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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음주는 가능할까?

건강한 음주는 가능할까?

조나리 2022년 2월 22일

‘심뇌혈관질환 발생 위험: 34세 여자 평균 대비 1.13배’

지난 연말 휴가에 벼락치기로 받은 건강검진 결과표가 얼마 전 도착했다. 체중도 혈압도 혈당도 정상이었지만, 심뇌혈관질환 발생 위험만은 동일 성별, 동일 연령 평균 대비 높다고 했다. 음주 항목의 노란색 다이아몬드 안에 적힌 ‘주의’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술을 마신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반가워서, 혹은 혼자 너무 외로워서. 기분이 좋거나 좋지 않아서. 하지만 해가 갈수록 숙취를 해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지고, 한 잔만 마셔도 다음날 업무 집중도에 차이가 드러난다. 나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술꾼에게도 핑계는 있다. 하루에 한 잔 정도는 오히려 건강에 좋다는데, 그것도 안 마시면 인생 무슨 재미로 사나? 하지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세계보건기구의 의견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두 기구는 최근 ‘건강에 위험이 없는 알코올 소비는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은 앞으로 와인 및 주류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건강한 음주’는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와인, ‘담배 신세’ 되나

세계보건기구는 올 들어 ‘알코올의 유해한 소비를 줄이기 위한 글로벌 전략’을 공개했다. 이 전략에는 적정한 세금 부과와 가격 정책으로 알코올음료의 접근성을 낮추고 디지털 미디어를 포함한 다양한 미디어에서의 알코올음료 광고를 제한하거나 금지하며, 알코올음료를 소비할 수 있는 시・공간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음주 운전에 관한 법과 규제를 강화하며 위험한 음주 패턴을 줄이기 위해 심리 상담 등을 제공해야 한다는 지침도 빠지지 않았다.

한편 작년 12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건강에 위험이 없는 알코올 소비는 없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유럽의회 암 퇴치 특별위원회의 보고서를 승인했다.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표결에서 반대는 한 표뿐이었고 찬성이 29표, 기권이 4표였다. 이어 2월 14일 유럽의회의 표결에 따라 와인병에 담뱃갑처럼 경고 문구를 부착할지도 결정된다. 이번 보고서 승인이 유럽의 주류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두고 봐야겠지만, 와인과 맥주의 주요 산지가 모여 있는 유럽에서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업계 분위기는 당연히 뒤숭숭하다. 유럽 와인 기업 위원회(Comité Européen des Entreprises Vins, CEEV) 사무총장인 이그나시오 박사는 “두려움을 이용해 과도한 음주뿐 아니라 알코올 소비 자체를 제한하려는 것”이라며, 이러한 흐름대로라면 “유럽 와인 산업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규모 생산자들에 대한 지원이 끊길 것이며 제품 광고도 어려워질 테고, 담배처럼 경고문을 써 붙이거나 패키징을 단순화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예측이자 걱정이다.

유럽 집행위원회와 세계보건기구의 잇따른 움직임에 국제와인기구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2월 3일 국제와인기구는 세계보건기구와 회의를 열어 “항상 책임 있는 음주를 장려했으며 적당한 와인 섭취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많은 연구 사례를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정말 한 잔도 안 되는 걸까

유럽 집행위원회에서 승인한 BECA의 보고서는 2018년 영국의 의학 학술지 《Lancet》에 실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연구는 알코올 소비가 간경변증이나 일부 암 및 심혈관 질환 같은 비전염성 질병, 그리고 폭력이나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의 주요 위험 요소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예민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은 ‘안전한 음주량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정한 음주가 심장 관련 질환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암을 비롯한 다른 질병의 위험을 커버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

연구팀은 1990년부터 2016년까지 195개국에서 알코올 소비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15세부터 95세까지,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과 하루에 한 잔의 술을 마시는 사람을 비교한 결과, 10만 명의 비음주자들 중 914명에게 암이나 부상 등 알코올과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진 건강 문제가 생긴 반면 하루에 한 잔을 마시는 사람들 중 이러한 문제가 생긴 이는 918명이었다.

겨우 네 명 차이인데, 이걸 유의미한 수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하루에 마시는 술의 양이 늘어날수록 그 차이는 커졌다. 하루에 두 잔을 마시는 그룹에서는 63명이, 다섯 잔을 마시는 그룹에서는 338명이 더 이러한 문제에 노출되었다. 연구를 이끈 그리월드 박사는 “앞선 연구들은 알코올음료가 몇몇 질병에 대한 경미한 예방 효과가 있음을 밝혀냈지만, 우리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복합적인 관점에서 알코올 소비는 건강상 위험을 높이고, 이는 소비하는 알코올의 양과 관계 없이 사실”이라며, “처음에는 하루에 한 잔으로 시작하겠지만, 그 양이 늘어나는 속도는 매우 빠르다”고 덧붙였다.

이듬해에는 더 충격적인 연구 결과도 같은 학술지에 발표되었다. 옥스포드대와 북경대 연구진들이 함께 연구한 결과, 하루에 와인이나 맥주 한두 잔의 음주만으로도 뇌졸중 위험이 10~15% 늘어나며, 약간의 음주가 몇몇 질환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이에 반기를 드는 후속 연구도 있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과 런던 위생 열대의학 대학원의 연구진은 2019년 연구의 분석 방식에 결함이 있으며, 정확히 얼마큼의 음주가 안전한지는 말할 수 없지만 가끔 마시는 와인이나 맥주 한 잔은 건강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논문을 《International Journal of Epidemiology》에 발표했다. 연구를 리드한 니콜라스 월드 교수는 “이 연구 결과를 알코올 섭취를 권장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위험하지 않은 음주는 없다는 선행 연구의 분석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금주와 적당히 마시기, 당신의 선택은?

한국은 술에 관대한 나라다. 회식 자리에서 몇 잔은 받아마셔야 사회생활할 줄 안다는 평가를 받고, 당대의 가장 핫한 연예인이 소주와 맥주 광고 모델로 활약한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지는 중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입법 예고한 국민건강 증진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라 TV뿐 아니라 인터넷 매체 및 옥외 광고판과 택시, 버스 등 교통수단에서도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는 술 관련 광고를 내보낼 수 없게 되었기 때문. 또한 모든 매체의 주류 광고에서 노래 사용도 금지되었다.

전문가들도 의견이 분분한 마당에 ‘약간의 음주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의 진실이 무엇인지 일반인인 우리가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양측의 연구 결과가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바는 마시는 술의 양이 늘어날수록 건강상 위험도 높아진다는 것이니, 매일 마시던 것을 하루 걸러로, 반 병 마시던 것을 한 잔으로 줄여보면 어떨까? 참고로 나는 음주량과 빈도를 줄여 남는 예산과 시간을 좋은 와인을 공부하며 맛보는 데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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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리

애주 경력 15년차 북 에디터. 낮에는 읽고 밤에는 마십니다. / mashija@winevisi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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