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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봄과 같은 도시 – 부다페스트의 부다지역 편

서늘한 봄과 같은 도시 – 부다페스트의 부다지역 편

신동호 2016년 10월 6일

부다페스트는 도나우 강을 사이로 동쪽이 페스트 Pest, 서쪽을 부다 Buda라고 불린다. 먼저 예전 왕조가 살았고 올드 타운의 기운이 물씬 나는 부다 지역을 가보자. 먼저, 고민에 빠졌다. 부다페스트 여행기를 쓰면서, 부다페스트 앞에 들어갈 문구를 넣을지 말이다. 도시의 색이 선명하면 그에 상응하는 단어도 쏜살같이 달려오는데, 도통 이 도시는 모르겠다. 반에서 10등 정도 하는 준수하지만, 살짝 멋도 부리는 학생 같아서 체온조차 딱 떨어지지 않는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뜨겁고,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생각하면 싸늘하다. 온천을 생각하면 따뜻하지만, 버이더후냐드 성의 드라큘라 이야기를 들으면 오싹하다. 마치 서늘한 봄과 같은 도시, 굴라시를 먹으며 소주가 생각났던 도시. 결국 술땡기는 도시.

[사진 001] 헝가리 전통음식인 굴라시와 맥주 한잔. 굴라시는 우리나라의 해장국과 흡사하다.

[사진 001] 헝가리 전통음식인 굴라시와 맥주 한잔. 굴라시는 우리나라의 해장국과 흡사하다.

부다페스트 내성적인 도시였다. 하지만 안을 파고들면 위대함이 묻혀있다. 동유럽의 도시라서 상흔이 많은 것으로 예상했지만, 화려하고 당당한 풍채였다. 날이 흐려서 그런지 슬픈 아리아가 환청으로 들릴 법했다. 세르비아에서 느낀 회색하고는 다른 명도가 칠해져 있다. 일단 도시의 중심에 흐르는 도나우 강을 가로질러 서 있는 세체니 다리로 옮겼다.

[사진 002] 세체니 다리

[사진 002] 세체니 다리

세체니 다리 Szechenyi Lanchid. 우울함과 찬란함이 공존하는 다리다. 사연도 많지만, 현대에 비춰진 이 다리는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부다페스트를 여행하면서 나도 수없이 왕복했다. 아침의 세체니와 오후의 세체니, 밤의 세체니는 서로 다른 색을 지닌다. 부다페스트 여행의 교차점이기도 한 이 다리는 도시를 대표한다.

[사진 003] 세체니 다리의 야경

[사진 003] 세체니 다리의 야경

독일 청년 한스는 세체니 다리 Szechenyi Lanchid에서 도나우 강에 몸을 던진다. 두 남자가 한 여자를 가운데 두고 특별한 사랑 이야기. 자살을 유도하는 음악.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한 <글루미 선데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영혼을 파고드는 감미롭고 애잔한 선율의 <글루미 선데이>는 헝가리 천재 작곡가 레조 세레스가 1935년 실연의 아픔을 담아 작곡했다. 레코드 발매 8주 만에 우울증 환자 190여 명이 이 음악을 듣고 자살했고, 이듬해에는 이 곡을 연주하던 단원 모두가 자살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세레스도 결국 자기가 만든 이 음악을 들으며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사진 004] 영화  포스터.

[사진 004] 영화 <글루미 선데이> 포스터.

가장 아름답고 우울한 다리, 세체니. 길이 375m, 너비 16m인 이 다리는 중앙에 있는 48m의 돌 아치와 철에 의해 버티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폭파되었는데, 재건되었다. 다리의 네 귀퉁이에는 커다란 사자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주탑에 설치된 밧줄에 해당하는 구조가 자전거 체인처럼 생겼다고 해서 다리의 이름이 세체니(사슬)이다. 또한 19세기에 헝가리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세체니 백작을 일컫기도 한다. 파리, 프라하와 함께 유럽의 3대 야경을 자랑하는 부다페스트. 밤에 왕궁에서 세체니 다리를 바라보면 괜한 설렘이 느껴진다.

[사진 005] 다리 맞은편에 왕궁이 버티고 서 있다.

[사진 005] 다리 맞은편에 왕궁이 버티고 서 있다.

세체니 다리 준공식장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이 다리 초입에는 사자 동상이 한 쌍씩 모두 네 마리가 안치되어 있는데 한 아이가 갑자기 “아니, 사자 입에 혀가 없잖아!”라며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아이의 말에 너무도 자존심이 상한 조각가는 그만 그 자리에서 도나우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말았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하도 이상한 소문이 꼬리를 물어서인지 후대 역사가들이 주의 깊게 조사까지 했는데, 문제의 조각가는 도나우에 몸을 던진 적도 없으며 행복하게 여생을 마감했다는 조사결과까지 나와 있다. 다만 그런 문제가 제기되기는 했던 모양이다. 동물학자들까지 사자상을 면밀하게 조사했고 본래 사자 혀가 뒤쪽으로 치우쳐 있어 쉽게 볼 수 없다는, 조각가에게 꽤 우호적인 유권해석까지 붙었다. 이래저래 다리에 얽힌 설왕설래가 많다.

[사진 006] 세체니 다리에 있는 사자동상

[사진 006] 세체니 다리에 있는 사자동상

[사진 007] 사자의 입 속에 혀가 없어서 논란이 되었다.

[사진 007] 사자의 입 속에 혀가 없어서 논란이 되었다.

다리를 건너면 고대의 헝가리가 펼쳐져 있다. 마차시 교회. 화려한 색상의 졸너이제 모자이크 지붕으로 덮인 이 교회는 섬세한 조각이 돋보이는 고딕 양식의 외관과 화려한 색의 지붕이 조화를 이룬다. 그런데 하필 안개가 자욱한 날이라 그 화려함을 쉽사리 볼 수가 없었다. 이는 원래 13세기에 지어진 성모마리아 교회였는데, 15세기 마차시 왕의 시대를 맞이해서 개축한 후 ‘마차시 교회’라고 명명했다. 이곳에 마티아스 왕가의 문장과 그의 머리카락이 보관되어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바닥에서 천장까지 세밀하게 채색된 기둥과 벽이 시선을 사로잡는데, 건축가 슐레크가 마자르 문양을 도입해 만들어냈다. 헝가리를 대표하는 곡 <헝가리 대관 미사곡>을 초연한 곳이기도 하다.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내부에서 콘서트도 펼쳐진다. 교회 정문에는 공연 날짜와 공연 내용 등이 자세히 적힌 공연표가 있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콘서트 티켓도 정문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다. 이 교회는 어부의 요새 안에 있다.

[사진 008] 안개가 가려진 마차시 교회

[사진 008] 안개가 가려진 마차시 교회

마차시 교회 앞은 삼위일체 광장이라고 불리고, 이곳이 왕궁의 언덕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각종 상점과 레스토랑 그리고 선물 가게들이 밀집해 있다. 광장 중앙에는 18세기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삼위일체 상이 서 있다. 이것은 서유럽 각국에서도 제작되었던 페스트 기념비로, 다시는 이 도세에서 나쁜 병이 돌지 말라는 의미에서 세워진 것이다. 삼위일체 광장을 향해 있는 구시청사 모퉁이에 부다페스트의 수호신 상이 있다. 광장에 상점 가판대에는 고추가 널려 있다. 이는 고추가 아닌 헝가리 파프리카다. 헝가리 음식에는 파프리카가 많이 첨가된다. 그래서 헝가리 음식이 동양인 입맛에 잘 맞는다. 이 파프리카가 고기 요리의 짙은 맛을 완화하고 특유의 풍미를 낸다. 그런데 파프리카의 종류가 20여 종이 되어, 우리가 보기엔 생소한 모양도 보인다. 방울토마토 같은 파프리카는 아주 매운 맛이니 주의하길…

[사진 009] 삼위일체 상

[사진 009] 삼위일체 상

[사진 010] 삼위일체 광장 노점에서 파는 헝가리식 파프리카

[사진 010] 삼위일체 광장 노점에서 파는 헝가리식 파프리카

부다페스트의 매력은 무엇인가 하니,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보물 같은 건물이나 풍광이 느닷없이 나타난다. 그러면 더는 넋 놓고 여행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부다페스트 왕궁은 확 트인 전경에 랜드마크처럼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도나우 강을 앞에 두고 마치 허세를 부린 양, 자기 모습을 수줍음 없이 내보인다. 특히, 밤에는 그 야경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찬란하다. 유럽에서 손꼽을 만한 야경 중에 하나다.

[사진 011] 부다페스트 왕궁의 야경

[사진 011] 부다페스트 왕궁의 야경

왕궁 입구에는 건국의 아버지 아르파드를 낳았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새 투룰 Turul이 두 팔을 벌려 관광객을 맞이한다. 이 왕궁은 13세기 중반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몽골군의 습격 이후 궁정을 옮겼고, 헝가리가 황금시대를 이룩하던 15세기에 성을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지었다. 그러나 15세기 중반에 다시 파괴되었으며, 17세기 말에는 오스트리아군에 의해 해방되었지만, 왕궁은 다시 파괴되었다. 파괴의 역사는 계속되다가, 20세기 초 현재 왕궁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 왕궁은 부다의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 위용이 당당하다. 이 왕궁은 현재 헝가리 국립 갤러리,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 세체니 도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현장을 복구하면서 수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이 유물들은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노동운동박물관에는 헝가리 투쟁운동과 사회주의 하의 헝가리 모습을 담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국립미술관에는 11세기부터 현재까지의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올라가려면, 짧은 케이블카가 있는데, 젊은 기운으로 걸어 올라갔다. 천천히 즈려밟으며 도나우 강을 바라보면, 그 운치가 당신에게 주어진 보너스라 하겠다.

[사진 012] 왕궁 입구에서 관광객을 맞이하는 새 투룰

[사진 012] 왕궁 입구에서 관광객을 맞이하는 새 투룰

부다 왕궁 옆에 다른 계단이 있다. 이 계단으로 오르면, 한 요새의 풍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차시 교회 동쪽의 도나우 강 변에 지어진 백색 요새이다. 1896년, 건국 1000년을 기념하는 건조물로 기획되었고, 마차시 교회를 설계한 슐레크에 의해 1902년에 완성되었다. 헝가리풍의 뾰족한 지붕을 얹은 7개의 탑과 로마네스크-고딕 양식이 혼재된 회랑이 독특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도나우 강과 페슈트 거리의 풍광이 부다 왕궁에서 보는 전망만큼 아름답다. 어부의 요새라는 명칭은 옛날 이 언덕의 시장을 지켰던 어부 조합에서 유래되었다. 원래 중세 때부터 이 부근에 어부들이 많이 살았으며, 큰 어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요새 앞에 서 있는 기마상은 헝가리 최초의 국왕인 성 이슈트반으로, 대좌에는 그의 생애가 묘사되어 있다. 동양적인 색깔이 짙은 고깔모자 모양을 한 일곱 개의 탑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건국 당시의 7 부족을 상징한다. 전체가 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얀색의 화려한 성벽과 마차시 교회 까지 뻗어있는 계단이 아름답다.
[사진 013] 고깔모자를 쓴 것 같은 탑이 인상적인 어부의 요새

[사진 013] 고깔모자를 쓴 것 같은 탑이 인상적인 어부의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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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발로 기억하는 보헤미안, 혀로 즐기는 마포술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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