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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사려 하지 않아도, 런던의 마켓을 가다

굳이 사려 하지 않아도, 런던의 마켓을 가다

신동호 2017년 11월 6일

흔히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들어가 예술품을 보고 감상하는 걸 ‘관람’이라고 한다. 좋아하는 경기를 운동장에 가서 보는 것도 관람이다. 나에게 관람은 시장에서도 해당한다. 굳이 필요한 생필품이나 식재료가 없어도 여행 오면 통과의례로 방문하는 게 시장이다. 한 곳이라도 놓칠세라 미리 효율적인 동선을 계산한 후 관람하기 시작한다. 진열된 식재료로 해당 지역의 특산품을 짐작하고, 상인과 손님의 의사소통과 행동으로 시장의 문화를 엿본다. 특히, 외국의 시장에서는 국내에서 못 본 낯선 식재료를 볼 때마다 수집하듯 사진에 담는다. 동시에 우리나라의 것과 비슷하면 또 신기해서 기록해 둔다. 구매에도 이른다. 시장의 맛은 필수 코스 중에 하나. 런던에도 이런 시장이 즐비하다. 각자의 캐릭터를 가지고 소비자를 유혹한다.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곳이 아니다.

버로우 마켓 Borough Market은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다. 템스강 남쪽, 서더크 Southwark에 있으며, 역사만큼이나 규모도 큰 재래시장이다. 1276년에 문을 연 이 시장은 중세시대 때부터 과일과 채소만을 도매하던 곳이다. 지금은 그 품목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장서는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현지인들과 여행자들로 시장은 북새통이다. 직접 재배하고 기른 신선한 채소와 과일, 고기, 해산물 등을 구할 수 있어 현지인들의 식자재 센터다. 신선도가 높은 만큼 영국의 유명한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도 이 마켓에서 식자재를 구입한다. 이른 아침부터 장이 서기 때문에 주변의 베이커리와 커피숍도 동시에 장사 준비를 한다. 주로 도매시장은 주중에 열리지만, 소매시장은 목요일~토요일에만 이용할 수 있다. London Bridge 역 Borough High Street(West Side) 출구에서 도보 1분 거리에 있다. 시장에 대한 정보는 해당 홈페이지에도 잘 나와 있어서, 원하는 상품이 있으면 미리 살펴보고 가는 게 현명하다. 이 마켓 근처에 몬모스 커피 Monmouth Coffee란 카페가 있는데, 이곳의 커피가 맛있다고 하여 항상 문전성시다. 특히, 라떼의 수요가 많다. 나, 이 커피를 좋아하는 여자 사람 동생에 이끌려 아침부터 이 시장에 나왔다.

역사가 말해주듯, 방문객에게 높은 신뢰감을 얻고 있는 버로우 마켓

여행지라기보다는 사업가들의 행동반경으로 해두자. 높은 빌딩들 사이에 심어놓은 재래시장. 주로 이곳은 점심시간에 식사를 해결하려는 넥타이 부대들로 북적인다. 레든홀 마켓 Leadenhall Market은 원래 로마 시대의 포럼이 개최된 곳이고, 중세 시대에는 템스강에서 잡은 생선을 파는 어시장으로 유명했다. 런던 대화재로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는데, 1881년 재건하여 지금의 레든홀 마켓으로 완성되었다. 이곳은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주인공 해리포터가 마법의 지팡이를 쇼핑하는 장면으로 나와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또 로빈슨 크루소가 여행 전에 식료품을 구입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험회사인 로이즈 Lloyd’s의 사옥 등 근처에 많은 금융회사나 비즈니스 회사가 상주해 있어서, 주 고객층이 여기서 일하는 샐러리맨이다. 내가 갔던 주말에는 주요 고객층이 출근하지 않으니 마켓도 문을 닫는다. 마치 서울의 여의도를 연상케 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영국의 신사들이 많이 출몰하는 곳인 만큼, 자연스레 이를 보려는 여성들도 비례적으로 많다. 반대의 경우도 물론 존재한다. 상당히 특이한 캐릭터를 지닌 마켓이다.

정돈되고 장엄한 풍채로 격이 다른 마켓의 위용을 보이는 레든홀 마켓

버로우 마켓은 오랜 역사를 지녔고, 레든홀 마켓은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특징이라면 사람의 기운이 시장을 이끄는 곳이 있다. 캠던 마켓 Camden Lock Market은 템스강을 중심에 두고 다른 시장보다 조금 더 떨어져 있지만, 관광객에게 필수 코스로 알려진 만큼 힙 hip 하다. 마켓은 크게 네 곳으로 나뉜다. 리젠트 운하를 따라 걷는 재미가 있는 웨스트 야드 West Yard에는 이미 강가에 사람들이 자리를 선점하며 즐기고 있다. 마켓의 한복판인 미들 야드 Middle Yard는 인파의 시선을 끄는 공연을 주로 한다. 딩월스 Dingwalls라는 유명한 라이브 홀이 있는 곳이다. 마켓 홀 Market Hall은 플리마켓처럼 예술 관련 부스와 먹거리 장터가 혼재되어 있다. 가장 붐비는 곳이다. 여기서 배를 채우고, 이스트 야드 East Yard에서 리젠트 운하를 바라보며 해넘이를 기다리는 여유로움을 추천하고 싶다.

자유로운 기운이 물씬 풍기는 캠던 마켓

런던의 북부에 있는 이 시장은 캠던 타운 Camden Town이라는 지하철역에서 하차하여, Camden high St. 를 따라 북쪽으로 걸어오면 된다. 이 일대는 큰 건물이 즐비하진 않지만, 새로운 상권으로 급부상하는 곳이다. 마켓 리젠트 수로 Regent’s Canel로 시작되는 이 마켓은 클래식하거나 고급스러운 분위기보다는 펑키하고 저항적인 냄새가 풍긴다. 원래 이 지역은 할렘과 같은 미개발 지역이었으나, 1970년대부터 마켓이 형성되고 신개념 상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빈티지와 히피 문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으며, 유럽의 음식과 최근에는 한국의 음식 부스도 형성되어 전 세계를 아우르는 마켓으로 성장하고 있다. 같이 갔던 친구가 스페인의 빠에야를 잊지 못하고 후에 다시 찾았다. 한국인들의 입맛과 이질감이 거의 없어서 처음 선택해도 성공할 확률이 높은 스페인 음식이다. 또한, 캠던에서 제조한 수제맥주도 마시면서, 비교 분석하는 시간도 가졌다. 발품만 잘 팔면 원하는 제품이나 음식을 저렴하고 겟할 수 있는 미지의 장소, 바로 캠던 마켓이다.

리젠트 운하를 끼고 있어서 마켓을 구경하는 운치가 좋다.

스코틀랜드 맥주 브루독 BrewDog. 캠던 타운에 있는 브루독 펍은 스코틀랜드를 제외한 첫 번째 해외 지점이다. 방금 캠든 마켓을 코스에 밀어 넣은 것도 이 펍을 연이어 방문하기 위함이었다. 1층은 바 중심의 크래프트 맥주를 제공하고 있으며, 지하 1층은 편안한 카페 분위기의 인테리어로 다양한 게스트 병맥주를 마실 수 있다. 개인적으로 평소 브루독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지하 1층이 새로웠다.

어스름해진 저녁에 브루독 펍을 방문

지하 1층은 아늑한 가족적인 분위기로 조성되어 있다.

이날은 런던에 처음 온 친구에게 내가 사랑하는 브루독을 소개하는 자리라서, 일단 브루독의 기초과정인 ‘Punk IPA’ 맥주를 주문했다. 5.4%의 인디안 페일 에일로 열대 과일 향과 맛이 풍부하다. 다른 브랜드 맥주에서는 이 정도면 하드코어 초반에 속하는 맛이지만, 브루독 계열에서는 부드러운 맥주 중에 하나다. 그리고 같은 IPA지만, Black IPA 맥주인 리버타인 블랙 에일 Libertine Black Ale을 마셨다. 알코올 도수는 7.2%이며, 아이보리색의 헤드 거품과 검은빛이 나지만, 맑은 비주얼이다. 색만큼이나 맛도 진하다. 검은 몰트때문에 초콜릿 풍미가 나는데, 전체적으로 단맛은 약하다. 마지막으로 고른 맥주는 이탈리아 맥주인 매더민 Madamin. 젊은 여성이란 뜻을 가지는 이 맥주는 Oak amber ale로 오크통에서 발효한 맥주(5.7%)다. 맥주는 앰버 에일답게 호박색을 띠며, 신맛과 쓴맛이 조화롭다. 뒤로 젖혀진 의자에 내 몸이 좀 더 의지하고 있다. 음악은 점점 커지는데, 잠은 온다. 맥주의 마력에 잠시 취해본다.

브루독 맥주의 기초 과정이라 할 수 있는 펑크 IPA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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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발로 기억하는 보헤미안, 혀로 즐기는 마포술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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