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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 와인의 가격은 어떻게 매겨졌을까?

내가 산 와인의 가격은 어떻게 매겨졌을까?

조나리 2022년 4월 7일

세상 모든 와인 애호가들에게 주어진 평생의 숙제 중 하나는 ‘좋은 와인을 좋은 가격에 사는 것’일 테다. 특히 와인을 직접 생산하지 않거나 한국처럼 그 종류가 매우 제한적인 나라에 살고 있다면 고민은 한층 깊어진다. 운임과 세금, 유통 마진을 더하고 나면 소비자가는 현지 가의 두세 배로 불어나기 때문. 게다가 와인에는 ‘정가’라 할 만한 것이 없고, 취급점이나 구입 시기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트, 소매점, 백화점에서 사는 와인의 가격은 대체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

산지에서 한국으로 오기까지

와인 가격은 와인의 퀄리티와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혹자는 각자 입맛에 맞는 와인이 좋은 와인이며, 고급 와인의 높은 가격은 이름값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좋은 와인을 만드는 데는 당연히 높은 비용이 들고, 그러한 비용은 최종 소비자가에도 반영된다. 해가 잘 드는 경사면에 비옥하며 배수가 잘되는 흙을 갖추고 안정적인 강우량까지 담보되는 동네의 밭, 그리고 높은 등급을 받은 밭은 그렇지 않은 동네의 밭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단위 면적 당 수확량이 적으면 이 역시 비용을 높일 것이고, 기계 수확보다는 수작업에 돈이 더 많이 든다.

수확 이후의 과정에도 와인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많다. 숙성을 새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한다면 뉴트럴 오크나 스테인리스 통에 숙성하는 와인에 비해 비용이 커진다. 새 프렌치 오크 배럴은 하나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기 때문이다. 셀러에 섬세한 온도 조절 시스템을 갖추는 데도, 병을 만들고 레이블을 디자인하는 데도 돈이 든다. 배송비도 문제다. 비싸고 무거운 병을 사용했다면 그만큼 배송비도 높아지고(물론 병의 무게와 와인의 퀄리티는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낮은 질을 커버하고 쉽게 눈에 띄기 위해 과시적인 병을 사용하는 와이너리도 많으니, 병으로 와인을 판단하지 말 것!), 온도 조절 설비를 갖춘 운송 수단으로 와인을 옮기는 데도 추가 비용이 든다.

‘고급 와인의 높은 가격은 이름값’이라는 주장에도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슈퍼카, 몇천만 원짜리 명품 백의 판매금이 모두 재룟값과 인건비, 마케팅 및 유통비로 쓰이는 게 아니듯 로마네 콩티나 샤토 마고 한 병을 만들고 유통하는 데 수백만 원이 전부 들지는 않으니까. 유명 산지의 유명 생산자가 잘 알려진 품종으로 만든 와인, 이름 높은 평론가가 좋은 점수를 준 와인일수록 높은 가격이 매겨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종량세로 전환하면 소비자에게 이득일까?

해외 가보다 국내가가 높은 이유에는 당연히 세금도 포함된다. 현재 한국은 대부분의 주요 와인 생산국과 FTA 협정을 체결해 더 이상 관세는 붙지 않지만, 운임과 보험료를 포함한 수입 원가에 주세, 교육세 및 부가가치세가 붙는다. 주세는 수입 원가의 30%, 교육세는 주세의 10%, 부가가치세는 수입원가+주세+교육세의 10%다. 수입 원가가 10만 원인 와인이라면 주세 3만 원, 교육세 3천 원, 부가세 1만 3천3백 원이 붙어 14만 6천300원이 되는 것이다.

수입 원가와 관계없이 양에 따라 세금을 붙이는 종량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금처럼 종가세를 매기면 수입 원가가 높을수록 세금도 불어나므로 다양한 고급 와인을 즐기기가 어렵다는 것. 실제로 종량세를 채택한 이웃 나라 일본에 비하면 한국의 와인 가격은 높은 편이다. 다만 종량세로 전환할 경우 대중적인 저가 와인에 붙는 세금은 오히려 지금보다 많아질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지나친 거품? 유통 마진의 세계

한국의 와인 가격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가장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지점은 다름 아닌 유통 마진이다. 수입 와인은 대개 수입사와 도매상, 소매상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되는데 수입사가 수입 원가에 붙이는 수입 마진, 도매상과 소매상이 각각 붙이는 마진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유통 채널마다, 또 주문량과 계약에 따라 마진율이 달라지기 때문에 마진율이 얼마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통상 수입할 때 20~30%, 도매에서 15~20%, 소매에서 25~30% 정도의 마진이 붙는다고 추산한다. 다른 소비재도 유통 과정마다 마진이 붙고 백화점 수수료율 역시 30%인 것을 생각하면 와인의 유통 마진이 여타 물품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당연한 얘기지만 유통 단계를 줄이면 소비자는 더 좋은 가격에 와인을 구입할 수 있다. 전국에 물류 시스템을 보유한 대형마트가 중간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와인을 유통하면 그만큼 최종 소비자 가격도 인하된다. 이들의 자본력은 와인을 대량, 정기 구매하는 데도 유리하므로, 보다 좋은 가격에 와인을 납품받는 것도 가능하다. 반면 같은 계열사일지라도 대형마트가 아니라 백화점이라면 재고를 보관할 공간이 비교적 작은 데다 각종 서비스 비용이 추가되어 가격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는 와인의 온라인 구매(정확히 말하면 온라인 결제-오프라인 픽업)가 활성화되어 그나마 ‘적정 가격’을 판단하기가 용이해졌다. 이전에는 발품을 팔아 마트와 할인점, 와인 전문숍을 돌아야 가격 비교가 가능했다면 이제는 특정 와인이 대략 어느 정도의 가격에 팔리고 있는지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 ‘와인서처’ 등 해외 판매가 검색이 가능한 사이트에서 평균가를 보고, 그와 비교해 적정 가격을 판단하는 소비자들도 많다. 보통 하나의 와인을 하나의 수입사에서만 수입하던 과거와 달리 병행 수입하는 업체들이 늘어난 것도 가격 경쟁을 일으켜 소비자가 인하에 영향을 주었다.

최근에는 수입사가 와인 소매점의 판매가 설정에 개입했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대형마트가 동일 와인을 자신들보다 싼 가격에 판매하는 소매점을 발견하면 수입사에 납품가 인하 압력을 넣고, 수입사는 다시 특정 가격 이하로 와인을 팔지 못하도록 소매점을 압박한다는 것. 이 때문에 “이 가격에 이 와인을 샀다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하지 말아달라.”라고 부탁하는 소매점 운영자들도 적지 않다는 소식이다.

조나리

애주 경력 15년차 북 에디터. 낮에는 읽고 밤에는 마십니다. / mashija@winevisi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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