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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나슈와 가르나차는 같은 맛일까?

그르나슈와 가르나차는 같은 맛일까?

조나리 2021년 1월 26일

이름에는 그 주인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담겨 있을까? 우리에게 ‘왕가위’란 이름으로 익숙한 영화감독은 중국어로는 ‘왕자웨이’, 광둥어로는 ‘왕카웨이’라 불린다. 왕가위든 왕자웨이든 혹은 왕카웨이든 그가 <화양연화>의 감독이며 홍콩 영화의 대부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지만, 사람에서 포도 품종과 그 이름으로 시선을 옮기면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조금 늘어난다. 분명 같은 품종임에도 나고 자란 곳, 그리고 양조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와인으로 탄생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닮은 듯 다른 그르나슈(Grenache)와 가르나차(Garnacha), 시라(Syrah)와 쉬라즈(Shiraz), 그리고 피노 그리(Pinot Gris)와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 와인의 개성에 대해 알아보자.

사진 출처: Flickr @Josh McFadden

1. 그르나슈와 가르나차
카베르네 소비뇽에게 메를로가 있다면 시라에겐 그르나슈가 있다. 시라가 가진 힘찬 산미와 타닌의 밸런스를 잡아주고 붉은 과실의 아로마와 바디감을 더해주는 그르나슈는 특히 남부 론 와인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품종이다. 이런 그르나슈는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에 당도하면 ‘가르나차(Garnacha)’로 변신한다. 스페인은 그르나슈/가르나차의 고향이며 템프라니요 다음으로 많이 재배되는 품종이라고 하니, 스페인에서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르나슈와 가르나차는 어떻게 다를까? 프랑스에서나 스페인에서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높은 당도를 형성하는 품종이지만 상대적으로 약간 서늘한 프랑스 출신의 그르나슈가 덜 달고, 그래서 발효 후의 알코올 함량도 가르나차에 비하면 낮은 경우가 많다. 오레가노나 라벤더 등의 허브 아로마나 담배를 비롯한 스모키한 아로마도 조금 더 잘 느껴진다.

그르나슈의 힘이 잘 드러나는 프랑스 산지가 남부 론, 그중에서도 샤토네프 뒤 파프(Chateauneuf-du-Pape)라면, 스페인의 가르나차는 프리오라트(Priorat)에서 그 기세가 등등하다. 프리오라트는 리오하와 함께 스페인의 최고 와인 등급인 DOCa(Denominación de Origen Calificada)를 받은 지역으로, 수령 높은 가르나차와 카리녜냐(Cariñena – 프랑스의 Carignan) 품종이 뜨겁고 건조한 기후에서 극도로 낮게 제한하는 수확량을 통해 고품질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프리오라트의 가르나차 베이스 와인들은 자두와 체리, 카시스의 풍미에 슬레이트를 다량 함유한 테루아에서 오는 미네랄리티가 더해진 것이 특징이다.

사진 출처: Pixabay @Berho

2. 시라와 쉬라즈
프랑스와 스페인은 국경을 접한 이웃나라지만 프랑스와 호주는 각각 북반구와 남반구에 위치할 뿐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도 하루가 꼬박 걸려야 오갈 만큼 멀다. 프랑스 시라와 호주 쉬라즈의 간격도 그르나슈와 가르나차에 비하면 꽤 넓어 보인다. 두 포도를 각기 다른 품종으로 인식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정도다.

‘시라’는 어쩌다 ‘쉬라즈’가 되었을까? 이란에 쉬라즈라는 도시가 있으니 거기서 이름을 따온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지만, 호주의 초기 기록에서는 ‘쉬라즈’가 아닌 ‘시라스(Scyras)’라 표기하고 있으므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야기다. 호주의 쉬라즈는 한동안 ‘에르미타주(Hermitage)’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호주에서 웬 에르미타주냐고? ‘호주 와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임스 버스비가 1832년 꺾꽂이용 포도나무 가지들을 호주로 가지고 올 때, 당시의 주된 시라 생산지였던 에르미타주의 이름으로 분류해 오면서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고품질의 프리미엄 쉬라즈 와인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에르미타주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는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펜폴즈 그랑주(Penfolds Grange) 역시 프랑스가 법적으로 에르미타주라는 명칭의 사용을 제한하기 전까지 펜폴즈 그랑주 에르미타주(Penfolds Grange Hermitage)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사진 출처: Unsplash @brett_jordan

시라냐, 쉬라즈냐 그 명칭에 따라 와인의 맛이 갈리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름이 다를 뿐 유전적으로 동일한 품종이니까. 프랑스산 시라와 호주산 쉬라즈를 이질적으로 만드는 것은 상기했듯 포도가 자라는 기후와 양조 방식이다. 비교적 서늘한 기후에서 자라는 프랑스 시라가 드라이하고 섬세하며 프레시하다면, 호주의 쉬라즈는 한층 볼드하고 리치하다. 일반적으로 블루베리나 블랙커런트, 체리 같은 과일의 풍미가 첫인상을 압도하며, 초콜릿 같은 달콤 쌉싸름한 아로마가 뒤따라 온다. 최근에는 카베르네 소비뇽과 쉬라즈를 블렌딩해 파워풀한 와인을 생산하는 호주의 와이너리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럼 프랑스에서는 언제나 시라, 호주에서는 언제나 쉬라즈인 걸까? 꼭 그렇지도 않다. 프랑스 남부 랑그독 루시용의 와이너리 ‘와일드 피그(Wild Pig)’와 ‘생 마르크(St Marc)’는 잠시나마 레이블에 시라 대신 쉬라즈라 표기한 역사가 있다. 호주의 생산자들 중에도 보다 서늘한 기후에서, 좀 더 섬세한 스타일로 양조한 와인에 시라라는 품종 표기를 달아 출시하는 이들이 있다니, 이제 두 이름은 지역뿐 아니라 스타일에 대한 정보도 담게 된 셈이다.

사진 출처: My Recipes

3. 피노 그리와 피노 그리지오
청포도 치고 붉은 포도알에 엷게 드리운 회색조, 피노 누아의 사촌이자 프랑스와 이탈리아(피노 그리지오 – Pinot Grigio), 독일(그라우어 부르군더 – Grauer Burgunder) 등지에서 널리 재배되는 피노 그리(Pinot Gris)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개성을 보여주는 품종이다. 기본적으로 산도가 낮고 당도가 높으며, 배나 사과, 복숭아, 열대 과일 등의 아로마가 특징적이다.

프랑스의 피노 그리 산지 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알자스로, 일부러 늦게 수확한 포도로 벌꿀 아로마가 느껴지는 스위트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알자스의 피노 그리는 한동안 ‘토케이 달자스(Tokay d’Alsace)’라는 이름으로 불려왔으나 토카이(Tokaji) 와인으로 잘 알려진 헝가리에서 이의를 제기했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1984년 이 이름의 독점적 사용권을 헝가리에게 부여했다. 유예 기간을 거쳐 1994년부터 토케이 달자스라는 이름의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이후로는 ‘토케이 피노 그리’라 불리다가 2007년에 이르러서는 ‘토케이’를 완전히 제거하고 ‘피노 그리’라는 명칭만 사용하게 되었다.

사진 출처: Unsplash @brett_jordan

이탈리아의 피노 그리지오는 프랑스의 피노 그리에 비해 산도가 약간 높고 드라이하며 시트러스와 청사과 등의 상큼한 아로마를 내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뜨거운 날씨 속에 포도가 과숙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찍 수확하기 때문이다. 산미가 부족하기 쉬운 품종인 만큼 프레시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발효도 주로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이루어진다. 알자스에서처럼 스위트 와인으로 만드는 경우는 드물며, 가볍고 마시기 쉬운 데일리 와인으로 사랑받는 품종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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