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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에게 ‘울릉도 호박막걸리’가 익숙한 이유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울릉도 호박막걸리’가 익숙한 이유는?

Sunjoo Kim 2020년 8월 10일

여름 휴가철이 다가왔지만, 예전과 다른 분위기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되지 않은 상황이라 여행을 자제해야 한다는 사람과 사람이 적은 지역으로 떠나서 마스크를 쓰고 안전수칙을 지키면 괜찮다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하늘길이 막힌 상황에서 조심스레 여행을 가겠다는 사람들의 선택은 오로지 국내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접촉을 피하고 조용한 곳을 찾다 보니 제주도나 울릉도와 같은, ‘섬’ 여행지가 뜨고 있다.

도동에서 저동까지 ‘행남 해안산책로’

울릉도는 강릉이나 묵호항에서 출발하면 여객선을 타고 2시간 30분이 걸린다. 태풍이 잦아 기상이 악화되면 섬에 고립될 수 있어 단단히 각오하고 가야 하는 여행지다. 울릉도나 독도 땅에 밟는 순간, 가슴 찡한 감동을 하지 않는 국민이 있을까. 고된 여정이 잊힐 만큼 아름다운 신비의 섬이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밟을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날씨 운이 따라줘야 하지만 말이다.

육지에서 울릉도까지 가는 여정은 오로지 배편뿐이고, 섬 내 물가도 비싼 편이다. 육지처럼 대중교통이 다니지도 않으니 여행경비가 꽤 든다. 그래서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젊은 세대보다는 연세 지긋한 분들이 많이 찾는 편이고, 그분들은 울릉도와 독도 여행을 통해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국내 여행지’ 버킷리스트를 지워나갔다.

나리분지, 울릉도의 유일한 평야

이번 달 부모님을 모시고 울릉도에 다녀오면서 예전과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혼자 혹은 둘 셋이서 자유여행 하는 대학생이 늘었고, 그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도 전보다 늘어났다. 많고 많은 국내 여행지 중에서 그들은 왜 울릉도를 찾았을까 되짚어보니 SNS의 힘이다. 최근 SNS에서 울릉도를 검색하면, 바다 배경으로 ‘호박막걸리’와 회를 먹는 감성(인스타 용어로 갬성샷 이라고 한다) 넘치는 사진이 떠돈다.

그 장소는 ‘행남 해안산책로’로, 도동에서 저동 촛대바위까지 기암절벽과 해식동굴, 바위를 잇는 해안 길이다. 철제 다리를 건널 때면 발아래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흐르는 기묘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혹자는 이 산책로를 남태평양 타히티섬에 견줄 정도로 대단한 절경이라고 평한다.

울릉도 핫플레이스 ‘용궁’, 행남 해안산책로에 있다.

행남 해안산책로에서 육지 쪽으로 움푹 들어간 곳에 횟집이 하나 있다. 이름도 범상치 않은 <용궁>이라는 가게다. 썰은 회나 라면을 파는 가게이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바다를 배경 삼아 <울릉도 호박막걸리>를 사진 찍고 본인의 SNS에 업로드한다. 울릉도의 자연과 호박막걸리, 이보다 더 확실하게 울릉도에 있다는 인증이 어디 있으랴. 이 피드를 본 인친(인스타그램 친구)은 ‘좋아요’를 누르고 나도 다음에 여기 가서 이 사진을 찍겠다고 생각한다.

최근 여행 트렌드 중에 <로캉스>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현지를 뜻하는 로컬과 바캉스의 조합이다. 현지에서만 누릴 수 있는 유니크한 경험. 밀레니얼 세대는 경험을 소비하는데 아낌없이 지갑을 열고, SNS의 인증샷 하나를 보고 당장 여행을 떠날 정도로 거침없고 적극적이다. 자신도 그 사진을 찍기 위해, 그 사진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울릉우리술의 ‘독도사랑 울릉도호박생막걸리’

바다배경으로 노란색 울릉도 호박막걸리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에 필자도 울릉도 핫 플레이스 ‘용궁’을 방문했다(마음만큼은 밀레니얼 세대다). 인스타그래머들이 알려준 자리에 필자도 앉았고, 울릉도 호박막걸리를 시켰다. 이 막걸리의 정식명칭은 <독도사랑 울릉도 호박 생막걸리>로 국내산 쌀과 호박이 들어간 6% 살균 탁주다. 드라이한 술을 좋아하는 필자 입맛에 달다 싶지만, 용출수 만의 순한 느낌과 깔끔한 뒷맛이 있다.

SNS에서 인기인 울릉도 핫플레이스, 용궁

울릉도 추산지역의 물은 특별하다. 이 지역은 많은 눈과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고 지하수가 되어 자연 용출한다. 울릉도 호박막걸리는 용출수에 호박을 첨가해 국내산 쌀로 빚는다. 호박 말고 오미자와 비슷하게 생긴 ‘마가목’이라는 열매로도 술을 담근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마가목으로 약주를 담그거나 막걸리를 빚는다.

울릉도에는 필자가 마신 ‘울릉 우리술’의 막걸리 외에 ‘물레방아 주가’에서도 ‘호박막걸리’와 ‘마가목 막걸리’를 빚는다. 이 막걸리는 술을 세 번 빚어 발효시킨 ‘삼양주’로 쌀과 누룩을 이용하여 밑술을 빚은 다음, 덧술을 두 번 더 빚어 발효 30일, 숙성 60일 이상 양조 과정을 거친다. 아스파탐, 설탕, 인공감미료나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쌀과 누룩만으로 빚었다는 설명에 마셔보지 못한 아쉬움으로 가득 찬다. 유통기한이 짧아 쉽게 구할 수 있는 술이 아니며, 저동에 있는 양조장에서 구매가 가능한 거로 보인다.

오미자와 비슷한 마가목 열매도 술의 재료가 된다.

노란빛 호박막걸리를 잔에 따르며 필자는 만약 ‘용궁’에서 서울에서도 구할 수 있는 장수막걸리를 판매했다면, 그래도 사람들이 인증샷을 찍고 열광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예전에 일본을 여행하면서 지역마다 특색 있는 지비루(지역맥주)를 부러워했었다. 우리나라도 지역특산물로 만든 희소성 있는 전통주가 늘었으면 하는 바랐는데, 몇 년 사이에 개성과 특색을 지닌 양조장이 늘어났다.

이제는 다른 바람이 생겼다. 밀레니얼 세대가 이런 술을 많이 발견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현재는 물론 앞으로 가장 큰 소비 주체인 밀레니얼 세대는 전통주에도 크나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울릉도 바다 배경의 횟집에서 울릉도 호박막걸리를 발견했을 때처럼 그들은 어디서나 볼 수 없는 고유성, 아이덴티티를 가진 술이어야 하고 디자인적으로 끌렸을 때 열광하고 지지한다.

내면보다 껍데기가 더 중요한 세상이라는 사실이 달갑지 않지만, 소개팅으로 처음 만났을 때 외모나 말투, 분위기에서 호감을 느끼고, 애프터 서비스를 통해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는가. 특색 있는 전통주가 밀레니얼 세대에게 호감으로 다가서 애프터서비스를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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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joo Kim

철로와 맥주가 있다면 어디든지 가고 싶은 여행자, 지구상의 존재하는 술을 마시기 위해 여행하고 글을 쓰는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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