와 안토넬리도 추천한다. 서로 이웃사촌 간이라서 마음만 먹으면 두 곳을 한 번에 방문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퐁골리는 이탈리아에서 방문한 140여 개의 와이너리 중 손가락에 꼽을 만큼 기억에 남는 곳이다.

퐁골리 와이너리의 오너 할아버지. 열정이 나이를 무색케 한다. / 사진 제공: 배두환

1925년 동명의 퐁골리 가문에 의해 탄생한 이 유니크한 와이너리는 현재까지 1920년대의 모습 그대로를 경험할 수 있는 오래된 와인 셀러가 매우 인상적인 곳이다. 물론 와인도 대단히 훌륭하다. 오래전부터 유기농법과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으로 재배한 사그란티노로 세계적인 품질의 와인을 선보이고 있다. 우리 부부는 약속 없이 방문해서 운 좋게 와인을 시음할 수 있었지만, 반드시 예약하고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헛걸음하기 십상이다.

퐁골리 와이너리 와인 테이스팅 / 사진 제공: 배두환

움브리아는 작고, 와인의 지명도가 베네토나 피에몬테, 토스카나에 비해 낮기는 하지만, 그들이 자랑하는 때 묻지 않은 자연과 고유의 음식들 그리고 사그란티노에 헌신하는 유니크한 와이너리를 경험해본다면 다른 지역이 갖지 못한 그들만의 매력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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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쟁이부부

선후배 사이였던 와인 매거진 기자 출신 남자, 소믈리에 출신 여자. 살아오며 경험한 와인의 절반을 함께 마셨고, 앞으로 만나게될 와인들은 항상 같이 마시게 될 동반자 관계. 평소엔 식당 주인, 때론 여행작가, 이따금 와인 강사, 이곳에선 와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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